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식을 진행하는 서세욱 공동대표(왼쪽)

"은하가 아름다운 까닭은 노느매기에 있습니다. 배분의 질서입니다. 제 몫을 각기 가지며 어깨동무하는 공존과 확산에서 화해와 평화는 태어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은하의 질서를 꿈꾸며 작은 출발을 합니다. 가진 자는 가진 자대로 더 많이 쾌척하고 없는 자는 없는 대로 십시일반 하여 희망의 불씨를 지핍시다."

1월 29일 문을 연 '나눔의 가게' 취지문의 일부이다. '노느매기'는 여러 몫으로 노느는 일을 뜻하는 나눔의 정신을 담은 우리말이다. 즉 나누어야 할 물건을 여러 몫으로 나누자는 것이다.

'나눔의 가게'를 운영하는 '부산을 가꾸는 모임'(이하 부가모)은 부산을 살리고 가꾸자는 목적에서 부산의 각계 원로들이 20여년전에 만든 부산의 대표적인 시민단체이다. '부가모'의 서세욱 공동대표는 생활고에 시달린 엄마가 자녀와 함께 투신하고 난치병 자식의 산호호흡기를 떼버린 가난한 아버지의 비극을 보면서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사람 사는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프랑스어로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귀족으로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리스) 만큼 의무(오블리제)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과 기독교적 사랑으로 철강왕 카네기, 석유재벌 록펠러에서부터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갑부 빌게이츠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회에는 기부문화가 활성화되어 있는데 비하면 우리의 수준은 부끄럽다는 것이다.

▲차와 술 코너.
그러나 우리의 전통 속에서는 상부상조와 불교의 보시, 콩 한 톨이라도 열 사람이 나누어 먹는다는 적선의 정신이 있었음에도 그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가을부터 구상하여 준비 한 것이 '나눔의 가게'인데 그 동안 일부단체에서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는 '아나바다'운동이 있기는 했으나 서울과 경기지역 등을 중심으로 이와 유사한 '아름다운 가게' 상설 매장이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고 '나눔의 가게' 설립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나눔의 가게'는 물건을 재활용하거나 필요한 사람과 나누는 '환경운동'과 그 수익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복지운동'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생활운동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방식인데 영국 등에서는 헌 물건을 판 수익으로 어려운 제3세계를 지원하는 등 선진국에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제 시작하는 '나눔의 가게'는 많은 어려움을 예상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시민들이 기부문화에 낯설어하거나 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눔의 가게'는 기부의 활성화를 위해 거리 홍보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 등으로 젊은 층의 기부를 유도할 방안이다.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참여 폭을 넓히기 위해 '방문의 날' 이나 '일일봉사'등을 다양한 이벤트도 마련할 계획이다. 물품의 기증과 수집, 판매와 지원은 '부가모'사무실에서 자원봉사자들로 운영하는 만큼 이곳에서의 수익은 전액을 불우 이웃을 위해 사용할 방침이다.

▲ 의류와 그림 코너.
서세욱 공동대표는 거대한 정책적 이슈만을 내세우거나 무조건 반대만 하는 시민운동이 아니라 시민들의 곁에 다가가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보다 실천적인 시민운동이 필요한 시점이었다면서 '나눔의 가게'를 통해 부산지역에서도 기부문화가 확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부가모'에서는 부산의 역사를 발굴하고 편찬하는 문화운동에서부터 부산경제가꾸기, 부산환경지키기, 2002아시안게임유치와 성공개최를 위한 홍보는 물론이고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화물연대 파업에도 중재역활을 하는 등 부산의 시민운동에 언제나 앞장서 왔던 것이다.

'나눔의 가게'가 문을 여는 날 오거돈 부산광역시장 권한대행을 비롯하여 각계 각층에서 물건들을 들고 왔다. 조그만 찻잔에서부터 의류 양말 도자기 양주 골프채 등 다양한 물건들이었다. 어느 분이 가져온 동양화 한 점은 가격을 매기지 못해 참여한 원로 미술가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돕기는 쉬운 일입니다. 적은 금액이라도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서로 도와주고 의지가 되어 준다면 부산을 인정이 넘치는 따뜻한 사회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나눔의 가게'운영을 책임 맡은 김윤환(영광도서 사장)씨의 말이다.

부산 중구 동광동 부산데파트 201호에 개설된 '나눔의 가게'에는 오래되거나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라면 어떤 것이나 기부할 수 있다. 의류, 가전제품 등은 물론이고 동양화, 조각 등 예술작품도 받고 있다. 생활 속의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하다. 문의: 051-245-1124.

▲시계 등 장신구와 도자기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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