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개발원은 매년 장애인 일자리 확대 및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장애인일자리사업 우수참여자 체험수기’를 공모하고 있다.

2018년 공모에는 17개 시·도에서 133건의 수기가 접수됐고 심사결과 최우수상 4편, 우수상 9편 등 13편이 선정됐다. 수상작을 연재한다. 다섯 번째는 일반형 일자리 부문 우수상 수상작 박혜원 참여자의 ‘행복한 마음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행복한 마음을 꿈꾸는 사람들

박혜원(경기도 하남시)

8월 15일은 광복절! 뜻깊은 날입니다. 동시에 기쁜 날 이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 일제강점기에 처했던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기쁜 날이죠. 이런 8월 15일은 나에게도, 우리 부모님에게도 의미 있고 기쁜 날입니다.

제가 처음 부모님 품에 안긴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 친구 분들은 저를 ‘광복절 특사’라고 합니다. 결혼한 지 15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던 우리 부모님에게 15년 만에 기쁨으로 찾아온 저는 엄마 뱃속에 머물다가 그만, 32주가 되기 전에 950g의 미숙아로 태어났습니다.

저체중과 미숙아 후유증으로 뇌병변 장애를 갖게 된 저는 생후 4개월부터 재활치료와 여러 차례의 수술로 부모님의 가슴을 녹이며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여러 번의 수술과 재활치료를 병행하며 지내왔기 때문에 밖에서 친구들과 노는 시간보다 병원에서 생활한 시간이 많았습니다. 저처럼 아픈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저도 같이 안타까워하며 속으로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저는 부모님께 늘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내가 잘못 태어나서 부모님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구나! 나만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 부모님은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사실 수 있을 텐데.”하면서 내가 잘못 태어났다는 생각에 빠져 제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당신들에게 태어난 장애인의 모습이 되어버린 저를 한 번도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저를 대하셨고 저의 존재를 귀하게 여겨주셨습니다. 저의 자책감도 제가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다보니 제 스스로를 가치 있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사회에 한 몫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많은 노력을 하신 부모님 덕분에 지금 현재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창시절부터 지금의 직업을 갖기까지 부모님의 물신양면의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죄인 취급하며 동굴처럼 깜깜한 내면에 갇혀 사회에 발을 내딛지도 못하고 숨어 지내며 모든 것들을 부러워하며 쳐다만 보는 심약한 제가 되었겠지요.

부모님은 비록 딸이 장애를 가졌지만 사회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사회의 편견과 모든 것들을 인내하며 저를 키우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부모님의 속은 아마 ‘숯 덩어리’가 되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일절 내색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저를 밝고 당당하게 키우시느라 애쓰신 부모님께 보답하는 길은 사회에서 어엿하게 제 직업을 가지고 보다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를 가진 당사자 뿐 만 아니라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 또한 늘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서, 아픔을 견디는 방법을 먼저 가르쳐주어야 해서 늘 미안해합니다. 그래서 저의 첫 번째 꿈은 세상에 소외되고 아픈 아이들을 사랑으로 치료하는‘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의사’가 되어 아픈 아이와 그 부모에게 밝게 웃는 세상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의사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를 전공하고 사회복지학과를 복수전공 하였습니다. 거기서 배운 지식을 가지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문적인 사회복지사업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하남시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남시청은 장애인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저는 일반형 일자리에 선발되어 하남시 LH 행복꿈터 미사강변지역아동센터에서 일반형일자리 행정보조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작은 일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꼼꼼하게 처리하는 좋은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감당하며 인정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하남시 LH행복꿈터 미사강변지역아동센터에 출근할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환경도 낯설고 아이들 또한 저를 낯설어했습니다. 제가 과연 이곳에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심호흡 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아이들이 나를 과연 좋아해 줄까? 나를 선생님으로 여겨주기는 할까? 내가 모든 역경을 이겨내며 공부한 여러 가지 지식들을 과연 이곳에서 펼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걱정과 염려들이 나를 두근거리게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그 설렘이 참 신선한 감정이었고 그 설렘으로 아이들을 더 사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설렘이 첫 순서인 것처럼 제가 아동센터의 아이들과 설렘을 시작으로 사랑을 시작했나봅니다.

지금은 안보면 보고 싶고 생각나고 걱정되고 저는 이미 아이들과 사랑이 한창 진행 중인 상태에 빠졌나 봅니다. 우리 아이들이 저한테는 누구보다 잘 나아 보입니다.

이미 그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는지 저는 이곳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아직 시집을 가지도 않고 아이를 직접 낳아 길러보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엄마의 마음이 바로 이런 거구나! 하며 어렴풋이 짐작해 보곤 합니다.

그러면서 저를 애지중지 키우셨던 부모님의 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갑니다. 제가 하는 일이 이렇게 나를 성장시키고 철들게 해서 저는 자부심이 생깁니다.

