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들이 부랴부랴 야외음악당으로 오르는 경사로를 만들고 있다. <에이블뉴스>

지난 4월 29일 오후 3시 30분경 영국의 구족화가로 널리 알려진 엘리슨 래퍼씨가 국립현대미술관 야외공연장에서 12명의 국내 구족화가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부랴부랴 임시 경사로 설치=이곳 야외공연장은 올라오는 길목에 턱이 있어 국내 구족화가들이 휠체어를 타고 올라오는데 무척이나 힘을 들게 했다. 이런 힘든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국립현대미술관 담당자에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래퍼씨가 도착하기 전에 빠른 시간 내에 개선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다시 전화로 재차 요구하니 그제야 부랴부랴 합판으로 임시 경사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참으로 진땀나는 시간이었다. 외신기자들의 눈에라도 보여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위기였다.

야외공연장에서는 국내 구족화가인 박정씨, 임인섭씨, 김영수씨, 김성애씨가 그림을 그렸다. 엘리슨 래퍼씨는 이들의 모습을 일일이 둘러보며,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며 유익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소강당으로 장소를 옮겨 국내 구족화가들과의 자유로운 대화 시간을 가졌다. 이번 만남을 기념해 세계구족화가협회 한국지부에서는 엘리슨 래퍼씨의 아들 패리스에게 한복을 선물했고, 구족화가 김영수씨는 즉석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래퍼씨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장애인을 위해 투자하라”=이후 다과시간에 통역을 통해 엘리슨 래퍼씨와 문답을 할 수 있었다. 영국의 장애인관련법에 대해 한국의 많은 장애인들이 부러움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활동보조인제도의 문제점을 알고 있는지 문의하니 “알고 있다”고 답변하며 “한국도 차차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구족화가는 “엘리슨 래퍼씨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영국사회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우리보다 앞선 장애인관련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화가는 “우리나라에도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더 훌륭하고 강인한 장애인들이 음지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며 “단국대 동양학과의 오순이 교수도 양팔이 없지만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개척하며, 많은 비장애인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엘리슨 래퍼씨는 우리에게 충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길거리에 턱이 많고, 건물과 주택에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고, 그런 어려움 때문에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한명도 보지 못하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국의 정치인들과 정부에서 장애인을 위한 투자를 늘렸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야외음악당으로 오르는 길에 턱이 있어 관계자들이 부랴부랴 임시 경사로를 설치했지만서도 앨리슨 래퍼씨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경사로에 진입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그녀의 방한이 남긴 것은=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장애인은 무조건 시설에 입소시켜 먹여주고 재워주면 되는 것이 장애인을 위한 훌륭한 복지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편의를 위해 우리에 가둬져야하는 가축이 아니다. 자유롭게 생각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을 개척하면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휴머니즘이 살아있는 장애인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아직도 ‘맨땅에 헤딩’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무던히도 온몸을 던져 노력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가?

이번 엘리슨 래퍼씨의 방한은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 영국사회 장애인법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한다. 생명의 소중함도 우리는 깨달아야한다. 관련 법령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 것인가를 찾는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한 사람의 장애인이 열심히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활동보조인 제도가 생명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엘리슨 래퍼씨는 우리가 절실히 깨닫도록 하고 돌아갔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를 동등하게 존중 받아야 한다. 활동보조인 제도화를 통해서.

왜 우리 사회는 다른 나라에서 유명해지면 인정하면서도 우리 스스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을 배출하지 못하는 것일까?

임시 경사로를 설치하기전 국내 구족화가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야외음악당에 오르고 있다. <에이블뉴스>

김영수 화백의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앨리슨 래퍼씨. <에이블뉴스>

세계구족화가협회 한국지부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앨리슨 래퍼씨. <에이블뉴스>

[리플합시다]장애인 일자리 100,000개 과연 가능할까?

*박종태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일명 '장애인권익지킴이'로 알려져 있으며, 장애인 편의시설과 관련한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박종태(45)씨는 일명 '장애인 권익 지킴이'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고아로 열네살 때까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자랐다. 그 이후 천주교직업훈련소에서 생활하던 중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92년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눌려 지체2급의 장애인이 됐다. 천주교 직업훈련소의 도움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고 15년정도 직장을 다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세상에 되돌려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92년부터 '장애인 문제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97년 경남 함안군의 복지시설 '로사의 집' 건립에서 부터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 및 법령 등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6월 한국일보 이달의 시민기자상, 2001년 장애인의날 안산시장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결사'라는 별명이 결코 무색치 않을 정도로 그는 한가지 문제를 잡으면 해결이 될때까지 놓치 않는 장애인문제 해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