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6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27편 접수됐다. 이중 최유리씨의 ‘우리 집에 DJ가 산다’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20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20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아홉 번째는 우수상 수상작인 최다은씨의 ‘그 아이의 이름은 ’보청기‘가 아니다’ 이다.

그 아이의 이름은 ‘보청기’가 아니다

최다은

고등학교 과학실험 동아리에서 만난 옆 반 B는 우리 학교의 유일한 장애인이자, 내가 처음으로 만난 청각장애인이었다. 동아리 회장이었던 나는 종종 그 애를 지켜보았고, 곧 B가 늘 혼자서 과묵하게 과학 공부를 하는 모습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가 B에 대해 아느냐고 묻자, 친구들은 B의 이름을 듣고도 그게 누구냐며 되물었다. 옆에서 ‘보청기 낀 애 있잖아’라고 거들면 그제야 아, 보청기 걔. 했다.

나는 B와 아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 명칭은 대단히 속상했다. 하필이면 보청기라는 단어가 자신을 칭하는 대명사가 된 게 과연 B에게 달가운 일일까. 분명 내가 지켜본 B의 모습 속엔 보청기 외에도 불릴 만한 이름이 많았다. 과학을 잘 했으니 ‘과학도우미 걔’라던가, 잔머리 하나 없이 단단히 묶은 똥머리가 귀여웠으니 ‘똥머리 한 애’라던가, 그렇게 불려도 되었을 텐데. 보청기 걔라니.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소문 속 존재이던 B와 드디어 처음으로 단둘이 얘기할 일이 생겼다. 내게는 꽤 부끄럽고 미안한 기억이지만. 쉬는 시간, 나에겐 10분 내에 B를 포함한 수많은 동아리원에게 실험 공지를 전달해야 하는 다급한 임무가 있었다. 마침 복도에서 한참 앞서 걸어가는 B를 발견해 헐레벌떡 쫓아갔다.

‘B야!’ 소리쳤지만 B는 듣지 못하고 계속해서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걸어갔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B를 어떻게 불러 세워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나는 결국 실수를 했다. 다급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B의 등을 두드리면서 ‘B야!’ 부른 것이다. 그 순간에도 ‘헉, B가 놀라겠구나!’ 직감했지만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당연히 내 갑작스러운 터치는 B를 깜짝 놀라게 했고, 안 그래도 급한 데다 실수를 해 당황한 나는 전해야 할 말을 기계처럼 빠르게 왈왈 읊었다. B는 알아듣기 어려워하는듯하다 그냥 알겠다며 머쓱하게 떠났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그 순간의 내가 너무도 부끄럽다. B를 처음 마주한다면 이런 식으로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청각장애인을 대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동아리원을 대하듯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대하고 싶었는데 B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다른 아이들을 부를 때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방식을 B에게 사용할 수 없는 건 B의 잘못이 아니다. 급한 맘에 말을 와르르 쏟아 내면 B가 이해하기 힘든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 배려의 부족이 그것을 B의 잘못으로 만들고 말았다. 내가 비장애인의 행동 방식을 당연하다는 듯 B에게 들이밀었기 때문에.

이전까지 나는 헛된 자만을 했다. B를 ‘보청기 걔’와 같은 시선으로 보는 아이들이 싫어서 나만큼은 B에게 편견을 갖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B를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편견을 갖고 다르게 대하는 것과, 신체의 차이에 따라 배려하여 다르게 대하는 것의 차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B는 청각장애인이기에, B와 소통할 때 비장애인과는 다른 방식을 사용하는 건 차별이 아니라 배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로 B와 동아리에서 만나면 등을 두드려 부르거나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실수가 없도록 주의했다. B는 늘 그렇듯 변함없이 과학 동아리 활동이나 과학 공부에 열심이었다. 나는 그런 B와 친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B가 큰 오해를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B가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며 필기량이 많은 과학 수업이 어렵다고 털어놓았는데, 담임 선생님이 그 반의 한 친구를 불러 B의 과학 필기를 대신 하라고 하셨단다. 뜬금없이 남의 일을 맡게 된 친구 입장도, 뜬금없이 도움을 받게 된 B의 입장도 난감했으리라. 설상가상으로 이 얘기는 계속 퍼져나가 안 그래도 성적 경쟁에 예민한 아이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아이들의 입 속에서 B는 ‘담임 선생님께 부탁해서 자기 필기를 남이 대신 하도록 한 이기적인 애’, ‘남의 필기를 뻔뻔하게 훔치는 애’로 전해졌다. 그 가차 없는 험담에 ‘보청기를 이용해도 수업 내용을 제대로 듣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B가 도움을 강요한 적은 없다’는 내용은 쏙 빠졌다.

그 상황에서 이기적인 건 B가 아니라 우리 비장애인 학생들이었다. 다들 누군가는 B를 도와야 한단 걸 알고 있지만, 막상 자신이 그 도움의 책임을 맡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어쩌면 손해 보는 것이라고 느낀 게 아닐까. 그만큼 아이들은 B의 청각장애를 어떤 허울 좋은 핑계쯤으로 생각했다. 아이들 눈에 B는 아무 문제 없이 일상생활을 잘 하는 애처럼 보였으니, 청각장애는 필기를 떠넘기고 담임선생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핑계라고 여겼다.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 것을 몰랐다. 과연 B가 그런 핑계 따위를 원했을지는 아무도 고려해 주지 않았다. B가 남들 눈에 문제없어 보이게끔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고충과 노력 역시 고려해 주지 않았다.

그 후로 B는 그냥 보청기 낀 애가 아니라, ‘보청기 낀 이기적인 애’가 되었다. 불어나는 말 말 말, 자신을 향한 근본 없는 비난의 소용돌이 속에도 B는 꿋꿋해 보였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보였다. 복도를 지나며 옆 반 창문을 들여다볼 때마다 B는 늘 혼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편견은 여전했고, 나는 우물쭈물하며 B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비겁한 우리들 속에서 B는 혼자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B는 과학에 꿈과 열정이 있는 친구였다. 그러나 그 열정이 ‘이기적인 필기 도둑’이라는 왜곡을 거치지 않고 순수하게 타인의 눈에 닿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들은 ‘보청기 걔’를 알뿐 진짜 B의 모습을 몰랐다. 필기수업이 어렵지만 그럼에도 과학을 좋아하는 열정적인 B, 필기를 어떻게든 구해서 공부하고자 하는 성실한 B의 모습을 알지 못했다. 아주 투명하고 질긴 편견의 막이 진정한 B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막고 있었다. B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보청기라고 부르는 건 불쾌해, 네가 싫다면 노트필기를 대신 해 주지 않아도 돼. 나는 과학을 좋아해. 괜찮다면 나랑 같이 공부할래? 이해 못 한 부분을 물어보고 싶어.’와 같은.

그러나 오해는 풀리지 않은 채로 우리 모두는 졸업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이들은 하나둘씩 자신들이 무지했음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B에게 말 한번 걸지 못한 것이 너무도 후회스럽다. B가 떠오를 때면 나는 시기와 험담 속에서도 당당하게 본인이 지망하던 생명과학과에 합격한 B의 대학생활이 존중과 배려로 가득한 밝은 나날이길 소망할 뿐이다.

청각장애는 소통의 장애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의 소통을 어렵게 한 건 어쩌면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한, 아니 이해하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비장애인들이 아니었을까. 내 옆 반 친구 B는 소통의 어려움을 겪으며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아직도 세상에 존재할 수많은 학생 B들의 꿈과 진심은 편견의 벽에 막히지 않고 세상에 전달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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