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성정자. ⓒ성정자

장애에 장애를 더하다

보통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사람들이 성정자를 자꾸 쳐다보았다. 그녀는 단지 척추측만증으로 등이 휘었을 뿐 모든 일상생활을 거침없이 해내는 아주 활달한 제주도 소녀였다.

3남 1녀의 고명딸이라서 가족들의 사랑을 온몸으로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던 소녀가 갑자기 내성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유는 등 때문에 교복이 맞지 않아서, 교복이 입기 싫어서 였다.

그때부터 가족들은 딸의 굽은 등을 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1982년 그녀의 나이 꽃다운 스무 살에 수술을 결정한다.

수술 전에 친구들과 한라산 등반을 했는데 그때 성정자가 가장 먼저 백록담에 도착할 정도로 든든한 두 다리를 갖고 있었다. 수술 후에는 한 뼘은 더 커진 멋진 모습으로 다시 이 산을 오르리라 다짐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이제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다.”며 수술만 하면 딸이 등에 지고 있던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다. 그녀의 척추측만은 아주 어렸을 때 먼 친척 분이 아기를 업어 주려다가 발생한 작은 실수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제주도를 떠나 뭍에 있는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였지만 굳은 뼈를 완전히 펼 수 없었다. 그래서 2차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녀에게 하반신마비라는 엄청난 굴레를 씌웠다. 걸어서 들어간 병원을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

병원에서 의료사고를 인정하여 몇 푼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장애라는 문제는 돈으로 보상이 되는 피해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10년은 암흑기였다. 책을 읽으며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1992년 서른의 나이에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입학하였다.

(사진 왼쪽)어린이집에서, (오른쪽) 중국교류전에서. ⓒ성정자

서예와 만나다

대학생이 되니 여러 가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많은 동아리에서 회원을 모집하는데 서예 동아리 안내문을 본 순간, 그녀를 감동시켰던 액자 한 점이 떠올랐다.

먹으로 쓴 글씨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서 한참을 멍하게 쳐다보았던 충격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통묵회에 가입을 하니 농촌지도소에 동아리 교실이 마련되어 서예를 배울 수 있었다. 그녀는 서예교실에 가는 날이면 콧노래가 절로 날 정도로 즐거웠다.

하지만 척수장애인이 바닥에 앉아서 해야 하는 것이 힘들어서 몇 번 다니다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가까운 곳에 있는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 서예실이 생겼다. 집에서 방바닥에 펴 놓고 서예를 하다가 휠체어 높이에 맞는 작업대가 설치된 공간에서 작업을 하니 훨씬 작품이 잘 나왔다.

이렇게 배워서 동아리 서예전에 출품하자 점점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전국추사휘호대회에 나가 봤는데 입선을 하였다. 상을 받자 자신감이 생겨서 여러 곳에 도전을 한 결과 전국추사 휘호대회,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 제주도미술대전 ‘초대작가’가 되었다.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시범 종목으로 서예가 있다는 것을 알고, 2005년에 출전하여 은상을 받았는데 상보다 더 귀한 것은 장애인계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제주특별 자치도지체장애인협회 여성부장에 이어 부회장이 되어 지체장애인 권익 옹호에 앞장섰다. 그즈음 장애인미술 분야도 알게 되었다.

2009년 제1회 한국장애인서예한마당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대상이 배출된 지역 제주에서 처음으로 전국장애인 서화예술인들의 전시회가 열렸다. 그리고 2012년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는 영광도 안았다. 장애인미술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제주도에서 서울로 날아가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많아졌다.

서예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종이 위에 먹과 붓으로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들여다보는 수양 과정이다.

표현되어진 먹 글에서 마음속의 굳셈과 부드러움, 욕심과 게으름, 즐거움까지 보이게 되니 나보다도 나를 먼저 아는 붓 끝에 마음을 비워 두는 시간도 스스로 갖는다.

전시관에서 가족과 함께. ⓒ성정자

인생 스펙 쌓기

성정자가 갖고 있는 자격증은 동화구연지도자, 사서도우미, 북아트지도자, 독서치료사, 캘리그래피 지도자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그녀의 스펙 쌓기는 취준생(취업준비생) 수준이지만 그녀는 취업이 아닌 아들을 위해 공부를 하였다.

서른여섯에 결혼하여 아들이 태어났는데 아기를 안아 주고 업어 주고 할 수 없어서 아들에게 동화책을 재미있게 읽어 주기 위해 동화구연 공부를 하게 되었다. 책을 좋아해서 도서관에 자주 가다 보니 사서도우미와 북아트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하였고, 성장하는 아들을 위해 독서치료사가 되었으며, 서예를 현대화하는 캘리그래피 지도자 자격증은 2020년에 취득했다.

이런 스펙으로 그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600시간 넘게 봉사 활동을 하였다. 요즘은 강사료를 받는 강의도 들어온다.

성정자는 제주도 공영관광지운영 평가위원으로 제주도에 찾아오는 장애인관광객들이 불편하지 않게 관광을 할 수 있도록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서 관광지 편의시설을 꼼꼼히 체크하여 개선을 요구한다.

그리고 201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활동증명을 받은 후 올해 예술활동증명 심의위원으로 위촉받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녀는 제주도 휠체어파크골프 선수이다. 2019년 제39회 장애인 전국체전 파크골프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제주도의 자존심을 세웠다.

파크골프는 선수가 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다. 가만히 앉아서 서예 작업을 하다 보니 운동량이 부족하여 건강을 위해 한 것인데 집중도를 높일 수 있어서 서예에도 도움이 된다.

작품-지혜로움과 어리석음 ⓒ성정자

바로 이 사람이면

성정자는 사랑이나 결혼을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육지 병원 생활을 같이했던 친구가 제주도에 오면 그녀가 자동차를 갖고 공항으로 가서 손님을 맞이하여 여행을 시켜 주고 숙박시설을 이용할 처지가 안 되면 자기 집에서 재워 주기까지 하였다.

어느날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던 곳에서 제주 여행을 와서 자동차 두 대가 필요했다. 어떤 남성 장애인이 자동차를 갖고 나와서 3일 동안 함께 여행 가이드를 묵묵히 해 주던 사람이 헤어지며 말했다.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나 봐요. 10년 전에 우리 만났었는데…….”

그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인데 그는 마치 얼마 전에 만난 사람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1년 후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다.

아들이 벌써 25세이다. 제주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을 하였지만 군에 갔다 오더니 진로를 바꾸어 현재 한국항공전문대학에서 비행기 조종사의 꿈을 키우고 있는 아주 멋진 아들이다.

작품-한용운의 인연설 ⓒ성정자

장애예술인, 함께 가야 한다

배움의 열의로 가득 찬 도반들을 만나면서 장애예술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 제주도 장애인문화예술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장애예술인들이 창작할 수 있는 공간과 발표의 장이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장애예술인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장애인선수들은 생활체육만 해도 체육 활동으로 취업이 되는데 예술은 직업으로 연계되지가 않아서 장애예술인들은 하루 종일 작업을 해도 경제활동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예술 활동이 직업으로 인정을 받아야 활동보조서비스 시간도 늘어나고 근로지원인 서비스도 받을 수 있기에 성정자는 장애인예술이 직업이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장애인문화예술축제도 서울에서만 개최되어 지역은 참여할 수가 없기에 앞으로 장애인문화예술축제도 전국장애인체육대회처럼 지역 순회 개최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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