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조태임 기자

◇나는 2등급입니다= 나는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은 36살 장애인입니다. 사람들은 '정신지체'라고도 하더군요. 엄마는 술만 마시면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때문에 아주 어릴 때 나를 두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20년 전인가요. 아빠와 함께 서울에 있는 언니 집을 찾아왔다가 길을 잃고 그대로 가족과 헤어졌습니다.

글도 못 읽고 숫자도 몰라서 우리 집이 어디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헤메다 누가 파출소로 데리고 갔는데 나는 아버지 이름만 부를 뿐이었습니다. 우리 집 주소도 전화번호도 전혀 몰랐습니다.

결국 나는 시설에서 한참을 지내다가 얼마 전 지체장애가 있는 언니와 함께 시설을 나와 둘이서 살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합니다.

김.윤.희. 이름 석 자는 그래도 야학에서 배웠습니다. 숫자도 이제 10까지는 알아봅니다. 그렇지만 지하철 노선은 너무 복잡하고, 버스 번호도 나는 모릅니다. 도와주는 야학 선생님이 없으면 나는 또 다시 길을 잃은 미아가 되고 말 것입니다.

야학에서 활동보조인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라에서 나처럼 일상생활이 힘든 장애인들에게 보조를 붙여준다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활동보조인을 신청할 수 없습니다. 2등급이기 때문입니다.

장애 1급만 활동보조인 제도를 신청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상합니다. 나도 옆에 도와주는 사람이 꼭 필요한 장애인인데...도망간 엄마가 지금이라도 내 옆에 돌아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보고 싶습니다.

◇4월20일 마다 나오는 소리 = 언제부턴가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만 되면 빠지지 않고 꼭 등장하는 것이 장애인 등급제를 폐지해달라는 목소리다.

장애인 등급제는 정부가 지난 1988년부터 도입해 운영해오고 있는 제도다.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시행 24년이 지난 지금은 장애인 복지 전달체계로서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 보건복지부가 장애인 실태조사에 나선 결과 활동보조 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은 35만 명이지만, 실제 혜택을 받는 장애인은 5만 명에 불과했다.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 7명 중 6명은 복지체계에서 소외돼 있는 셈이다.

또 사람을 등급으로 나눠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들 장애인 야학'에서 교사로 일하는 허신행 씨는 "예산 절감을 위해 장애 정도에 따라 줄을 세워 사람을 마치 소나 돼지처럼 등급을 나눠서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장애인들에게 자신의 장애를 더욱 과장하도록 만들어 결과적으로 자활의지마저 꺾는 문제도 있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은 "장애판정 등급을 높이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장애를 더 부각하고, 할 수 있는 일도 못한다고 발을 빼게 된다"고 지적했다.

여성과 남성, 성인과 학생, 돌봐줄 사람이 있는지 유무 등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으로 등급을 부여하는 제도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장애인 등급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 밖에 없다. 미국이나 호주 등의 국가에서는 장애인이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신청해, 지원을 받고 있다.

전달체계로서 실효성이 떨어지는데다 마치 소나 돼지처럼 등급을 매겨 인권침해 주장까지 나오는 장애인 등급제, 장애인의 날이 올 때마나 폐지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등급제를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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