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4월에 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금껏 장애인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왔으나 사실상 이 법은 실종된 것이나 다름없다. 대부분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기준은 의무가 아니라 권장사항으로 되어 있어 설치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며, 건축물의 증·개축 때는 이런 경우가 더욱 많다.

화장실과 편의시설 등의 세부 설치기준 또한 기준이 미비하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장애인의 편의를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관공서 청사 건물을 신축할 때도 장애인용 공용 화장실(다목적)을 1층에만 형식적으로 법률에 근거하여 설치하거나 장애인용 화장실을 층마다 남녀 화장실을 구분하여 설치하는 것이 예산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장애인 차별이자 인권침해의 시작이다.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와 음성유도기는 또 어떠한가? 정보통신부와 그 산하기관인 전파연구소,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는 음성유도기와 리모컨에 대해서는 한국정보통신 표준을 제정·고시하였다. 이에서 표준에 따라 제작되었는지를 확인하고 검사한 뒤 인증서를 발급해야 하는데, 이 검사 역시 관련 법규에서 권고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그래서 제조사가 필요한 것만 인증을 받고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받지 않는 상황이 벌어져도 처벌을 할 수 없는 솜방망이 법규에 그치고 있다. 음향신호기도 제품 고장이 빈번한데다 장기간 방치된 사례가 많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국가표준을 믿을 수 있는지, 또 성실하게 지켜지겠는지 의문이 생긴다.

전파연구소 관리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여러 업체가 동일한 제품, 또는 일부 함체나 회로기판을 서로 공유하면서 인증을 신청하면 전파인증서를 발급하는데, 이런 업체간의 짬짜미(담합)에 따른 공유를 하도급(OEM) 생산이라고 하면서 뒷짐을 지고 있다. 또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고장난 제품을 납품한 제조사의 제품을 하자수리 등을 이유로 계속 구매하면서 음향신호기 쪽은 전혀 모르는 지역 업체가 입찰에 참여하도록 한 뒤 기존 업체가 계속 납품하도록 하거나, 제품의 질은 무시한 채 값싼 제품만을 구매하여 잦은 고장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철도, 지하철, 전철 등 각 역사에 설치된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는 어떤가? 지난 몇 해 동안 허술한 대체기준으로 검사하고 관리하다가 지난해 12월 들어서야 비로소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에서 검사기준을 확정·고시하였다. 이런 결과 그간 국민의 세금으로 설치된 장애인용 엘리베이터(MRI방식)는 계속 고장과 말썽을 부렸다. 휠체어리프트를 보자.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에서는 기존 휠체어리프트가 전동휠체어나 스쿠터의 탑승으로 추락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면서 국제규격에도 없는 휠체어리프트 규격을 서울지하철건설본부의 요청에 따라 크기를 확대하여 사전 실험도 없이 규격을 제정하였는데, 이것이 곧 장애인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주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있는 곳에 휠체어리프트를 설치하여 장애인들, 특히 목발을 사용하는 장애인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점자 유도 블록도 마찬가지다. 2001년 4월20일 산업자원부에서는 점자블록 한국산업규격(KS) 기준안을 마련하였으나 지금까지 보건복지부의 미온적인 태도로 아직도 이 규격으로 고시되지 못하였고, 이런 결과로 다양한 규격외 제품이 널리 설치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두루 불편을 끼치고 안전에 위협을 주고 있다.

왜 장애인 편의시설과 관련된 국가규격이나 구매행태는 개선되지 않고 문제점이 계속 발생하는가? 왜 장애인을 위한다면서 장애인들의 의견은 수렴하지 않고 설치에만 급급하여 더욱 불편을 초래하고,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가?

진정 세금낭비를 막는 방법은 무조건 값싼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비싸더라도 사전에 까다로운 품질 검사와 장애인의 의견 수렴을 거치고, 해당 정부 부처는 솜방망이 법규를 지금의 권장 또는 권고사항에서 의무사항으로 강화하여야 한다. 장애인들이 사용할 제품을 돈벌이에만 눈이 어두워 장애인의 불편은 아랑곳없이 엉터리로 만들어 장애인들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고 국민들 혈세를 계속 낭비시키는 업체는 조달청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입찰 및 구매를 영구히 제한하는 강력한 법규도 만들어야 한다.

[리플합시다]장애인 일자리 100,000개 과연 가능할까?

*이 글은 한겨레신문 4월 24일자 왜냐면에도 실린 글입니다.

*박종태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일명 '장애인권익지킴이'로 알려져 있으며, 장애인 편의시설과 관련한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박종태(45)씨는 일명 '장애인 권익 지킴이'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고아로 열네살 때까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자랐다. 그 이후 천주교직업훈련소에서 생활하던 중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92년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눌려 지체2급의 장애인이 됐다. 천주교 직업훈련소의 도움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고 15년정도 직장을 다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세상에 되돌려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92년부터 '장애인 문제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97년 경남 함안군의 복지시설 '로사의 집' 건립에서 부터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 및 법령 등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6월 한국일보 이달의 시민기자상, 2001년 장애인의날 안산시장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결사'라는 별명이 결코 무색치 않을 정도로 그는 한가지 문제를 잡으면 해결이 될때까지 놓치 않는 장애인문제 해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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