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달팽이 날다팀이 지난 8월 19일(현지시간) 미국 서부 LA에 위치한 Commission On Compassion(COC)을 방문했다. ⓒ조원석

물질적으로 더 높은 가치가 부여된 것, 오늘날 '좋은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는 그런 것들을 접하고 나면, 그보다 덜한 것, 다시 말해 물질적으로 낮은 가치가 부여되는 것은 거기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앞서 접한 더 좋은 것과 비교되어 본래 그것이 갖는 가치보다도 훨씬 덜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여럿 있다. 그러나 한번 자리 잡은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 탓인지 '혹시나'해서 일찌감치 내치고 싶은 충동을 견딘 보람을 느낀 경험은 드물다.

‘2016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달팽이 날다팀이 지난 8월 19일(현지시간) 방문한 미 서부 LA에 위치한 Commission On Compassion(COC)은 경험하기 힘든 후자에 가까웠다.

오후 3시 30분경 들어선 COC 건물들 앞에서 주변 풍경을 들으며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도 대조적인 탓도 있었지만, 이미 거대 규모인 Braille Institute를 방문하고 온 내 앞에 펼쳐진 2층짜리 건물단지는 자꾸만 작고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사전에 읽은 COC관련 조사 자료에 청각장애인이나 시청각중복장애인(Deaf-blind)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설명되어 있어 한국에서 사용하는 아파트의 개념으로 생각한 탓일 수도 있다.

조금은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뒤따라오는 팀원들을 기다리는데 COC 방문에 동행하기로 한 후안(Juan Ramos)이 다가왔고, 곧이어 우리들의 인터뷰 대상인 짐(James hansen) 목사가 우리를 맞았다.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팀원들이 모두 도착, COC 방문연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우리가 기관방문을 통한 희망사항을 체크했다. COC에서의 인터뷰를 맡은 내게 짐 목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 지 물었고, 궁극적인 방문목적은 거주하고 있는 Deaf-blind들의 일상을 엿보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에 돌아온 짐 목사의 답변은 의외의 것이었고,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한 가구에 여러 명의 Deaf-blind들이 소집단으로 거주하거나 큰 시설에 Deaf-blind 여럿이 시설인으로서 거주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COC는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건물단지 내에서 청각장애인이나 Deaf-blind들에게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빌려주고, 그 외의 프로그램이나 서비스 지원은 어떠한 강제성도 띄지 않는 등 생소하기만 한 개념이었다.

한국에서 흔하게 거론되는 그룹홈이나 거주시설 중 하나로만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인터뷰를 준비한 나는 순간 멈칫하게 되었고, COC의 그러한 성격에 따라 입주한 Deaf-blind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불투명해졌다.

COC의 개념에 의하면 우리들의 희망사항은 복지분야에서 흔히 말하는 비밀 보장이나 사생활 침해와는 별개로, 쉽게 말해 남의 집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순간적이었지만 적잖은 혼란이 밀려왔고, 빠른 결단이 필요했다. 궁극적인 방문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확률이 높아졌고, 인터뷰의 기대효과도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COC의 개념이 이토록 생소하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빠르게 지나갔고, 괜히 주변 시선이 집중되는 듯한 부담을 느끼며 긴장한 끝에 연수진행을 선택했다.

우리는 짐 목사의 사무실로 안내되었고, 나를 포함해 시청각중복장애청년이 셋이나 있는 팀 특성에 맞게 자리를 배치하고 통역환경을 설정하고 나서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한국에서 준비한 점자 질문지 노트를 숙소에 두고 오는 바람에 인터뷰 전 빠르게 내용을 숙지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긴 했지만, 첫인상이 따뜻했던 짐 목사는 인터뷰에도 따뜻한 마음으로 응해주어 순조로이 진행할 수 있었다.

질문에 앞서 짐 목사는 COC에 대해 긴 설명을 늘어놓았는데, 덕분에 COC의 생소한 개념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COC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다소 부적절한 질문을 포함한 질문지를 작성한 것에 미리 양해를 구할 수도 있었다.

짐 목사의 COC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1960년대 뮤리엘은 종교적 소명으로 교회에서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통역을 시작했고, 여러 해 동안 이를 지속했다. 활동지역은 자메이카에서 푸에르토리코로, 그리고 나서 현재의 로스앤젤레스(LA)로 이동했다.

LA에 자리잡으면서부터 뮤리엘은 Deaf-blind들을 만나게 되었다. 뮤리엘이 처음 접한 Deaf-blind는 두 장애로 인해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있던 남성으로, 입원생활조차도 순탄치 못한 상황이었다.

