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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노천카페에서 생생하게 경험한 사회통합

나의 무의식적 고정관념, 편협한 판단 ‘부끄러웠던’ 날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7-15 10:49:04
유럽의 전형적인 노천카페 모습. ⓒpixabay.com 에이블포토로 보기 유럽의 전형적인 노천카페 모습. ⓒpixabay.com
7월은 독일의 대표적인 휴가철이다. 1~2주 휴가를 보내는 것은 기본이고, 한 달 내내 여행을 다니는 직장인이나 가족들도 많다. 나의 담당 내과의사는 7월 내내 쉰다고 한다. 휴가철에는 문 닫는 병원이 많아 웬만하면 안 다치고 안 아프려고 최대한 노력하게 된다.

휴가철이 되면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다. 2년 전,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기 전 우리 가족은 어느 조용한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런데 40도를 육박하는 날씨는 물놀이를 하기에도 산책을 하기에도 너무 뜨거웠다. 이런 날은 시원한 그늘에서 차가운 음료수 한 잔을 마시는 게 상책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한적한 노천카페를 찾았다. 커다란 파라솔이 펼쳐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땀을 식히며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사이,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아이 두 명을 동반한 젊은 부부 1쌍. 노인 부부 2쌍과 반려견 2마리. 온몸에 명품을 걸친 채로 최고급 스포츠카에서 내린 중년여성 2명. 수수한 옷차림의 외국인 대학생 3명. 그리고 나 같은 동양인을 포함한 우리 가족도 함께하고 있으니, 이 작은 공간에 모인 사람들의 외모, 국적, 연령 등이 참으로 다채롭다.

이때 한 무리의 사람이 카페를 향해 걸어온다. 지체장애와 발달장애가 있는 청년 6명과 보조인 2명이다.

순간 나는 약간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내 아이를 비롯한 카페 손님들이 장애인에게 어떻게 반응할지 불확실했다. 아니, 불안했다.

혹시나, 상당히 까다롭게 생긴 '샤넬 여성'은 종원업을 불러다가 장애인들이 합석하는 것을 거부하진 않을까?

혹시나, 엄한 인상의 젊은 엄마는 아이들에게 장애인을 너무 빤히 쳐다보지 말라고 다그치며 얼른 자리를 뜨는 건 아닐까?

혹시나, 종업원은 부드러운 말투로 장애인 그룹에게 말을 걸며 이들을 자연스럽게 어두운 카페 내부로 인도하진 않을까? 이들이 눈에 띄지 않는 어두침침한 카페 내부로? 참고로 유럽사람들은 날씨가 좋을수록, 햇살이 강할수록 오히려 카페 밖에 앉기를 선호한다.

마치 천둥 번개를 동반한 먹구름이 몰려오듯, 이러한 장면들이 나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적어도 이 세 사람 중 한 명은 장애인을 향한 반감을 뚜렷하게 드러낼 것 같아 웬지 불길하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눈 앞에 펼쳐진다.

손님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장애인 그룹을 향한다. 보조인들은 휠체어를 세워 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러자 뜨거운 햇살로 다들 지쳐 있던 카페 분위기가 갑자기 생동감 있게 변한다.

빈 테이블 바로 옆에 앉은 젊은 부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보조인들이 무거운 테이블 두 개를 붙이는 데 적극 동참한다. 휠체어가 충분히 드나들 정도로 넓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우리 가족을 포함한 모든 손님들이 자신의 의자와 테이블을 옆으로 조금씩 옮긴다. 인상을 찌푸린다든가 불평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아이들은 오히려 신이 나서 함께 거든다.

장애인 그룹이 모두 착석하자 종업원이 다가와 주문을 받는다. 비장애인 손님들을 대할 때와 똑같이 친절하고 진정성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장애인 그룹이 뜨거운 햇살에 그대로 노출된 모습이 눈에 띈다. 하필이면 나무그늘도 파라솔도 없는 자리에 앉은 것이다.

이때 대학생 한 명이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의 테이블에 꽂힌 베이지색 파라솔을 장애인 그룹 테이블로 옮겨준다. 그리고 '샤넬 여성'도 파라솔을 하나 넘겨준다.

이 모든 일은 어떠한 과장된 노력 없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배려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지극히 자연스레 이루어진 행위였다. 사회통합이니 어쩌고저쩌고 하는 거창하고 시끄러운 캠페인 없이도, 모두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나는 이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면서도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 사람은 까다롭게 생긴 걸로 보아 장애인에게 차가울 것 같고, 저 사람은 겉으론 미소 짓고 있지만 속으론 장애인을 멸시할 거라고 여긴 나의 무의식적인 고정관념과 편협한 판단이 부끄러웠다.

또한 내가 타인을 무의식적으로 평가하며 나의 그늘을 고수하고 있을 때, 선뜻 자신의 그늘을 포기하고 장애인 그룹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사한 손님들을 보고 나니, 마치 내 머리 위로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듯 저절로 고개가 떨궈졌다.

이날 나는 독일의 어느 노천카페에서 내 자신에게 '부끄러운' 사회통합을 경험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모두가 하나가 된 이날의 경험이 그립다. 현재 코로나 시대에는 거의 불가능한 이날의 경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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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민세리 (nankleopatr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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