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주최로 열린 '2019 시각장애인 자립과 지역사회참여 활성화 국제컨퍼런스'에서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 프레드릭 슈뢰더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시각장애인 자립생활 운동의 역사는 고립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사회에서 평등한 지위를 요구한 시각장애인의 역사다.”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WBU) 프레드릭 슈뢰더 회장이 시각장애인 자립운동의 역사를 개괄하고 향후 목표를 제시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2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개최한 ‘2019 시각장애인 자립과 지역사회참여 활성화 국제컨퍼런스’에서다.

이날 컨퍼런스에는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 프레드릭 슈뢰더 회장을 비롯해 UN장애인권리협약위원회 이시카와 준 부의장, 영국왕립시각장애인협회 데이비드 클라크 서비스 책임자 등 각국의 주요 시각장애인단체 인사들이 시각장애인 자립운동 및 지역사회참여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가장 먼저 단상에 오른 슈뢰더 회장은 시각장애인 자립운동의 다난했던 과거와 세계위원회의 억압, 그리고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의 창설과 현황을 개괄하며 앞으로의 목표를 밝혔다.

2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주최로 '2019 시각장애인 자립과 지역사회참여 활성화 국제컨퍼런스'가 열리고 있다. ⓒ에이블뉴스

케네스 저니건 박사의 ‘시각장애인이 차별의 대상이 되는 한 우리 모두는 차별의 대상이다’라는 말을 인용한 슈뢰더 회장은 “시각장애인들은 고대 문헌에서 대부분 거지, 무능력하고 행인에게 구걸하는 존재로 묘사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슈뢰더 회장에 따르면 중세에 이르기까지 시각장애인들은 ‘궁핍한 사람들’로 인식될 뿐 자주적인 지위를 갖지 못했다. 18~19세기에 들어서야 유럽과 미국의 지방 정부는 시각장애인을 교육시키고 고용하는 기관을 설립하는 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했으나, 급여는 기초적인 생활을 이어나갈 수준의 박봉이었다.

이때 시각장애인들은 ‘완전한 사회적 고립’에서 ‘보호 관리 대상’의 지위를 겨우 얻어냈으나, 민간 및 정부 기관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시각장애인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나갈 수 없다’고 여겼다는 것.

그러던 20세기 초, 미국의 시각장애인들은 더 나은 근무 환경과 사회 참여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지방 및 주 전체적 단체들을 조직하기 시작했고, 1940년 드디어 7개 주 단체가 모여 ‘시각장애인연맹(NFB’)을 형성했다.

그러나 기존 시각장애인 복지기관들은 시각장애인들을 대변하는 단체의 탄생을 환영하지 않았다. 복지기관들은 시각장애인은 아무 것도 책임질 수 없다는 편견을 버리지 못했으며, 새롭게 창설된 시각장애인연맹을 그저 포럼 수준의 단체로 취급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시각장애인연맹은 당사자들의 삶을 통제하려는 복지기관들에게 저항하며 자립의 요구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복지기관들은 이들 당사자의 목소리를 억압하기 위한 세력을 구축하려 했다.

1949년 전 세계 시각장애인 복지기관들은 ‘시각장애인 복지에 관한 세계위원회(WCWB, 이하 세계위원회)’ 설립을 위해 이탈리아 로마에 모였다. 이날 세계위원회는 콜로넬 베이커(Colonel Baker)를 위원회 초대 회장으로 선출하고, 자신들을 ‘시각장애인 스스로를 대표하는 기관’이라 표명했다.

베이커의 지휘 아래 세계위원회는 ‘시각장애인에게는 보살핌과 통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퍼뜨리며 시각장애인들의 자기표현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위원회는 당사자들의 자립생활 욕구에 밀려 대표성을 얻지 못했다.

세계위원회에 반대했던 전 세계 시각장애인 지도자들은 진정으로 시각장애인을 대표할 수 있는 독립 기구를 설립하기 위해 애를 썼다. 미국의 이자벨 그랜트(Isabelle Grant) 박사는 시각장애인 자기 결정권을 대표하는 시각장애인 단체를 설립하기 위해 많은 활동을 거듭했으며, 시각장애아동들이 비시각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교육받을 수 있는 ‘통합교육’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 같은 견해는 세계 시각장애인들의 사회참여 기회 확대를 불러일으켰고,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그랜트 박사와 함께 행동하며 자신들의 환경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1964년 여름, 미국 뉴욕에서 시각장애인국제연맹(IFB)이 출범했다.

초대 회장인 텐브룩 박사의 리더십 아래 시각장애인들은 시각장애인국제연맹과 세계위원회를 통합해 진정한 의미로 전 세계 시각장애인을 대표할 수 있는 국제기구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1984년, 드디어 양 기관이 합병을 위한 공동 회의를 열어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WBU)’가 창설됐다.

‘시각장애인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시각장애인에게 달려 있다’는 케네스 저니건 박사의 격언 아래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는 시각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을 대표하고 집단행동의 힘을 강조하며 오늘날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12년 10월 카타르에서 열린 만국우편연합회 회의에서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국제 우편 특전의 현대화 계획안을 통과시키고 시각장애인의 우편 요금을 면제하도록 개정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어 2013년 6월 세계지적재산권기구 회의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저작물 접근권을 개선하는 ‘마라케시 조약’을 비준시키며 세계 각국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저작물 공급을 촉진하고 국경을 초월해 접근이 가능하도록 했다.

2017년에는 영국 왕립시각장애인협회를 원조해 ‘Orbit Reader 20’이라는 저비용 점자출력기를 개발하도록 도우며 시각장애인들의 저작물 접근 비용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2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주최로 열린 '2019 시각장애인 자립과 지역사회참여 활성화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한 내외 주요 시각장애인단체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슈뢰더 회장은 ‘시각장애인의 자율주행 자동차 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자동차 운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의 교통 접근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상적 방안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슈뢰더 회장은 “지금의 면허증을 가진 운전자들도 결국 자율주행 차량으로 옮겨갈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시장이 활성화되면 전 세계 2.5억 명의 시각장애인들이 잠재적 고객이 된다. 그렇게 되면 시각장애인들의 교통 접근권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자동차 회사들은 잠재적 고객인 시각장애인들의 문제를 인식하고 우리의 접근성을 고려해 자율주행 자동차를 설계해야 한다. 사회 자선적인 태도가 아니라 경제적 수익을 생각해도 자동차 회사들에게 좋은 사업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각장애인의 역사는 어두웠으나, 우리의 미래는 밝다”라며 희망을 제시한 슈뢰더 회장은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의 지속적인 성공은 우리의 대표성을 가치 있게 여기고 유지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슈뢰더 회장은 “시각장애인 자립생활 운동의 역사는 고립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사회에서 평등한 지위를 요구한 자기 결정권의 역사다. 우리가 한정된 기회를 거절하고 함께 자기 결정권을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 모두의 미래는 끝없이 변화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며 단상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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