뮤리엘은 그 남성을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건물단지로 입주시켰고, 보다 많은 Deaf-blind들을 만나 거주할 곳을 찾아주었다. 이후 1970년대부터는 문제 발생을 이유로 Deaf-Blind들에게는 집을 빌려주지 않는 건물주가 대부분이었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Deaf-blind를 위한 거주 장소를 마련하기 시작했고, 미국기독교협회에서 Deaf-blind가 거주할 수 있는 장소로 현재의 COC를 찾았다. COC에 Deaf-blind가 처음 입주한 것은 1977년 1월. 당시 COC는 22개의 아파트가 있었고, 빠른 속도로 방들이 채워졌다.

짐 목사가 이곳으로 이사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그가 COC에서 거주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새로 입주하는 Deaf-blind가 적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입주를 희망하는 Deaf-blind들이 헬렌켈러 센터(Helen Keller National Center for Deaf-Blind Youths & Adults)나 브레일 인스티튜트(Braille Institute)와 같은 단체들을 통해 입주를 신청하기 시작했다.

이 대목을 90년대 중반 미국 사회에서의 장애인식수준을 고려하여 재해석해보면, 당시까지만 해도 장애인들, 특히 Deaf-blind와 같이 장애인 중에서도 소수에 해당하는 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의 사회통합을 이루지 못한 채 장애인거주시설이나 정신병원에 강제수용 되어 사회와 분리되었다.

이 무렵 장애 및 장애인복지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개인적 모델에서 사회적 모델이 변하고 자립모델이 자리잡으면서 장애인의 탈시설화와 정상화, 지역사회에서의 사회통합이라는 개념들이 실천적으로 등장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장애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들을 지원하는 단체들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Deaf-blind들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또 그랬기 때문에 그들이 시설이 아닌 COC와 같은 개념의 주거공간을 원하게 되었을 것이다.

COC는 해석상의 이름과는 달리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COC 방문에서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미국 부동산법에는 특정 장애인에 한한 입주허가와 관련된 내용이 없기도 하지만, COC는 기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것인 만큼 정부의 지시가 아닌 성경 말씀을 따르고, 믿음으로 행동한다.

또한 짐 목사는 소명을 갖고 진정으로 장애인을 위해 일하려면 정부와의 거리를 멀리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예시를 들어가며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정부와 거리를 둬야한다는 것을 정부지시와 성경 말씀에는 이견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때, 짐 목사의 의견이 사회적 약소수자 전반에 걸쳐 해당되지 않고 장애인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말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짐 목사와 COC의 자세에는 전율 같은 감동을 받아 몇 번이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COC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Q: COC 한 가구에는 장애인(Deaf or Deaf-blind)이 한 명씩 거주하나요? 그룹으로 거주하나요?

A: 주로 결혼한 가족단위로 거주하며, 친구인 청각장애인 두 명이 룸메이트로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Q: 거주하는 장애인들의 연령대와 성 비율은?

A: 중간 정도의 연령층이 40대입니다. 30대 초반이 가장 젊은 층이고, 60대도 있습니다. 성 비율은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Q: 청각장애에 시각장애가 아닌 다른 장애가 있거나, Deaf-blindness(시청각장애)와 더불어 다른 장애가 중복으로 있는 경우는?

A: Deaf-blind인데 뇌병변장애가 중복되어 있어서 휠체어를 타는 경우가 있었어요.

Q: COC에서 일하기 위한 자격요건은?

A: 종교적으로 속해 있어야 합니다. 종교에서 수여하는 소명으로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Deaf-blind와 함께 일하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Q: 그렇다면 거주하는 장애인들도 반드시 종교적으로 소속되어 있어야 하나요?

A: 아니요.

Q: Staff보다는 Volunteer가 많다고 들었는데, 정기적·지속적으로 활동하는 봉사자의 수는?

A: 오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Q: COC에 거주하는 Deaf-blind는 소득 수준에 따라 받아지나요?

A: 아닙니다. 여기 입주 자격은 4가지가 있습니다. 법적으로 Deaf-blindness 판정받아야 하고, 자립생활이 가능해야 합니다. 또한 커뮤니티·그룹 생활이 되어야 하고, 렌트비를 낼 수 있어야 압니다.

이 밖에도 COC의 웹사이트에서는 설명되어 있는 각종 프로그램과 지원 서비스에 대해 질문하였으나, 체계적이기보다는 자유롭고 입주 장애인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빌려주는 것이 주요 목적인만큼 거기에 대해서는 깊은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답변으로는 Deaf-blind가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외출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대하다는 것인데, 장애인의 안전도 중요시 하지만 실상 사고 발생 시의 책임을 두려워하는 공식단체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 대목에서 COC와 짐 목사가 얼마나 관대하며 대담한 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는 새로 지은 건물 중에 Deaf-blind에 맞게 설계된 건물을 둘러보았다. 정부의 지원 없이 운영되는 만큼 최신식 구조를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직접 설계한 Deaf-blind 가이드라인(손잡이) 등은 꽤나 그럴싸했다. 시대에 한참 뒤쳐진 보조기기가 있기도 했는데,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COC가 운영되는 것은 외형적인 측면 외에 COC만의 매력이 충분하기 때문일 것이며,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매력적인 대상의 하나가 바로 짐 목사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관 탐방 중에 운 좋게도 COC에 거주하는 여성 Deaf-blind Judy의 안내로 그녀의 집을 둘러볼 수 있었다. 크게 특별한 것 없이 깔끔하게 잘 정돈된 실내 구조였는데, 특정 신호를 선풍기 바람과 연결하여 Judy가 느낄 수 있도록 구조화 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 소개받을 때마다 자기소개와 함께 자기 얼굴도 만져보게 해주는 그녀만큼이나 흥미로웠다.

