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나는 여성장애인의 인권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 체 전북여성장애인연대의 대표가 되었다.

대표가 되기 전, 수필작가라는 이름표 하나 덜렁 가지고 여성장애인을 대상으로 산문쓰기를 지도하며 교육의 혜택에서 너무나 많이 배재되어 있음에 놀랐던 것이, 내가 아는 여성장애인 인권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출산 후, 류머티즘이라는 질환의 후유증으로 중도장애인이 되었으니 공교육의 혜택이나 특별한 장애차별을 겪을 기회는 물론, 관심마저 없어 여성장애인 인권문제에 문외한이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여성장애인 단체의 대표가 되면서부터 장애차별이라는 현실에 부딪쳤다.

장애인단체 대표라고 소개를 하면 꼭 무언가를 얻어먹으려는 부류로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참으로 묘한 것은 수필작가라는 이름표를 들이밀면 전혀 다른 대접을 받았다.

어떤 직함을 내밀어도 ‘나’라는 본질은 그대로인데 장애인이라는 명함 앞에서 사람들은 태도가 변했다. 한번, 두번, 한해, 두해……. 차별의 경험이 쌓이고 세월의 더께가 두터워지며 사회에서 여성장애인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지를 몸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질병과 장애를 지녔지만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왔던 의식 속에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저항의식이 점점 커지게 된 것이다.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6년은, 분노의 힘이 더 컸지 싶다. 여성과 장애라는 이유로 의무교육 세대에 태어났으면서도 학교를 갈 수 없었던 차별에 대한 절망과 분노. 밥만 먹고 살면 되지 무슨 문화를 누리겠느냐는 차별에 대한 저항. 여성장애인 집단은 앉아서 주는 것만 받는 집단이라는 편견에 대한 저항…….

배움의 한을 풀어보기 위해 장애인야학교를 운영하고, 합창단을 조직하여 문화서비스 공급의 주체가 되어 여성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며, 그저 달리기만 계속하였다. 내가 지금 달려가는 길의 방향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도 내릴 시간이 없었다.

6년을 달려온 뒤에야 내가 달려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남들은 여성장애인을 위해 일했다고들 말하지만 종내는 거기에 속한 나 자신을 위한 길이었음을 본다.

더불어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직도 너무 멀음도 깨닫는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속에서 여성장애인의 삶의 질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전혀 달라지질 않았다.

여성이며 장애인인데 이런저런 차별이나 폭력을 당했기로서니 좀 어떠냐는 의식도 여전하다. 이 땅의 모든 여성장애인이 차별이라는 벽을 만나지 않는 세상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갈등에 휩싸여 그만 내려서고 싶다는 간절함에 메여 있을 때 ‘올해의 장애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더 부끄럽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타의 모범이 될 만큼의 삶을 살지 못했다. 내 자신이 여성장애인이기에 그 길을 걸었을 뿐이다. 수상을 하고 난 후 여러 언론 매체들이 수상 소감을 물으며 ‘이 상을 받은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상을 수여한 측에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참 많이 난감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 상의 적임자가 너무나 많다. 장애인식개선과 인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자신의 삶 전부를 바치는 장애인활동가가 받았어야 하는 상을 가로챈 것 같은 죄스러움마저 든다. 장애를 안고서 자신이 걸어야 할 길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장애인들은 또 얼마이며…….

그러기에 상을 받고도 그에 관한 글을 쓰지 않았다. 이 땅의 모든 장애인을 대신해 내가 받았다는 것 외에는 이 상의 적임자는 바로 나라고 내세울게 아무것도 없으니 무슨 이야기를 쓸 수 있었겠는가!

무엇이 이 상의 주인공으로 나를 세우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다만, 주어진 길을 나는 묵묵히 걸었을 뿐이다. 전북여성장애인연대의 대표로서의 길. 여성장애인 수필가로서의 길, 어머니와 아내로서의 길, 사회 속에서 여성장애인으로서의 길……. 지금도 여전히 걷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큰 상이 주어줬다고 목을 곧추세울 것도 없고, 길이 험하다고 낙심하거나 투덜댈 것도 없이 그냥 걸어갈 것이다. 함께 걷기를 원하는 이가 있다면 내 체온과 마음을 다 실어서 손을 잡을 것이다.

더불어 사는 행복한 세상은 그렇게 사는 것임을 실천하고 싶다. 여성장애인이 잘 사는 세상이라면 모든 여성이 잘 사는 세상이며, 모든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일 것이다.

*이 글은 유영희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공동대표(전북여성장애인연대 대표)가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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