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유도기. <공정거래위원회>

현장고발/덜미 잡힌 음성유도기 담합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길 핸디케어와 우인 이엔에이, 도일 이디피 등 시각장애인용 음성유도기 제조업체 3곳에 대해 시정 명령과 함께 모두 1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해 8월 서울도시철도공사가 발주한 시각장애인용 음성유도기 입찰 과정에서 제조업체끼리 담합했다는 이유다.

이번 사건은 2005년 9월 중순경 서울도시철도공사측이 음성유도기 제조사간 사전담합 의혹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했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약 8개월간의 조사 끝에 담합 사실을 확인해 발표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공정거래법 제19조 제1항 제1호(가격의 결정, 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 위반을 적용, (주)한길핸디케어측에는 주모자로 추징금 400만원을, (주)도일이디피와 (주)우인이엔에이는 가담자로 각각 300만원씩을 추징하는 것으로 이번 사건은 마무리됐다.

이번 사건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이번 사건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찾기 위해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알아보았다.

3개 업체 담합 공모…휴먼케어에 협박과 회유

먼저 담합 업체중의 하나인 (주)우인이엔에이의 사장에게 휴대폰으로 업체들 간의 담합 경위를 자세히 들어봤다. (주)우인이엔에이 사장에 따르면 한국철도공사 입찰 건은 우인이엔에이에서 낙찰을 받아 계약을 하고, 서울도시철도공사 입찰 건은 (주)한길핸디케어에서 낙찰을 받아 계약하고, 제품은 (주)도일이디피의 제품을 납품하기로 사전에 업체간 공모가 진행됐다. 특히 이익금에 대해서는 상호 1천만원씩 나누기로 했다.

그 후 (주)휴먼케어가 시장에 진입해 각 입찰 건에 참여하면서 3사간의 담합 이행이 불가능해졌다. 과도한 경쟁에 따른 가격하락을 막고자 (주)휴먼케어를 서울도시철도공사 입찰 전 담합에 가담시키기 위해 3사가 회유했으나 응하지 않았고, 서울도시철도공사 입찰 결과 휴먼케어가 낙찰됐다.

3사는 (주)휴먼케어의 낙찰을 무산시키고 새로운 담합의 계기로 삼고자 4개 업체가 담합을 했다는 ‘거짓 담합확인서’를 서울도시철도공사에 제출했다. 휴먼케어측에는 이를 철회하는 조건으로 각사에 1천만원씩 총 3천만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고, 추후 입찰 건에 대해 담합에 합의해 줄 것을 (주)휴먼케어측에 요구했다.

담합내용을 팩스로 한길핸디케어에서 먼저 서울도시철도공사에 접수했고, 3개사가 도시철도공사에 모여서 담합내용을 함께 진술했다. 도시철도공사에서는 업체들 진술을 자세히 듣고 작성한 담합확인서에 각사의 도장을 찍어 도시철도공사측에 제출하면서 조사를 의뢰했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들어가 담합 사실을 확인했다.

휴먼케어, 담합 요구업체 요구 녹취해 고발

억울하게 담합 누명을 썼던 (주)휴먼케어 사장에게도 사건의 경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어봤다. 휴먼케어 사장은 업체 우인등을 통해서 담합을 여러 차례 회유 받았으나 응하지 않고 소신껏 도시철도공사에 입찰에 응해 낙찰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낙찰을 받은 후, 계약하러 갔다가 도시철도공사에서 업체들이 담합을 했다고 팩스로 민원을 제출했다는 청천벼락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됐다. 며칠 후 서울도시철도공사측에서 불러서 갔더니 3개 회사 업체들도 와 있었고 각 업체들이 진술한 담합 내용을 도시철도공사에서 정리해 공정거래위원회 제출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날 3개회사 사장과 휴먼케어 사장, 휴먼케어 사장과 동행한 사람까지 총 다섯 명이 도시철도공사 1층 로비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휴먼케어 사장은 담합을 하지 않았는데 왜 거짓말로 담합했다고 했는지 항의하니 업체들은 각 업체에 1,000만원씩 주면 도시철도공사에 제출한 담합 민원서류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들의 요구가 말 같지도 않아 그냥 나와 버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 사람이 담합을 주장하고, 혼자 담합을 안했다고 주장하니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나 억울해 누명을 벗을 길을 찾다가 여러 차례 전화 내용을 녹음해 녹취록을 공정거래위원회 제출했고, 이것이 사전담합 누명을 벗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질 높일 생각은 안하고 돈벌 궁리만

이번 사건은 그동안 업체들은 음성유도기의 질을 높일 생각은 하지 않고, 시각장애인들이 외면하는 제품을 설치해왔다는 것은 확인시켜주고 있다. 국민들의 혈세가 장애인을 팔아먹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에 의해 낭비되고 있었던 셈이다.

새로운 회사가 음성유도기 시장에 들어오면 회유·협박해 담합을 요구하고, 말을 안 들으면 거짓 민원을 제출하는 방식이 이들이 사용한 수법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이 문제가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제소돼 결국 덜미를 잡히게 된 것이다. 이들에게 과징금 부과라는 조치가 취해졌지만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지 재고해볼 필요성이 있다.

*박종태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일명 '장애인권익지킴이'로 알려져 있으며, 장애인 편의시설과 관련한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박종태(45)씨는 일명 '장애인 권익 지킴이'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고아로 열네살 때까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자랐다. 그 이후 천주교직업훈련소에서 생활하던 중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92년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눌려 지체2급의 장애인이 됐다. 천주교 직업훈련소의 도움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고 15년정도 직장을 다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세상에 되돌려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92년부터 '장애인 문제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97년 경남 함안군의 복지시설 '로사의 집' 건립에서 부터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 및 법령 등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6월 한국일보 이달의 시민기자상, 2001년 장애인의날 안산시장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결사'라는 별명이 결코 무색치 않을 정도로 그는 한가지 문제를 잡으면 해결이 될때까지 놓치 않는 장애인문제 해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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