같은 유형의 장애가 있는 내게 자신의 얼굴이며 머리를 만지게 해준 Judy의 행동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먼저 실천하겠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아, 사회가 사회적 소수자인 내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내밀겠다는 나의 관념과도 통하는 것 같아서 나 또한 내 얼굴과 몸에 그녀의 손을 가져다주었다. 눈과 귀의 역할까지 담당하는 그녀의 손이 외형적으로는 썩 예쁘지는 않았지만,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로 불리는 것과 같은 근거로 가장 아름다운 손임에는 누구라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COC 방문연수는 그렇게 끝났다. COC는 한국에서 기관방문을 결정하고 인터뷰를 준비를 위해 조사 자료를 숙지할 때부터 몇 가지 이유에서 인터뷰 주도와 기관에 대한 기고를 맡은 것을 후회한 곳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본 COC가 종교적 성향을 띄고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사 자료로 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장애인거주시설과 같은 환경 속에서 Deaf-blind들의 자립생활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설립목적으로 하였다는 모순된 내용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한국 상황에 맞춰진 나의 시각에 의한 오해였고, 따라서 인터뷰 이후 COC에 대한 나의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 그리고 COC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함에 따라 하나는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많은 사회복지학도로서, 다른 하나는 Deaf-blind가 이용할 수 있는 주거공간을 방문한 한국의 Deaf-blind 당사자로서 한국사회에 두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비단 장애인 관련 복지기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 존재하는 모든 복지기관에 대하여 만약 그 기관이 특정 종교단체나 신앙심 깊은 한 개인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하여 그곳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에게조차 종교 행위를 강요할 필요가 있는가?

운영상에서의 조직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라도 직원 채용에서 종교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으나, 이용자에게까지 종교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문제 제기되어야 한다. 만약 해당 기관이 갖는 종교를 거부하는 이용자에게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해당 종교인이 아닌 이용자는 같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뜻과도 같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종교단체에 의해 설립된 복지기관이 자신들의 종교를 이용자에게까지 강요하고 있다. 종교를 기반으로 한 곳들이 그러한데, 강제성을 띄고 이용자의 권리마저 침해하는 그러한 모습은 COC의 상반된 모습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아직 논의하기에는 한참 이른 단계지만, COC방문을 통해 한국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자립생활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생활양상을 어떤 과정을 거쳐 구축해야 하는가이다. 장애와 장애인 복지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장애를 개인적 모델에서 사회적 모델로 바라보기 시작하고, 재활모델에서 자립모델로 탈바꿈하는 등 그 흐름이 있다. 그런데 장애 그리고 장애인 복지계에 끼지 못한 시청각중복장애를 포함한 극소수 장애의 경우 이 흐름을 타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발전에 있어 지난 30여년 간 한국 장애인 복지계가 밟아온 그 과정을 거치는 게 옳은지, 아니면 현 패러다임에 맞춰 진행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다.

현 패러다임에 맞추기에 극소수, 특히 시청각중복장애는 너무나도 뒤쳐졌으며, 그렇다고 그 과정을 밟아가기에 한국 시청각중복장애인들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복지 사각지대 그리고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이러한 고민을 한 것은 이미 몇 해 전부터인데, 이번 COC방문을 통해 다시 한번 똑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게 된다.

COC는 그보다 앞서 다녀온 Braille Institute의 거대규모와 그 곳에서 마주한 최신식 보조공학기기에 비해 상당히 초라해보이던 곳이었으나, 이미 답을 내놓기보다는 두 가지 심각한 질문을 던져준 기관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후회 없는 방문과 만남으로 기억될 곳이다.

그래서 글의 끝은 한국사회에서의 시사점으로 여러 명의 Deaf-blind와 함께 지내며 가장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기는 특별한 것을 신경 쓰지 않으며, 그들이 조금 불편한 건 알지만 동정의 대상이 아닌 영적으로 사랑의 대상이라 답한 짐 목사의 마음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그의 사무실 벽면에 적힌 글귀로 대신한다.

“God is the blessed controller of all things.”

*이 글은 2016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달팽이 날다팀의 조원석님이 보내왔습니다. 달팽이 날다팀은 8월18일부터 27일까지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자립지원교육’을 주제로 미국연수를 진행했습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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