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지하농성장 (사진=김광일 기자). ⓒ노컷뉴스

CBS노컷뉴스 김광일 기자

장애인들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역에서 시작한 농성이 오는 20일로 어느덧 4주년을 맞게 됐다.

이들은 그동안 농성장을 지나는 시민들의 싸늘한 반응에 실망하고 겨울이면 추위와 싸우느라 고전했다면서도, 이제야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 "내가 왜 너희까지 신경 써야 하냐"는 가시돋친 대답

"한겨울에, 엄청 한파에 혼자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데 60대쯤 돼 보이는 남성분이 오시더니 다짜고짜 '병신들이 육갑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니네 지금 뭐 달라고 하는 거 아니냐'며 '이렇게 떼쓰면 해주고 싶어도 안 해줄 거다'라고 한참을 소리치셨어요."

16일 농성장에서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만난 광화문공동행동 이형숙 대표(1급 지체장애인)는 "지난 2012년 농성 초기부터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심지어 경찰과의 대치로 농성장 주변이 아비규환이 됐을 때 주변 시민들에게 "도와달라, 함께 가자"고 요청했다가 한 여성으로부터 "내가 왜 너희까지 신경 써야 하냐"는 가시돋친 대답을 들어야 했다.

겨울이면 농성자의 체감온도는 영하 20˚C까지 떨어졌다. 광화문광장에서 해치마당을 통해 들어오는 강풍에 정수기 물통은 통째로 얼어버렸다.

농성장 장애인들은 멸시와 추위를 견디며 고스란히 4년을 버텨냈다. 그러는 동안 세간의 손가락질도, 별안간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고, 매월 강제퇴거명령서까지 날아들었다.

서울 종로구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지하농성장(사진=광화문공동행동 제공). ⓒ노컷뉴스

◇ 휠체어 탄 중증장애인들의 절박한 요구

장애인들이 이처럼 죄인 취급을 받아가며 4년간 농성장을 지켜온 이유는 바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정부가 장애등급제를 이용해 장애인들을 신체적 손상정도에 따라 나눠 지원하고서 이를 빌미로 예산 증액을 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광화문공동행동 측은 "현재 장애등급 1~2급이 아니면 받을 수 있는 지원은 거의 없다"면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내가 얼마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저소득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양책임을 가족에게 지우는 부양의무제 역시 장애인들을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 대표는 "호적상 가족이 있는 장애인들은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그러다 보니 장애인에게 돈을 대주기 힘든 가족들은 결국 이들을 국가지원시설로 보낼 수밖에 없게 된다"고 성토했다.

이어 "우리는 정치적으로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직이 큰 것도 아니라서 절박한 요구를 전달할 방법이 이것(농성)밖에는 없었다"며 "특히 주로 휠체어 탄 중증장애인들이기 때문에 무더위나 추위를 피해 지하 농성을 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지하농성장 (사진=김광일 기자). ⓒ노컷뉴스

◇ 역대급 농성에…농성장, 시위의 메카로 자리매김

'서울특별시 종로구 도렴동 83번지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지하농성장'

농성이 장기화하면서 광화문역 농성장은 아예 고유명사가 됐다. 택배 기사들이 주소를 기억하고 물품을 배송할 정도다.

지난 2014년 빈손으로 상경한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쉼터로 이용한 뒤부터는 1인시위나 노숙농성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계속되며 농성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농성 초반의 싸늘한 시선과는 달리 이제는 사회복지학과 전공생들을 중심으로 한 견학생들도 농성장에 줄을 잇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이전까지 그저 보호대상으로만 여겨지던 우리가 이제는 비로소 동지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며 "그래서 이렇게 긴 농성을 하면서 오히려 정말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은 오는 19일 오후 부스 행사와 문화제를 시작으로 한 달간 농성 4주년 행사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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