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이 시는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햇빛이 있어야 그늘이 있다.

시인은 세상의 양면성을 사랑했다. 햇빛과 그늘 그리고 눈물과 사랑을 사랑했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했다.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의 눈물도 누군가가 닦아 주기를 바라는 심정은 아닐까. 강병철 씨도 세상의 양면성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강병철씨. ⓒ이복남

그에게 좋아하는 시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서슴없이 정호승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답 했었다. 아무리 현실이 삭막하더라도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그 순간의 세상은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강병철(1962년생) 씨는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서 태어났다. 위로 형과 누나가 있고 아래도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는 5남매의 셋째였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제주도 사람인데 왜 무엇 때문에 부산으로 오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이미 두 분 다 돌아가셨으므로. 아버지는 그릇회사에 다니셨고 어머니는 제주도 해녀로 청학동 앞바다에서 물질을 했다.

“돌 때까지는 보통아이들처럼 잘 먹고 잘 자라서 어머니가 물질을 하러 가시면 형과 누나하고 잘 놀았답니다.”

돌이 지날 무렵 자박자박 잘 걸어 다니던 아이가 어느 날 저녁부터 열이 펄펄 끓었다. 며칠간인가 감기 치료를 했다. 감기는 오래 끌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병원을 전전했다. 그리고 며칠 후 감기가 낫는가 싶었는데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자박자발 잘도 걸어 다녔던 아이가 감기를 앓고 나자 일어서지 못하다니, 어머니는 놀라서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감기를 치료했던 그 병원인지 아니면 다른 병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의사는 여러 가지 검사를 했고 그리고는 소아마비라고 진단했다.

“어머니께서 소아마비 예방 주사를 맞혔다고 했습니다.”

소아마비는 폴리오(polio) 바이러스에 의한 신경계의 감염으로 발생하며 회백수염(척수성 소아마비)의 형태로 발병한다. 폴리오바이러스는 사람의 입을 통해 들어와, 인두나 소장의 림프조직에서 증식하다가 혈관을 매개로 하여 체내에 퍼져나가 척수전핵세포 등의 감염으로 대부분이 하지마비 증상이 나타나는데 간혹 상지마비가 오기도 한다.

‘폴리오바이러스’는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소아마비가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전후부터 발병하여 1950년 6.25 무렵부터 전국을 강타하기 시작해서 1970년대까지 기승을 부린 것 같다.

경주 불국사 나들이. ⓒ이복남

소아마비는 전 세계적으로 원자 폭탄 보다도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었고,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도 소아마비의 희생양이었다. 1952년 미국에 보고된 소아마비 환자는 6만 건이었고 이 가운데 3천명이 사망하고 2만 여명이 소아마비로 남았다고 한다.

그러자 미국의 의사 겸 생물학자인 조나스 소크(1914~1995)가 소아마비 백신 연구에 몰두하였다. 조너스 소크는 소아마비 백신에 성공하여 1955년부터 백신 이용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조나스 솔크는 가난하게 자랐으며 소아마비 백신으로 엄청난 부자가 될 뻔했으나 그는 특허권을 주장하지 않았고 덕분에 소아마비 백신은 싼 가격에 전 세계로 퍼질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소아마비 예방접종이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소아마비 예방 접종으로 국내에서는 1983년 이후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발췌)

WHO는 1994년 서유럽, 2000년에는 한국을 포함한 서태평양 지역에서 소아마비 박멸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국정운영이 어려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 2개국은 아직까지 소아마비가 박멸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무위키에서 발췌)

“제 기억으로는 맨날 엄마 등에 업혀서 침 맞으러 다니고, 집에서도 한약 달이는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그는 감기 이후 걷지는 못하고 기어 다녔다고 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70까지 물질을 하셨다고 했으니 한의원에도 매일은 아니고 며칠에 한 번씩은 가셨을 것 같다.

“오랫동안 한의원에 다니면서 침을 맞고 한약을 먹었지만 제 다리는 조금도 낫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걷지를 못했으니 어머니 등에 업혀서 한의원에 다닌 기억 밖에 없다고 했다. 위로 형과 누나가 있고 아래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태어났다. 남매들과 어울려 놀았겠지만 동생들도 서너 살만 되면 바깥으로 나돌았을 테지만 그는 걸을 수 없는 몸이었다.

오랫동안 한의원을 다녔지만 그의 다리는 조금도 낫지 않았기에 초등학교 무렵부터는 다니지 않았던 것 같다.

휠체어 마스게임. ⓒ이복남

“국민학교에 입학했는데 처음에는 어머니 등에 업혀서 갔습니다.”

친구들이 특별히 놀렸던 기억은 없다고 했다. 그 대신 학교에 다니면서 바깥나들이가 시작되었다. 학교친구는 물론이고 동네친구들하고도 어울렸다.

“나이가 들면서 축구나 야구도 했는데 축구에서는 골키퍼를 하고 야구를 할 때면 캐처를 했습니다.”

나중에는 엄마 대신 누나가 업어 주었다.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에는 누나에게 업히기 싫어서 목발을 짚었던 것 같다. 물론 뒤뚱뒤뚱해서 잘 못 걸었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중학교는 진학을 안 했다.

“사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바깥에 나가기가 싫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한 번도 생각지 않았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될 무렵부터 갑자기 부끄럽고 창피해서 밖에 나가기가 싫었다.

“그래도 부모님은 학교에 가라고 했지만 제가 싫다고 했습니다.”

우선 밖에 나가는 것이 창피하고 싫었을 뿐 아니라, 중학교가 집 근처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니기도 만만치 않았기에 부모님도 포기를 한 것 같았다.

“당시 무슨무슨 문고 하는 조그마한 책 시리즈가 있었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그런 책을 한 보따리 사 오셨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사다주신 책을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죄와 벌을 비롯해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 전쟁과 평화 등 세계명작 시리즈를 그 때 다 읽었다. <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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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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