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1호선 전철역에 있는 점자블록. ⓒ한지혜

필자는 장애인이기 전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상과의 소통이 필연적으로 더 절실하며, 그 여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로 소통하려 노력한다.

그중 아이들 출산 이후 가장 나에게 든든한 정보통은 온라인 커뮤니티, 일명 “맘카페”이다. 아무리 바쁘고 고단한 하루라도 늦은 시간 불특정 다수인 그들과의 소통을 잊지 않는다. 적어도 그 공간 안에서는 나는 무지 자유로운 사람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도 하루의 마무리 일환으로 맘카페를 접속했다. 그런데 한 게시물을 읽는 순간 내 마음은 불편한 심기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익명방에 공유된 스크랩 기사 내용은 다름 아닌 장애인 편의시설 내용이었다. 최근 일부 자치단체에서 미관상의 이유로 점자블록을 철거해 달라는 민원이 자주 올라오고 관할 시는 소리소문없이 이를 응하여 점자블록이 사라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순간 장애인 편의 증진을 위해 얼마나 많은 활동가들이 헌신하고 있는지, 관련 규정들을 법제화하고 적용하기 위해 땀 흘리고 있는 종사자들의 노고를 알기에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중도시각장애인 지인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비장애인일 때는 점자유도블럭이 구두 굽에 자꾸 걸려 성가신 물체라고 느껴 짜증을 냈었는데 장애인이 된 후 지금은 점자블럭이 갑자기 사라지면 독립보행 시 한 번도 용기 있게 못 딛겠다고....”

그렇다. 우리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재활의 첫걸음을 내딛을 때의 든든한 매니저이며 위기상황에서도 우리를 지켜줄 안전핀이다.

그렇게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약자의 편의까지 뺏어가며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을 보기 위해 혈안이 된 것일까?

일전에 칼럼에서 필자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의 고충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때 계단을 이용할 때 원근감이 없어 오르내릴 때 애로를 서술한 바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계단이 시작되고 끝나는 부분에 점자블록이 있어 이를 활용하여 조금이나 도움을 받고 있다. 더불어 낯선 환경에서 목적지를 찾아갈 때도 선명한 노란색 점자블록의 영향력은 우리 저시력인들에게도 전맹 시각장애인들 버금가는 가치를 지닌다.

다음날 출근길, 어제와 다름없이 제자리를 지켜주는 점자블록을 보는데 왜 필자의 마음은 서글프고 착잡한 심정이 드나 모르겠다.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점자블록이 누군가에게는 천덕꾸러기로 낙인되어 있다는 것이 그저 속상했다.

민원인들이 제기했다는 미관의 의미는 뭘까? 아마 그들은 신호등의 색깔이 한 번도 거슬린 적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필연적으로 본인의 안전을 지켜주는 공공설치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민원인들은 외형에 급급한 보여 지는 미를 논하기 전에 단편적이고 아집의 소용돌이에 갇혀있는 자신의 사고부터 정화해야 할 것이다. 조화로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모르는 그들이 미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얼마나 부끄럽게 하는지 각성해 보았으면 한다.

혹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장애인이 거의 방문할 가능성이 없는 외딴 공공 편의시설은 어쩌면 국고 낭비이자 불필요한 전시행정은 아니냐고 말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대변하고 싶다.

맞다. 외딴 어느 곳에서는 편의시설이 장애인이 한 번도 발을 딛지 않고 오랜 시간 경과 후 철거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편의시설의 가치는 훨씬 원대하고 위력적이다.

편의시설을 통한 직접적인 수혜자는 분명 장애인 당사자들이다. 하지만 비장애인들은 사실 점자블록, 경사로들을 매일 접하면서 더불어 공존해 가는 세상임을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받아드리는 수단이다. 즉 편의시설은 누군가에게 기능적 역할을 하기 전 장애인복지의 주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무언의 상징적 의미가 크다.

장애이해교육을 해 보면 이전과 다르게 편의시설 덕에 학생들은 훨씬 장애인을 가깝고 친근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 지역 구석구석의 편의시설들은 결국 소리 없이 우리의 갈망을 대변해 주고 있는 전령사로 우뚝 서 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맘카페에 댓글 의견들은 모두 우리 장애인들 입장에서 편의시설의 용도를 바라봐 주었고 집단이기주의에 급급한 민원인들의 행동과 주무 부처의 대처를 질타하였다. 아마 우리는 상처 입고 분노하면서도 함께 공감해주고 노력해주는 또 누군가들 덕분에 다시 치유 받고 힘을 내어 보는 것 같다.

얕은 사고 속에 단순 이익에 급급한 비상식적 민원을 제기하는 그들에게 소중한 우리의 삶이 흔들릴 수는 없다. 그리하여 내일 출근길은 더 당당하게 더 열정적으로 점자블록을 밟고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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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 칼럼니스트 집에서는 좌충우돌 쌍둥이들의 엄마! 직장에서는 소규모 사회복지시설의 책임자. 외부활동에서는 장애인인식개선 강사. 동네에서는 수다쟁이 언니. 이 모든 것과 함께하는 나의 장애. 장애인들은 슬프기만 해야 하나요? 우리를 바라만 봐도 안타까우신가요? 장애인의 삶을 쉽게 예단하지 마세요. 우여곡절 속에서도 위풍당당 긍정적 에너지를 품고 매일을 살아가는 모든 장애인동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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