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결산]-⑤형제복지원 사건

다사다난(多事多難). 매년 끝자락에 서서 장애인계를 뒤돌아 볼 때 드는 생각이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며 청와대 삼보일배 행진, 대규모 삭발투쟁 등 대정부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이 결과 청와대가 9월 발달장애인과 부모들을 초청한 가운데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추진을 위한 예산 확보가 뒷받침 되지 않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내년 장애등급제 폐지의 상황도 녹녹하지는 않다. 장애등급을 대신할 종합조사표에 깊은 우려가 제기됐다. 시뮬레이션 결과 특정 장애유형의 서비스가 대폭 줄어드는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관련해서는 활동지원사 휴게시간, 가족허용 등을 두고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무엇보다 주목될만한 키워드는 장애인 공익소송이다. 몇 년 동안 지속된 신안 염전노예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에버랜드 장애인 놀이기구 탑승거부 소송에 관해 2심 재판부가 장애인들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이 밖에도 검찰이 1980년대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인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상상고하고 진상규명의 의지를 밝히는 것은 물론, 문무일 검찰 총장이 피해자와 가족을 직접 만나 사과한 것도 올해 빼놓을 수 없는 이슈였다.

에이블뉴스는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읽은 기사’ 1~100위까지 순위를 집계했다. 이중 장애계의 큰 관심을 받은 키워드 총 10개를 선정해 한해를 결산한다. 다섯 번째는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대검찰청에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피해 생존자들. ⓒ에이블뉴스DB

올해 검찰과 부산시가 ‘한국판 홀로코스트’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책임을 인정하고 진상규명을 약속하면서 판결 32년 만에 피해 생존자들의 억울함을 풀 기회가 마련됐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 형제복지원 내 직원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이유로 장애인 등을 감금하고 강제로 노역시킨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이다. 이 시설에 3000명 가량이 수용됐으며 구타 등으로 인한 사망자만 5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7년 당시 찰은 원장 박인근(2016년 사망)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6억원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감형해 징역 10년에 벌금 6억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결과 벌금 6억원이 자라진 징역 4년이 선고됐고, 형량이 점점 줄어들더니 마지막(대법원 파기환송심)에는 2년 6개월으로 낮춰졌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 형제복지원 사건을 수면위로 끌어올린 것은 피해 생존자 한종선씨였다. 2012년 5월 국회 앞 1인 시위는 물론,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책 ‘살아남은 아이(한종선, 전규찬, 박래군 공저)’를 출간해 당시 실상을 낱낱이 알렸다.

이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현 여성가족부 장관)은 2014년 7월 ‘내무부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등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19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폐기됐으나, 20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며 한종선씨는 2016년 겨울부터 18일 현재까지 국회 정문 부근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요구하고 있다.

검찰과 부산시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만큼 내년에는 피해 생존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앞서 대검찰청은 4월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산하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형제복지원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9월 기자회견을 갖고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에게 사과하고 진상규명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부산시는 11월 1일 행정부시장 직속의 진상규명 부서 ‘형제복지원 대책 TF팀’을 출범·운영하고 있다. 검찰 역시 11월 21일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했다.

지난 11월 27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에게 사과한 문무일 검찰총장. ⓒ에이블뉴스DB

여기에 문무일 검찰총장이 11월 27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를 초청한 가운데 검찰의 부실수사를 인정하고 고개숙여 사과하기도 했다.

30년이 지났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은 피해 생존자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다. 한종선씨와 함께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간 그의 누나가 (당시의 고통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만 봐도 당시 일어난 인권유린의 처참함을 짐작할 수 있다.

대법원은 30년 만에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검찰총장의 비상상고를 받아들이고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하는 것이 ‘지옥’ 속에서 살아남은 피해 생존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국회는 권한도 있고 능력도 있다. 명분도 여론도 어느 하나 갖춰지지 않은 게 없다.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단순한 법이 아니라, 피해 생존자들에게 ‘아픔의 치유’고 ‘명예의 회복’이다.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 나야한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줘야한다”

생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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