지역아동센터의 A, B, C는 제가 관심을 가지고 지도하는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들도 처음에는 저를 무척 낯설어하였습니다. 얼굴도 잘 쳐다보지 못하고 저한테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았습니다.

A는 장애아동입니다. 어려서부터 성장이 느려 정신연령이 또래에 비해 2~3년 정도 낮은 편입니다. 아직 인지나 언어, 정서적인 부분에 있어가 발달이 느려서 놀이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한글을 정확히 읽고 쓰는데 어려움이 있어 모르는 글이 나오면 알려주며 책도 소리 내어 읽고 따라하는 방법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문장은 받아쓰기 시험도 보고 상도 주며 동기부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학교 때 배운 특수교육과목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나 지식 등 배운 것들을 모두 동원하며 힘쓰는 열정적인 선생님의 모습의 시간들입니다. 물론 공부 방식에 잘 따라주는 A가 고맙고 기특합니다.

이런 아이들을 볼 때면 제가 공부하던 시절도 생각나고 또 소외당하고 외로웠던 모습들도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도 이런 시간을 모두 겪어내고 단단해지게 되어 지금은 당당한 사회의 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이 그럴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야겠다는 각오가 불끈불끈 생기는 시간들입니다.

맞벌이 다자녀가정에서 자라는 A는 나이 차이가 많은 누나와 형이 있습니다. 때로는 형이나 누나처럼 놀아주기도 하고 엄마처럼 보살피기도 하며 즐거운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새는 아이가 센터에 있는 시간을 즐거워하며 저를 졸졸 따라 다니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며 알아가고 노력하다 보면 관계가 형성되고 그 관계 안에서 서로 사랑을 주고받게 됩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닌 사랑으로 발원된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 지식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을 바로 성장시킬 중요한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그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게 제 목표가 되었습니다.

B는 부모님께서 늦게 결혼하셔서 얻은 외동아들입니다. 조금 늦은 시기에 귀하게 얻은 자녀인지라 부모님이 예뻐하기만 하셔서 대부분 하고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신다고 합니다. 지역아동센터에서는 학습보다는 노는 것을 좋아하며 형들보다 동생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경우가 많고 자신이 하고 싶은 놀이를 주도하기도 합니다.

칭찬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칭찬과 격려를 기분 좋게 하면서 학습에도 임할 수 있게 유도합니다. 그럴 때는 집중도 잘하고 잘 따라줍니다. 그래서 저는 B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좀 더 과장되게 칭찬과 격려를 해주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마다 좋아하는 것을 파악하여 눈높이에 맞춰 대해주다 보니 아이들은 점점 더 저를 잘 따르고 좋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만한 곳이라 생각하게 해주고 세상에 태어난 자신도 가치 있는 사람이라 느끼게 해주는 사랑과 교육이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는 지적장애를 갖고 있어 특수학교에 다닙니다. 아동센터에서 위험한 행동을 하며 동생들을 자주 괴롭히고 말썽을 피웁니다.

처음에는 ‘이 아이가 왜 이럴까?’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흘러 이 아이를 관찰하다보니 선생님과 동생들의 관심을 얻고 싶어서 하는 행동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차츰 알게 되면서 아이에게 더욱 사랑과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말썽을 피울 때면 상담실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이야기를 하거나 때로는 단호하게 대하기도 합니다. 잘못된 행동, 위험한 행동은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옳지 못한 행동임을 알려주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 관심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루만져줍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 그리기, 컴퓨터 그림판에 도형 그리기 등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해주기도 하고 요즘 유행하는 음악을 듣게 허락하여 주기도 하며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요즘은 말썽의 횟수도 줄어들고 동생들과도 잘 지내는 편입니다.

사랑과 관심만이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 자신도 많이 성장함을 느낍니다.

이 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8개월이 흘렀습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시작했지만 아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보다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이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저를 성장시킨 대학생활에서 두 가지 전공을 하며 힘들게 공부했지만 그 시간이 지금의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다닌 서울신학대학교에도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후원금을 내고 있습니다. 자신이 받은 고마움을 다시 되돌릴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된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제가 일하는 지역아동센터의 센터장님께서 저에게 장애가 있어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맡겨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칭찬 해주실 때면 저도 아이들처럼 기쁘고 행복합니다.

아이들을 돌보며 무엇보다 그 아이들의 부모님께서 감사의 인사를 전할 때도 보람을 느낍니다. 저를 믿어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지난 5월 스승의 날에는 B에게 카네이션 직접 접어 붙인 정성스런 감사편지를 받았습니다. 감사편지의 내용을 보니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우리 B가 이렇게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일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그런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감동의 순간을 잊지 않고 우리 아이들과 사랑을 나누며 행복을 꿈꾸며 열심히 살아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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