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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태산이 높다하되’의 장애학적 해석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10-12 13:09:24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나니


우리는 학창시절 이 시를 배웠다. 청구영언, 가곡원류, 병와가곡집 등에 실려 있다. 산이 높아도 올라갈 수 있는 것을 노력하지도 않고 높은 산 탓만 한다는 내용으로 배웠다. 사람들의 게으름이나 우매함을 지적한 노래로 해석하도록 교과서는 세뇌 시켜 왔다.

태산을 중국 산둥성에 있는 높은 산으로 배웠다. 그런데 높이가 1532미터에 불과하다. 중국에는 훨씬 높은 산이 너무나 많다. 우리나라 한라산도 이보다 400미터나 더 높다. 가장 높은 산을 선택하지 않고 왜 태산을 선택했을까?

태산은 화북문화의 상징적 존재이며, 왕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 평지 위에 우뚝 솟은 특이한 모양이 사람들에게 높은 산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많은 문인들이 이 산을 동경하여 시상을 얻은 산이고, 많은 문화재가 있어 문화적 상징성이 높다. 많은 문학에서 태산을 관용구처럼 사용하니 시조 지은이 양사언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판에 박힌 지식으로 태산은 실존하는 중국의 산이라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로 큰 산으로 온유적 의미로 가르쳤어야 하지 않았을까? 정말 오르기 힘든 산을 의미하고 싶었다면 에베레스트산, 케이투, 로체산, 마칼루산, 초우산 등 수천 미터 높은 산이 중국에는 즐비하고, 한국의 백두산도 세계 100대 높은 산에는 끼지 못하니 그 보다 낮은 태산을 높은 산의 예로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처럼 그냥 높은 산이다. 남성들은 이 시조를 교재를 거절당한 여성을 계속 대시하라는 의미로도 사용하는 것 같다. 태산이 사람이면 괴롭힘이 된다.

이 시조는 문학성이 높아서 유명해진 것 같지는 않다. 매우 쉽고 교훈적이며 용기를 북돋운다는 점에서 교육적 가치가 있어서 유명해진 것 같다.

‘서리 녹아 내린 물 계곡으로 흘러가고 / 바람에 지는 나뭇잎 산으로 돌아가네 / 어느덧 세월 흘러 한 해가 저물어가니 / 벌레들도 모두 다 숨어 움츠리네.’

이 시의 글은 양사언의 것이나 작가는 아니라는 설도 있지만, 양사언은 서예가이자 문장가로 활동했으니 많은 시가 있었을 것인데, 이 시만 유명한 것은 백성들에게 정치적 통치수단으로 사용하기도 좋다는 가치 때문일 수도 있다.

양사언이 40년 공직 생활에서 전혀 부정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매관이 성행하던 때로서 청빈과 청렴은 매우 귀감이 된다. 자식에게 물려준 유산이 없었으니 청빈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역학에도 능하여 임진왜란을 예견했다고 하고, 금강산에 정자를 짓고 세상을 두루 유람하면서 풍유를 즐겼으며, 호를 봉래(금강산)이라 하였다. 금강산 만폭동 바위에 글을 새겼으니 한석봉과 동시대 인물로 해서와 초서의 명필로 유형한 것을 더하여 자신의 재주를 바위에 새긴 명예욕이나, 알뜰히 부를 축적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풍광을 즐기고 예술인으로서의 자부심은 매우 강했던 인물로 보인다. 세상과의 타협이나 적절히 즐기며 위로하고, 자신의 대단함을 널리 과시하여 한풀이를 한 것은 아닐까?

요즘 법으로 해석하면, 바위에 글을 새긴 것은 자연을 훼손한 일이다. 과거에 자신을 드러내고 흔적을 남기고자 명산의 바위에 글을 쓴 사람이 너무나 많다. 어느 정치가가 김포국제공항 앞에다가 ‘오 나의 조국’ 시비를 한글과 영문으로 새겨 자신을 드러내는 것처럼(이효상, 지금은 철거) 과시욕은 있었던 것이다. 명예와 부를 모두 가질 수는 없으니 양사언이 명예를 선택한 것 같다.

양사언은 서자로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었던 갓이다. 자신의 재주를 적극 알리고 예술인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생을 즐기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부정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맡은 지역의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였다고 칭송도 있으니 상당히 따뜻하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말년에 태조 조상의 묘에 불이 나 책임을 지고 물러나 귀양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망했다.

