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흔들지 말라

인권위 조직축소 방침은 국제적 망신 자초하는 길

지금은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오히려 인력 확충해야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가 지난 2월 11일 ▷3개(부산, 광주, 대구) 지역사무소 폐쇄, ▷현 5국(局) 22과(課)인 조직을 3국 10과로 축소, ▷정원을 208명에서 146명으로 감축하는 등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대한 조직축소 방침을 통보한 이후 국내외적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권위 조직 및 정원 축소를 강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청문회에 이어 지난 3일 있었던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달곤 행안부 장관은 “인권위 축소는 이미 결정이 난 상태”라며 인권위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달 중으로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국가인권위원회 직제’를 개정하여 강제 시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같은 행안부의 입장은 이명박 정부의 ‘인권’에 대한 무지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자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는 일이다.

인권위는 지난 2001년 11월 각국 인권기구가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유엔의 파리원칙(Paris Principles)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독립기구이다. 그동안 인권위는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주요 권고들을 내놓고,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부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인권위는 전 세계 국가인권기구의 대표모임인 ICC(International Coordinating Committee of 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ions,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의 부의장을 거쳐 2010년 초 의장국 수임을 앞두고 있는 모범적 국가인권기구이다. 정부 역시 국제사회를 통해 인권위가 정부조직과 별도의 독립적인 기구로 인권정책, 법령, 제도, 관행에 대한 연구와 개선 권고, 국가기관의 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 및 구제, 인권홍보 등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위를 조직효율화의 차원에서 축소하려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번 인권위 축소방침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득력이 없다. 첫째, 행안부가 조직축소의 근거로 들고 있는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이미 감사원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현안보고를 통해 인권위의 축소를 요구한 적이 없다고 밝힌바 있다. 둘째, 인권위의 정원을 축소해도 업무 수행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행안부의 판단은 구체적 근거가 없다. 또한 폭증하는 진정, 상담, 민원 건수에 비해 인권위의 인력충원이 더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행안부 역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당시 20명의 인력 증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바 있다.

셋째, 행안부의 인권위 축소방침은 스스로 감사원에 보낸 입장을 정반대로 뒤집은 것으로 정치적 판단에 따른 말 바꾸기이다. 지난해 7월 행안부는 감사원에 보낸 '인권위 지역사무소 인력 증원에 관한 사항'이란 문서에서, 2005~2007년 부산럽諭막광주 지역사무소를 개설한 것과 관련해 "(당시) 업무의 지역적 분할 수행뿐 아니라 신규 업무량의 증가 측면을 함께 고려했다"며, 지역사무소 신규 개설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바 있다. 또한 "2001년 인권위 출범 뒤 각종 진정렌遮?등 업무는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본부 인력을 조정해 지역사무소에 배치하는 것은 본부의 업무 공백 및 인력 부족 상태를 가중시킬 수 있다"며 본부 인력 축소에 대해서도 반대 뜻을 분명히 했었다. 행안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정치적 고려에 의한 판단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계층의 인권접근성을 높이는데 있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지역사무소의 폐쇄 방침은 부정확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다. 지역사무소가 개소된 뒤 지역에서 제기되는 진정사건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것은 실증적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역의 학계, 종교계, 예술계, 시민사회 모두가 한목소리로 지역사무소의 폐쇄를 반대하고 있는 것 역시 이를 증명한다. 무엇보다 행안부가 입법, 사법, 행정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관인 인권위의 조직축소 방침을 통보한 것은 252명의 법학교수들이 이미 지적하였듯이 건전한 법리와 상식에 반하는 처사이다.

국제사회 역시 인권위에 대한 정부의 독립성 침해와 조직축소 방침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난 2월 25일 나바테텀 필라이(Navanethem Pillay)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직접 외교통상부장관과 행전안전부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의 인권위는 세계 각 국의 국가인권기구들이 따르고자 하는 모델로 높이 인식되고 있다며 인권위 축소가 강행된다면 국제적 명성과 역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시절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겠다며 독립성 침해 논란을 벌였을 당시 루이스 아버(Louise Arbour) 유엔인권최고대표로부터 받은 항의서한 이어 두 번째로, 대단히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아시아의 주요 인권단체들도 지난 4일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 정부의 인권위 축소방침에 ICC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경제위기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몰릴 사회적 약자들이 급증할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국제사회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랑하고 있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의 이행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 있는 집행,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국가공권력으로부터의 인권침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권위의 인력은 오히려 대폭 확충되어야 마땅하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인권보호, 국제적 수준의 인권제도의 구축, 인권에 대한 대중인식의 제고를 위해서도 인권위는 더욱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은 계속되어야 한다.

'아시아의 선도적 인권옹호국가‘라는 한국 정부의 선전은 허구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국의 인권상황은 급격히 후퇴하고 있고, 국제사회는 이러한 한국의 인권상황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지난 3일 있었던 제10차 유엔인권이사회 기조연설문을 통해 “한국 정부는 인권, 민주주의, 법의 지배 등 보편적 가치의 충실한 이행이 평화롭고 정의로우며 조화로운 사회의 핵심요소라는 신념하에 인권기준 제고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며 기만적 태도를 보였다. 인권기준 제고를 위한 노력이 다름 아닌 인권의 보호와 증진을 위해 일하는 인권위의 축소방침이란 말인가. 유엔인권이사회의 재선이사국이자 유엔사무총장과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부판무관을 배출한 국가로서 인권위의 조직 및 정원 축소는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국격(國格)에 맞지 않는다. 정부는 인권위에 대한 독립성 훼손 시도를 중단하고 조직 축소방침을 즉각 철회해야 할 것이다.

3월 6일

참여연대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