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결산]-①도가니

2011년의 끝자락에 서있다. 올해 장애인계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에이블뉴스가 인터넷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한 ‘2011년 장애인계 10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해를 결산하는 특집을 전개한다. 첫 번째 순서는 전국을 뜨겁게 달군 ‘도가니’다.

올해 장애인계의 뜨거운 이슈는 '도가니'다. 이를 증명하듯 에이블뉴스가 실시한 ‘2011년 장애인계 10대 키워드’ 설문조사에서는 ‘도가니’가 최고의 키워드로 뽑혔다. 광주인화학교 내 청각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다룬 황동혁 감독의 영화 '도가니'는 드러나지 않은 사회복지법인·시설 내 장애인 인권침해 현실을 밖으로 분출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로 인해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비롯한 장애인 인권침해 문제는 국민적 관심으로 떠올랐다. 전국은 장애인인권 현실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다.

이 같은 분노에 정부와 정치계가 반응하며 장애인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갖가지 대책들을 뿜어냈다. 하지만 내놓은 대책들이 적극적으로 정립되고 시행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도가니’는 계속될 우려가 높다.

영화 '도가니',전국 '분노의 도가니' 만들어‥장애인인권침해 현실 조명

도가니대책위원회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촉구하며 실시하는 서명전을 위한 홍보 플랜카드의 모습. ⓒ에이블뉴스

영화 '도가니'는 지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광주인화학교에서 청각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다뤘다. 실제 광주인화학교의 교장과 행정실장, 교사 등은 지위를 이용해 학생들에게 수년간 성폭행을 일삼으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2006년 이 사실이 알려져 가해자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등 가해자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쳤고, 피해자들은 제대로 된 보상도, 사과도 받지 못했다.

이후 광주인화학교 사건은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에서 다뤄졌으며, 이후 영화 ‘도가니’로 재탄생됐다. 영화의 힘은 대단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치를 떨었고 전국은 분노의 ‘도가니’가 됐다.

영화 ‘도가니’에서 드러난 장애인 인권침해의 문제는 많았다. 우선 사회복지법인·시설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됐다. 이들 운영이 감시·견제를 받지 않는 족벌경영으로 유지돼,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등 장애인의 인권침해를 야기했다는 것. 실제 광주인화학교 등을 운영한 우석재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우석재단이 2005년 당시 운영하던 4개 시설 중 3개 시설의 시설장인 이사장의 아들, 처남, 동서는 인화학교 사건의 가해자들을 두둔하는 등 사건에 대해 침묵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특수학교 내에서의 장애인 인권침해 사례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가니' 사건 이후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특수학교 155곳의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지적장애 학생에 대한 교사의 성추행 의심사례 2건 등 11건의 인권침해가 발생했다. 인권침해 사례에는 언어폭력이나 체벌, 전학 거부 등 다양한 사례도 포함됐다.

이밖에 성폭력 등 인권침해를 범한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도 문제로 떠올랐다. 광주인화학교 사건의 경우에는 고발된 가해자 6명 중 4명은 실형선고를, 2명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중 2008년 7월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기소된 인화학교 교장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결국 장애인과 13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 범죄의 공소시효와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낮은 양형, 성폭력특례법의 '항거불능' 조항 등이 장애인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들이 쇄도했다. 특히 ‘항거불능'인 상태를 이용한 간음’을 명시한 성폭력특례법 6조로 인해 항거불능 상태가 입증되지 않는 지적장애인의 경우에는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사회복지사업법은 여전히 표류‥반짝 대책 그쳐

이같은 ‘도가니’의 힘은 정부와 정치권이 장애인 인권침해를 위한 대책들을 쏟아내도록 만들었다. 여·야는 먼저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사회복지법인·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돼야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사회복지법인·시설의 폐단을 막고, 장애인 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진수희, 박은수, 곽정숙 의원은 사회복지법인 운영의 투명성을 위한 공익이사제 도입을 담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들을 발의했다.

