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식 전 유엔장애인권리위원.ⓒ에이블뉴스DB

또 다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이 세기적인 재앙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생각 중이던 기고문의 주제를 바꾸어야 했다. 그나마 간직했던 작은 꿈들을, 내일에 대한 구상을 모두 깨어놓는다.

겨우 취업을 해서 근근이 유지했던 직장이 위협을 받고, 온 세계의 주식이 급락하니 국민연금인들 흔들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오래 동안 너무 많이, 잘 먹고 잘 살았다” 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국민모두가 동의하지는 안겠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6.25와 가난하던 시절을 극복하며 굶주림 속에서 살아왔는데, 이제는 거의 모두가 잊어왔다. 2차 대전의 승리를 주도했던 영국은 오랫동안 생필품의 배급제로 전쟁에 시달린 사회를 지탱했다. 시민질서의 표본이라는 영국의 ‘줄서기’는 오랫동안의 배급제에서 배웠다고 한다. 우리가 살아온 삶의 모습을 진지하게 성찰해 볼 여지가 분명히 있다.

‘더블린 사람들’의 작가 제임스 조이는 이태리에 살면서 이 소설을 썼다. 필자는 사람들이 비교적 안전하다는 호주에 살고 있지만, 한국을 생각하고 보는 눈이 얼마나 총기가 있을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모든 상황-병원, 직장, 학교, 수퍼마케트 등 은 매일 악화 일로에 있다. 새벽에 라디오를 들으니 이런 이야기가 전해졌다. 60대 여성이 홀로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아침 앞문을 여니 누군가가 작은 상자에 싱싱한 과일과 온갖 채소를 소복이 갖다 놓았더라!’라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우리 사회에도 이런 미담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미 한국과 온 세계에 잘 알려진 호주의 엄청난 산불재난을 기화로 많은 온정이 오가고, 유명 가수와 연예인들, 운동선수들, 기업들이 앞장서서 수백만, 수천만 불의 기부가 쏟아져 들어오는 기사들이 많았다. 라디오를 들으며 새삼 ’나눔의 사회‘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서구의 대중매체들은 이구동성으로 모든 경제제도는 이제부터라도 ’인간의 기본 욕구 충족‘을 기본 목표이며 전략으로 하는 ’나눔의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한다. 이제는 보다 자급자족적이며 지속 가능한 경제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 21세기의 과제라고 한다. 본래 이 개념은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등장한 것이다.

이때부터 등장한 것이 협동적 소비에 기반 한 Airbnb, 우버 등이다. 그 후로 접근경제, 수요경제 등 여러 가지로 명칭이 바뀌기도 했다. 새삼 2015년 유엔이 채택한 ’지속 가능한 개발목표-SDG-를 말만 무성하게 하고 소홀히 했었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해 보면 선진 복지국가에서 당연히 여기는 기본적 복지 혜택도 5명 중 4명이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개발도상국으로 눈길을 돌리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장기적으로 볼 때, 나눔을 위한 지속적이고 통합된 사회의 꿈은 자국을 비롯한 온 세계가 ‘나눔’ 이라는 원칙을 수용해야 만 가능할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모든 국민, 세계인으로 하여금 기본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보장해주어 모든 국민의 인권을 존중해주는 보다 효과적인 ‘나눔의 세계’를 구상해 보아야 한다. 밝히건대, 위의 생각은 유네스코의 국제 NGO에 의해 출간된 한 보고서 'A primer on global economic sharing'에서 얻은 것이다.

1997년 IMF 이후 늘 주변에 관심을 끌던 사건 중의 하나는 “부스러기 선교회‘ 이였던 것 같다. 우리 나름대로의 나눔의 실천이었다고나 할까?

전공인 사회정책과 인권의 색깔을 피할 수 없어서 이런 주장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선과 시혜로 공정사회, 나눔의 경제공동체 구상은 비현실적이다.

지난번의 기고문 ‘공정사회’에 근접하는 주장을 하게 되는데, 누진적인 조세제도와 분배 (필자는 소득의 재분배보다는 기회의 제 분배를 주장하지만)를 통해서 국가의 재원의 한 영역을 전체 사회의 혜택을 위해 책정하자는.

이와 같은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국가보호제도는 한 사회의 연대의식과 사회정의의 원칙을 기반으로 사회보장, 국민보건, 최저 생활 보장을 위해 국가의 자원을 나누어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의 결속과 사회의 연대 책임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경제 이론 못지않게 던져진 화두에는 사회적 결속, 사회적 상호 관계, 상호부조와 신뢰의 개념이 있었다. ‘무책임한 사회’는 될 수가 없다. 이것은 한 국가의 국민에 대한 사회 계약이며, 나눔 사회의 과제를 자선이나 시장 경제제도에만 맡겨 둘 수 없다는 것이다.

비상 시대의 한 대응이겠지만 여러 국가에서 추가 국가가 예산 편성과 적극적인 시장 개입과 공공 서비스에 대한 탈 상품화 정책 도입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필자는 분명히 사회의 취약 계층에 대한 현 정부의 사회 분야의 개입 정책 지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원로 정치학자인 한 친구의 염려대로 ‘진보를 표방하는 유사 전체주의를 지지’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호주에서도 현재 다시 한 번 국민보건 재정 확보,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대책, 노령 층과 주의, 경고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지적 장애인 등 소외 계층에 대한 보호 정책이 재삼 우선순위에서 강조되고 있다. 진정한 ‘나눔의 사회’는 ‘모두에 대한 보호와 책임의식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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