양사언의 어머니 안동 권씨는 양반 계층으로 첩으로 시집을 와서 본부인이 죽자, 자신이 첩이라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많은 지혜와 노력을 기울인다. 먼저 본부인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여 자신을 친어머니처럼 모시게 하였다. 그래야 자신의 자식들이 차별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남편이 죽자 서자인 양사언이 상복을 입을 수 없어 서지 티가 나는 것을 막고자 자결을 하여 어머니상으로 상복을 입게 하여 서자 티가 나지 않게 하였다.

양사언의 시조 ‘태산이’는 어머니 회갑을 축하하며 어머니 앞에서 부른 노래이다. 이 시가 먼저이고, 이때는 서자로 인하여 관직에 오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미 관직을 오른 후이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죽음과 이 시를 연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평소 어머니가 차별을 받지 않도록 노력한 것에 대한 감사의 시라고 보기보다 평소 어머니가 강조한 차별을 이겨내라는 교훈을 깊이 새기고 있음을 어머니에게 확인시켜 드린 시이다.

회갑에 지은 시라는 점에서는 어머니 은혜에 감사하는 의미가 되겠으나, 시조의 내용에서는 감사의 의미가 있지는 않다. 감사보다는 이렇게 마음가짐을 하고 있으니 걱정마세요란 의미가 맞다.

서자 중에서 스스로 노력하여 성공한 사람 중에는 허준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차별과 맞서 적극적 삶을 살기는 했지만, 차별적 제도를 제거한 것은 아니다. 비록 서자이기는 하지만 양반 자손이다. 서자는 과거를 보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서얼은 과거를 볼 수 없었는데, 서얼금고법이 만들어진 것은 경국대전이다. 서얼은 어머니가 노비인 경우를 말한다.

양반들의 부가 축적되면서 서얼의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그들의 신분상승 요구가 강해지자, 1550년 명종 때에 과거를 볼 수 있는 길이 일부 열렸고, 1777년 정조 때에 정유절목이 반포되면서 서자들을 중심으로 규장각에 모여 실학운동이 일어났고, 1894년 갑오개혁에 와서야 완전히 서자의 차별이 폐지되었지만, 편견은 아직도 존재한다. 인도의 신분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신분은 지금도 살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서얼금고법이 태종 때에 만들어지고, 성종 때에 경국대전에 기록된 것은 정도전의 조모가 노비 출신이라 그런 인물이 정계에 등용되지 못하도록 정적들이 못을 박은 정치적 보복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서자 차별이 철폐된 게기는 문정왕후 남동생 윤원형이 버린 서자 윤태원에게 살길을 만들어주기 위해 제도를 바꾸었다고 드라마 ‘옥중화’에 소개하고 있다. 당시 서얼들이 허통(진정서)를 왕에게 상소하는 일종의 차별철폐 운동이 있었다. 조선시대 연판장이 지금의 집회와 시위와 유사하다.

장애는 노력을 하면서 열렬히 살아야 하지만, 장애가 노력 부족의 탓은 아니다.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해소하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할 대책을 강구 해야만 한다. 태산이 높다하여 오르고 오르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태산을 오를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안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그 기술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편함을 누릴 것이다.

태산을 서자의 차별을 이겨내는 문제로 해석할 경우, 개인적 노력으로 참고 견디며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양사언 어머니의 자결 선택은 희생과 은폐이다. 사람들에게 티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태산을 사회적 장벽으로 해석한다면 넘어야 할 존재다. 하지만 편견과 차별로 해석한다면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된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에 대해 사람들은 예산을 탓하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거나 과도한 부담으로 시급성이 약하다는 등의 핑계를 댄다.

급하게 오르고 오를 문제가 아니라 천천히 손을 잡고 함께 넘어야 할 산이다. 양사언은 자신이 서자를 한탄하면서 방탕한 자포자기 생활을 청산하게 일깨워준 어머니에게 자신의 깨우침에 대한 감사로 노래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하여 타인에 대한 문제로 제기한다. 자신은 가르치는 입장이다.

태산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적 문제로 늘 산에 올라 풍류를 즐기며 평생을 보낸 양사언 입장에서는 자신이 안빈낙도의 합리화를 노래한 것일 수도 있다. 태산은 장애이고, 오르는 행위는 주체적 자립이며, 높다고 탓만 하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편견이다. 장애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회가 책임성을 다하도록 하는 것에 핑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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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서인환 (rtech@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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