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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소리 넘쳐 나리라

청각장애인 정은주 씨의 삶 - ①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7-24 14:00:44
‘이곳에 생명 샘 솟아나
눈물 골짝 지나갈 때에
머잖아 열매 맺히고
웃음소리 넘쳐나리라

꽃들도 구름도 바람도 넓은 바다도
찬양하라 찬양하라 예수를
하늘을 울리며 노래해 나의 영혼아
은혜의 주 은혜의 주 은혜의 주

그날의 하늘이 열리고
모든 이가 보게 되리라
마침내 꽃들이 피고
영광의 주가 오시리라

꽃들도 구름도 바람도 넓은 바다도
찬양하라 찬양하라 예수를
하늘을 울리며 노래해 나의 영혼아
은혜의 주 은혜의 주 은혜의 주 예수’


이 노래는 ‘꽃들도’ 라는 일본 노래라고 한다. 일본 히로시마 원자 폭탄이 터지고 완전 폐허가 된 땅을 바라보며 절망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花も(하나모)’라는 노래로 찬양을 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기독교가 그리 왕성하지 못한데 ‘花も(하나모)’라는 찬양이 구전되어 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혔기에 제이워십(Jworship)이 ‘꽃들도(Flowers)’라는 노래로 주님을 노래했다고 한다. 제이워십은 한국과 일본의 화해와 연합을 이루기 위해 설립된 찬양전문 선교단체라고 한다.

정은주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정은주씨. ⓒ이복남
‘이곳에 생명 샘 솟아나/ 눈물 골짝 지나갈 때에/ 머잖아 열매 맺히고/ 웃음소리 넘쳐나리라’이 노래는 히로시마를 위한 노래였지만 정은주 씨는 자신을 비롯한 청각장애인에 빗대어 머잖아 열매 맺히고 웃음소리 넘쳐나리라고 믿기 때문에 오늘도 열심히 기도하고 찬양한다고 했다.

정은주(1980년생) 씨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신혼부부에게 귀염둥지 첫딸이자 그는 외동딸이다. 두 살 쯤 급체가 온 모양이다. 소화가 안 되고 열이 나서 대구 파티마 병원에 입원을 했다.

“소화도 잘 되고 열도 내려서 며칠 만에 퇴원을 했답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잘 놀고 있었는데, 엄마가 부르는데 대답이 없었다. 엄마는 놀라서 이것저것 해 보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시 파티마병원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최종적으로 청각장애라고 판정하더랍니다.”

부모님은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부모님은 맞벌이했으나 어머니가 딸 때문에 더 노심초사했다.

“어머니는 저 때문에 여러 가지를 했다는데 저의 청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대구영화학교에 입학했다. 대구영화학교는 청각장애인특수학교다. 공부는 그런대로 했다.

“3학년 올라 갈 때 선생님이 엄마를 불렀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어머니를 불렀을까.

“얘는 영화학교에 다닐 애가 아니라면서 일반학교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일반학교로 옮기라고 했을까?

“듣지는 못해도 말을 잘 했습니다.”

못 듣는데 어떻게 말을 했을까?

“제가 청각장애라는 것을 알고 엄마가 4살부터 7살까지 파티마병원 언어치료실에 보냈답니다.”

정은주씨 8살 때.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정은주씨 8살 때. ⓒ이복남
필자가 정은주 씨를 만났을 때, 정은주 씨는 듣지 못했기에 수어통역사가 대동했다. 그러나 정은주 씨는 필자의 입을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아들었고, 필자도 정은주 씨의 말을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물론 수어 통역사가 있었지만.

“그때 파티마병원에서 잘 배웠던 것 같습니다.”

영화학교 다닐 때는 전부 다 청각장애아이므로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일반 학교를 다니자 아이들이 걸핏하면 벙어리라고 놀렸다.

“몇 달이 지나자 벙어리라고 놀리는 애들을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부터 더 이상은 놀리지 않았다. 그는 교실에서 제일 앞에 앉았다. 판서도 봐야하지만 선생님의 입모양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공부도 잘했고, 달리기도 잘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도 잘했고 체육도 잘했다. 달리기를 잘해서 운동회 때면 1~2등을 했다. 대구 신암여자중학교에 입학했다.

“잘 먹고 잘 놀고 공부도 잘했습니다.”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고 건축 사업을 시작했다. 어머니도 아버지와 같이 출퇴근을 했다. 그는 근처에 있는 외가에 맡겨졌다.

“외가에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저랑 세 식구만 살았습니다.”

그가 청각장애인이지만 중학교 때까지는 놀고먹고 공부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사춘기를 어렵다고 하지만 저는 그 때가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토요일이면 부모님이 외가에 와서 그와 시간을 보내고 같이 밥을 먹기도 했다.

“영어시간에 대부분의 선생이 다른 반에서는 판서를 잘 안 하는데 우리 반에서만 저를 위해 칠판에 써 주셨습니다.”

정은주씨의 아이들.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정은주씨의 아이들. ⓒ이복남
그는 공부를 비교적 잘하는 편이었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100점은 못 받았다. 아마도 그것이 청각장애인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농인들은 그림을 그리는 등 손재주가 있는데 저는 그런 손재주가 없었습니다.”

대구동부여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어렸을 때는 선생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영화학교를 다니면서 선생에 때한 꿈이 깨어졌단다.

“특수학교 선생들이 수어를 모르는데,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습니까?”

그리고는 특별히 뭐가 되겠다는 꿈을 가져보지 않았다. 그냥 학교 다니면서 공부하고 먹고 노는 게 좋았다. 그때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행복도 끝이 나고 말았다.

“고2 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났어요.”

어렸을 때부터 먹고 사는 것은 걱정이 없었는데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자 빚쟁이들이 집에까지 찾아 왔다.

“아버지가 ‘제발 우리 딸한테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부모님 집은 물론이고 그가 사는 외가에도 빚쟁이들이 들이닥쳤다. <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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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 (gktk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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