장애인단체 등으로 구성된 도가니대책위원회는 이같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에 동의하며 8만6,262명의 서명이 담긴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촉구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노숙농성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촉구 10만인 시민청원운동 선포식' 모습에 참석한 인화학교 졸업생들. ⓒ에이블뉴스

장애인 성범죄 가해자의 엄중 처벌을 우선으로 하기 위한 '성폭력특례법'에 대한 개정 요구도 더욱 적극적으로 제기됐다. 여기에는 '항거불능' 조항을 삭제하고 장애인·아동 성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게 주축이 됐다.

이에 국회는 지난 10월 28일 이같은 요구의 성폭력특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19일 장애인 강간죄의 권고형량을 8~12년(가중)으로 받도록 하는 양형기준 수정안을 의결했다. 이는 지난 9월 22일 영화 개봉 이후 여론 흐름에 따라 3개월 안에 ‘도가니법’, ‘도가니대책’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들이다.

하지만 ‘도가니법’이라고 명명돼 왔던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들은 아직도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사회복지법인·시설의 폐단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대책임에도 한미FTA비준안 처리로 인한 국회 파행으로 아직도 표류하고 있는 것. 현재 여·야가 12월 임시국회에 합의하긴 했지만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 통과에 대한 국회의 적극적인 의지없인 이번 18대 국회가 끝남과 동시에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국회가 야심차게 마련한 장애인성폭력방지특별위원회는 구성조차 되지 않은 실정이다. 국회는 지난 10월 28일 장애인 성폭력 등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조사와 종합적인 대책을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성폭력방지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의안에 따르면 여·야 의원 18명이 특위위원으로 구성돼 5월 29일까지 장애인 성폭력 등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조사와 종합적인 대책을 논의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특위위원은 정해지지 않았다. 사실상 특별위원회의 실효성은 없다는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장애인인권침해, 지속적인 대책 필요

사실 장애인 인권침해 문제는 ‘도가니’사건 이전에도 매년 되풀이돼 왔다. 그때마다 정부나 정치권은 대책 강구 목소리를 제기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인의 외모·신체를 장애인 동의 없이 촬영, 공개한 것은 ‘인권 침해’라는 판단을 내렸다. 사진은 장애인의 알몸이 공개된 모습. ⓒ에이블뉴스

지난 2009년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이 장애인 미신고시설을 방문 조사한 결과, 여성생활인들은 남성생활인에 의해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했다. 또한 생활인들은 매끼 저녁식사를 주변 초등학교의 점심급식에서 남은 잔반으로 해결하는 등 장애인에 대한 시설 내 인권침해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로 인해 미신고시설을 비롯한 시설 등의 인권침해 방지 대책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고, 복지부도 인권침해 조사를 강구하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시설 내 인권침해는 현재진행중이다. 이는 최근 복지부가 '도가니'파장에 따라 실시하고 있는 장애인시설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104곳의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성추행, 폭행 등 27건의 인권침해가 발생한 걸로 조사됐다.

또한 지난 8월까지 발생한 장애인 관련 성폭력 범죄는 385건으로 작년 8월 187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여기에 성폭력 피해 사례 4,353건 중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인 경우 3,090건으로 전체의 70.9%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한 달 동안 고등학생 16명이 지적장애인 여중생을 화장실, 건물 옥상 등에서 집단으로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때도 장애인계와 민주당 최영희 의원은 항거불능을 삭제하는 성폭력특례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못했다.

사회복지사업법 개정도 지난 2007년 정부가 추진했지만 한나라당과 종교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도가니’ 파장으로 이어진 대책들 대부분이 이미 과거에도 꾸준히 제기돼왔던 것들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장애인 인권침해가 발생한 즉시, 대책들이 마련됐다면 현재 만연하고 있는 장애인 인권침해를 조금은 더 미리 예방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책들은 미완성이고, 미흡하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계속적인 대책 마련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도가니대책위원회는 진정한 '도가니' 사태 방지를 위해선 사회복지사업법이 개정돼야 한다며 릴레이 1인시위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등의 대책이 장애인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루라는 판단에서다.

결국 ‘도가니’ 여파로 인해 정부와 국회가 내놓은 대책들이 과거처럼 반짝 대책에 머무른다면 장애인의 인권침해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진정한 장애인의 인권보호를 위한다면 여론에 편승한 반짝 대책이 아닌,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대책과 장애인 인권침해 예방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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