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그냥 서른 살로 하자!”

아빠가 촛불을 붙이다가 그만두신다. 초에 불을 전부 붙이기가 어지간히도 귀찮으셨던 모양이다. 케이크를 사 온 동생마저 일부러 작은 초 한 개를 덜 받아 왔다고 생색내듯 말한다. 촛불의 개수로라도 내 나이를 줄이려는 가족들 앞에서 선언하지 못했다.

‘2026년 생일을 고대해’

나는 40대가 되기만을 기다리는데 가족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느리게 가길 바라는 마음이지 않을까? 나이가 그렇게 먹었는데 '왜 이렇게 어려 보이냐?'라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내가 30대라고 하면 안 믿긴다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학생으로 보기도 한다. 어리게 보인다고 자랑하냐며 여기까지만 읽고 나가려는 사람들도 분명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다음 단락을 읽어보면 자랑하려는 게 절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엄마랑 함께 옷가게에 간다. 옷가게 주인이 다가와서 장담이라도 하는 듯 "학생이죠?"라고 묻는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엄마는 "얘 곧 40대예요." 라고 말씀하신다. 옷가게 주인이 나를 위아래로 흩어본다. 자격지심 때문인지 옷가게 주인의 속마음이 읽힌다. '아니! 무슨 40대가 지 옷 하나 제대로 못 골라요?' 나는 사실 혼자 옷을 고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옷 사이즈를 고르는 일부터 시작해서, 새 옷을 조심스럽게 입어보는 일까지 모두 어렵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이런 말을 실제로 들으면 속이 무지 상할 것 같다. 언젠가는 듣게 될까 봐 옷 사러 가기가 점점 꺼려진다. 차라리 학생이냐고 물을 때 그렇다고 대답할 걸 그랬나? 그러면 ‘왜 이렇게 성숙해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언젠가 가족들과 식당에 갔을 때 술잔이 인원수대로 안 나온 적이 있었다. 설마 나를 또 미성년자로 본 것일까? 술잔 하나쯤 덜 나와도 상관없었는데 울화가 치밀어 오르게 만든 사건(?)이었다. 그 후론 남는 술잔을 반납하게 되더라도 인원수대로 나오나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어떤 사람들은 편의점에 술이나 담배를 사러 갔는데 신분증 보여 달라고 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고, 자랑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어리게 보이고 싶지 않다. 아니,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 날 은근히 얕잡아 보고 친해지지도 안 했는데 반말부터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나이를 올린다. 나잇값 못한다는 소릴 들을지언정 1살이라도 더 많아 보이려 발악을 한다. 어차피 도찐개찐이지만!

화를 주체 못 해 나도 모르게 내뱉는 말은 아니다. 나는 주민등록상 생일이 실제 생일과 1년 정도 차이가 난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발화가 제대로 안되고 걸음걸이가 불안정 하는 등 어렸을 때부터 행동 발달이 더디었나 보다.

부모님께서는 학교를 늦게 보내기 위해 거금을 들여서 생년월일을 변경하신 걸로 알고 있다. 당시에도 초등학교 입학 유예 신청 제도가 있었다지만 아마 이때는 정보가 부모님 귀에 들어갈 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만일 아셨다면 이런 방법을 택하시지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된다.

나도 낯간지럽기도 하고 상대방도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는 없어서 웬만해선 주민등록상 나이로 통성명을 한다.(글에서도 이 단락은 뺄까 수십 번 고민했지만 도저히 이 에피소드 없이는 글을 이어나갈 재간이 안돼 어쩔 수 없이 밝힌다.)

그런 내가 한 살 높여 말한다는 건 참다 참다 더는 못 참고 선언하는 ‘더 이상 나를 무시하지 마세요.’라는 일종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아무튼 어릴 때 나는 변경된 내 나이를 엄마가 계속 일러주어도 친구들한테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나 정말 8살 맞아”

“거짓말하지 마! 무슨 네가 8살이냐? 목소리도 이상한 게"

친구들이 내 말을 안 믿어 준다면서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먼 훗날 들을 수 있었다. 그 나이 때는 7살과 8살은 엄청난 나이 차이다. 허구한 날 6살 반으로 쫓겨나는 아이가 자신들보다 형아라고 하니 그 친구들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중1학년생이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 앉아 있어도 이질감은 없었다. 오히려 친구들이 언니처럼 성숙해 보였다. 무작정 도움을 주려는 친구들에게 ‘나도 할 줄 알아’라고 말 안 했더라면 같은 반 친구들에게 동생 취급을 받을 뻔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특수학급 친구가 원반 친구들에게 동생 취급을 받는 걸 자주 보았다. 그러지 말라고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무지 속상해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10대 때는 20대가 되고 싶었고 20대는 30대가 되고 싶었다. 10대 때 스무 살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은 듯하다. 거의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스무 번째 생일이 지나기를 기다리며 술을 마시길 기대한다. 함께 20대가 되길 기다리던 친구들은 내 나이가 되어서는 이제는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나이를 더 먹기를 기다린다. 언제 어디서 아이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아주 오래전 사회 초년생으로 회사에 입사했을 때의 일이었다. 나를 중학생으로 대해야 하는지 내 나이에 맞게 대해야 되는지 고민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말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노릇이다. 다행히 아는 사회복지사분께 자문을 구하셨는지 스무 살이 넘은 내가 중학생으로 대우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발달장애인을 어린아이 보듯 하는 경향이 있다.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다짜고짜 반말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다 큰 성인인데 어린아이 달래듯 하기도 한단다. 오죽했으면 발달장애를 대하는 에티켓에 '어린아이 보듯 하지 마세요.' , '제 나이에 맞게 대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을까?

발달장애인은 착하다. 순수하다. 천사 같다. 거짓말을 못한다. 욕을 할 줄 모른다. 등의 문장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세상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형용사나 동사는 다 같다 붙이는 듯하다.

발달장애인을 천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술 담배를 좋아하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도 꺼리지 않는 모습을 본다면 배신감이 드는 표정을 감추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술. 담배를 즐기고 거짓말을 밥 먹듯 입에 달고 산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도 뒷담화 자리에 끼는 걸 좋아하고. 술자리는 사랑한다.

꽤 오래전, 발달장애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여가활동 프로그램에 요즘 어린아이들도 잘 안 듣는 동요가 출몰했다는 소식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접한 기억이 있다. 신나 하기는커녕 ‘이걸 왜 틀어주지?’, ‘우리가 왜 이 노래를 듣고 있어야 돼?'라는 표정을 보였다고 한다. 다행히 요즘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듯하다. 눈 부릅뜨고 비슷한 사례를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가까운 미래에는 발달장애인이 더 이상 피터팬 취급받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본다. 5년 후에 40대가 되고 25년 후에 60대가 된다 해도 유독 나에게만 놀란 토끼눈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그 토끼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악다구니를 쓰고 말겠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러실 거세요? 제 안에 피터 팬은 죽은 지 40년이나 지났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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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다. 꼬꼬마시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달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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