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며칠 전 오후, 복지관 카페에서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마시기 시작한 지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일행으로 보이는 세 명이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왔다.

4인용 테이블이었기에 잠시 빈 의자에 짐을 놓는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이내 그들은 자신들이 먹을 음료를 정하고, 주문을 위해 키오스크로 움직이려 했다.

“저희가 여기 자주 오는데 오늘따라 자리가 없네요. 죄송해요. 좀 앉아도 되죠?

그들이 이곳에 자주 오던, 자리가 없던 내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있었던 곳은 2인용 테이블 2개를 붙여놓은 곳이 아닌, 하나의 테이블로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서 테이블 하나를 어느 정도 떨어뜨려 놓고 자리를 별도로 만들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던 곳에,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내 의사를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더 짜증 나는 일이었다. 말이 곱게 나올 수가 없었다.

“앉으시라고 얘기한 적 없구요. 앉기 전에 먼저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요?”라고 하자, “아니 그게 우리가 자리가 없어서 그런 건데 왜 그래요?”라는 말이 되돌아 왔다.

그래서 “여기가 복지관 카페가 아닌 다른 카페라면 이렇게 하시겠어요? 일행이 많고 자리가 없어서 다른 사람 자리에 대신 앉으려고 하면 ‘앉아도 되죠’가 아니라 ‘다른 2인용 테이블로 갈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는 게 일반적인 절차 아닌가요? 난 그렇게 알고 있는데..”라고 말했다.

“아니 보통은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그들이 먼저 사과하면서 복지관 카페에서 일어났던 작은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보통은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라는 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상대방의 이익과 나의 이익이 충돌하는 독립생활에 있어 내 의견을 어떻게 주장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앞선 사례에서 “이런 경우가 없었다”는 것은 자리 하나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거나, 빈자리를 찾아 알아서 이동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마워요라던가, 착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나왔으리라.

오랜 동안 장애인들은 “착하다”라는 제2의 고정관념 속에 지내왔다. 마음이 착하다는 것이 아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지 모르고, 본인이 아니다 싶은 것에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협상을 할 수 있어야 함에도 신체적 약자라는 특성상 그렇지 못하고 살아왔고,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착하다는 말로 별 노력 없이 자신의 의견대로 따라주는 장애인이 고마웠을 수 있다.

독립생활을 하기 전까지 층간소음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한 집수리 등을 두고 문제가 생겼을 때,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딱히 그 문제들에 대해 개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독립 이후에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고, 때로는 싫은 소리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들이 하루아침에 쉽게 익숙해지는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가 싶었고, 좀 지나치게 얘기했나 싶은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나의 의견도 받아들여지는 날이 반복되다 보면 “착한 장애인”이 아닌 진정한 이웃으로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수십 년 전부터 핵가족이라는 단어가 나오더니 언제부터인가 1인 가구라는 말이 낯설지 않고 고령화 사회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대로라면 어떤 가정에 장애인 자녀가 태어나도 부모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돌봐줄 가족이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제라도 장애인 자녀에게 “부모가 알아서 할게”가 아닌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오랜 시간에 걸쳐 배우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프로 스포츠에서 구단이 전략적으로 키우는 선수들을 2군에서 육성하여 적절한 시기가 되면 1군에 올려 경험을 쌓게 하며 성장통을 이겨낼 때까지 기회를 주며 “경기에서는 독해져라”라고 한다. 언젠가는 가족을 떠나야 하는 장애인에게 “착하게 살아라”를 강요하기에는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주어진 숙제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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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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