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5일과 16일에 ‘2022 오티즘 엑스포’가 열렸다. 국내 최대의 발달장애 행사에 걸맞게 발달장애 당사자와 가족, 유관기관 종사자, 발달장애에 관심이 많은 비장애인 등이 많이 참석하였다. 세바다도 체험 부스를 내고 단체 홍보에 나섰다. 세바다의 ‘오티즘 엑스포’ 팀은 자폐 진단자 세 분, 자폐와 유사한 특성을 가진 신경다양인인 필자로 구성된 팀이었다. 당사자 단체에 걸맞게 당사자들이 기획의 대부분에 참여했다.

나와 다른 팀원분은 체험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고, 한 팀원분은 단체를 홍보하고, 단체에 관심을 가진 방문객을 상대하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그 팀원분께서 응대하는 모습을 조금씩 지켜보면서 체험 부스를 살폈다.

열심히 체험을 진행하던 중, 단체 홍보를 맡은 그 팀원분께서 단체에 대해 잘못 설명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나는 깜짝 놀라서 달려갔다. 발언을 정정하고 설명을 다시 드렸다. 그런데 그 방문객은 나에게 “저는 당사자에게 설명 듣고 싶어요.”라는 말을 했다.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내가 그렇게 비당사자처럼 보였나?’

그 팀원분과 나는 확실히 다르게 생겼다. 그 팀원분은 말이 유창하지 못했고, 특이한 화법과 억양을 구사했다. 방문객 응대 경험이 적어 인사할 타이밍을 잘 잡지 못하기도 했다. 반면 나는 단체에 대한 설명을 능숙하게 했고, 인사도 밝게 했다. 체험부스에서 응대할 때에도 실수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그 팀원분은 너무나도 ‘당사자스러웠’고, 나는 ‘비당사자스러웠’다. 신경다양인 당사자성을 부정당한 것 같아 속상했지만 오해의 가능성을 인정해야 했다.

여성 자폐 및 신경다양인 당사자들은 ‘마스킹’이라는 것을 한다. 마스킹이란, 신경전형인(비장애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신경다양성 특성을 감추는 것이다. 자폐 여성인 케이트 케일(Kate Kahle)은 TED 강연에서 자폐인이 사람과 어울리고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기 위해 마스킹을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억지로 눈 맞추기, 상대방의 표현 따라하기, 잡담에 필요한 대사 외우기 등을 마스킹의 예시로 꼽는다. 그녀는 마스킹을 하면 자신을 사람들이 좋게 보지만, 그것은 자폐를 ‘없애지’ 못하며 진정한 모습을 억압할 뿐이라고 한다.

나도 마스킹이란 것을 한다. 일종의 ‘딥 러닝 학습법’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를 해야 한다’라는 것을 배우면 그것을 곧잘 따라한다. 그러나 이 지식은 다른 상황과 충돌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매번 90도로 인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니 목례 정도로만 한다’나,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인사할 필요는 없다’라든지, ‘직장 상사나 웃어른을 만나면 특히 인사를 열심히 해야 한다’ 등의 응용 지식을 학습한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이들 지식을 적절히 조합한다. 그러면 어색한 인사를 하는 신경다양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는 나만이 남는다.

마스킹을 잘하는 신경다양인들은 신경다양인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나머지, 자폐 진단이 늦어지거나 아예 진단을 받지 못해 자가진단으로 정체성을 삼는 경우가 생긴다. 비장애인 위주의 사회에 적응하고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익혔던 마스킹이, 자폐 및 신경다양인 당사자로서 인정받고 지원받는 것을 방해하는 아이러니가 일어난다. 신경다양성을 숨기면 장애등록을 하지 못하게 되고, 신경다양성을 숨기지 않으면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마스킹의 경우는 많은 사람이 혼동할 만큼 그럴듯하니 오해할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자폐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면 인정받을 수 있을까? 요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자폐 특성을 가진 여성 변호사가 대형 로펌에서 생존하는 모습을 그린 드라마이다. 그런데 자폐 여성 주인공에게 이상한 혐의가 씌워졌다.

발달장애인 부모 커뮤니티에 “누가 뭐래도 저는 우영우가 불편하다”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글쓴이가 “변호사가 가능한 자폐인은 더 이상 자폐인이라고 부르기 힘들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변호사는 즉흥적 판단과 빠른 이해가 필요하고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자폐인이 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변호사를 할 수 있다면 자폐인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나의 눈에는 우영우의 자폐 특성은 확실해보였다. ‘고래’에 크고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과, 사소한 날짜까지 기억하는 것이나, 어릴 적 도전행동을 벌인 것이나,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하는 ‘반향어’를 보이는 것이나, 감각이 민감하여 옷의 라벨을 모두 떼어서 입는 등 그녀의 행동은 자폐를 가리키고 있었다. 극 중에서 지나가는 비장애인들도 우영우를 발달장애인으로 여기고 대한다. 그런데 우영우가 자폐성 장애인이 아니라니?

과연 ‘자폐인’ ‘당사자’처럼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러한 판단이 주로 비당사자의 생각과 판단에서 이루어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과 판단이 자폐에 대한 오래된 스테레오타입(전형적인 모습), 즉 편견에 기초함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자폐는 오랫동안 남자아이들의 장애로 여겨져 왔다. 진단 비율도 남아가 여아보다 높으며, 대중에 드러나는 자폐인도 남성 당사자가 많다. 여성 당사자는 진단조차 쉽지 않았으며, 자신이 자폐인인지도 모른 채로 살아왔고, 또 지워졌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여성 자폐인과 신경다양인은 존재한다. 여성 자폐인도 최중증 장애인부터 마스킹에 능숙한 경증 당사자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남성 자폐인의 모습이 다채롭고 개성적이듯, 여성 자폐인 역시 그러하다.

이제야 여성 자폐인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말하기 시작하는 여성 당사자들을 ‘비당사자스럽다’라는 굴레로 다시 벽장 속에 가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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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회로가 비장애인과 다른 신경다양인들은 어떻게 살까? 불행히도 등록장애인은 '발달장애인' 딱지에 가려져서, 미등록장애인은 통계에 잡히지 않아서 비장애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신경다양인이 사는 신경다양한 세계를 더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당사자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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