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부모가 되는 권리는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이다. ⓒunsplash

가정의 달, 5월이다. 독일은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어머니날(Muttertag)이고, 부활절로부터 40일 후인 예수 승천일이 아버지날(Vatertag)이다. 올해의 경우 어머니날은 5월 8일, 아버지날은 5월 13일이었다. 가정의 의미를 한 번 더 성찰하게 되는 5월이다.

누군가의 엄마 또는 아빠가 되는 것은 분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간혹 세상의 무지와 편견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예비)부모가 장애가 있을 때 세상의 편견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장애인은 '잘 키우지도 못할 거면서 아이를 왜 낳으려고 하지?'식의 싸늘한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의 임신과 출산을 바라보는 이러한 차별적 시각은 독일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장애인이 임신을 했을 때 주위에서 축하보다는 걱정을 먼저 하고, 병원에서 출산보다는 임신중절을 먼저 권유하는 등의 현상은 소위 복지선진국인 독일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체장애가 있는 안드레아가 태아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자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의사는 그녀를 위해 '당연히' 임신중절수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의사의 행동은 오히려 안드레아의 결심을 더 확고하게 만들었고, 이후 그녀는 아이를 출산하여 현재 자랑스러운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23조는, 장애인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부분에 차별을 받지 않도록 당사국이 적합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굳이 장애인권리협약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장애인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권리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독일 역시 다양한 상담지원기구 및 부모보조서비스 등을 통해 장애인의 임신·출산·육아를 지원하는 제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도 장애인이 직접 육아를 책임지는 사례가 많지 않아(실제로 장애부모의 자녀가 위탁가정으로 보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상당수의 장애인은 임신과 출산 전 숱한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현명하게 두려움을 극복한 사례도 많다. 예를 들어 중도시각장애가 있는 독일 부부는 출산 전 고민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혹시나 우리가 기어다니는 아이를 실수로 밟는다면?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집에서 장애인 보조견도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으니까! 혹시나 집에서 아이를 찾을 수 없다면? 그 또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집 열쇠나 지팡이와는 다르게 아이는 울지 않는가!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우리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수천가지 남아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만약 우리 아이 역시 시각장애가 있다면?

그럼 아이를 포기해야 할까? 상상조차 힘들다! 초음파를 통해 힘차게 울리는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자니, 부모의 유전적 결함을 자식에게 대물림해도 되는지 아닌지에 대한 윤리적 고민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장애를 갖길 원한단 말인가?

이러한 불확신 속에서 우리 부부는 앞으로 닥칠 '불행'을 한번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마지막 질문에 봉착했다. '과연 우리 아이는 어둠 속에 갇혀 그저 답답하고 우울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사회의 가장자리를 맴돌며, 끊임없이 장애와 싸우면서 그렇게 힘겹게 살아갈 것인가?'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해 우리 부부는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각장애를 갖고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부부가 아니면 그 누가 아이에게 몸소 보여주며 가르쳐줄 수 있단 말인가?

건강하게 태어난 우리 딸은 지난 7년간 세상의 편견과 의심을 이겨내고 밝고 씩씩하게 성장하고 있다. 우리 가족의 일상은 비장애가족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특별한 도전으로 가득한, 그러나 충분히 극복 가능한 모험임만은 틀림없다."

중도청각장애가 있는 독일 부부가 한 말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임신을 고민하는 장애인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인터뷰 질문에 이들 부부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여러분들, 아이 많이 낳으세요, 장애가정이 세상에서 평범해질 때까지 말이죠. 부모가 되는 것은 너무나도 멋진 일이예요."

물론 장애인이 아이를 낳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데 있어 사회시스템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가이다.

참고로 독일에는 출산예정일 6주전부터 출산예정일 8주후까지, 총 14주간의 출산휴가(Mutterschutz)와 출산휴가 이후에는 최대 3년의 육아휴직(Elternzeit)제도가 있다. 출산휴가 동안 부모는 기존 급여를 전액 지급받고, 육아휴직의 경우 부모는 자녀 생후 12개월까지 기존 급여의 65퍼센트에서 100퍼센트에 해당하는 부모수당을 지급받는다. 이러한 사회적 장치가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하는 (비)장애인이 출산과 육아에 있어 큰 혜택을 받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외에도 앞선 칼럼에서 언급한 장기적인 부모보조서비스, 가족의 지원(예를 들어 조부모의 양육지원), 전문상담기구 등이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조화롭게 작동해야만 장애인은 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 주체적이고 자기 결정적인 부모 역할을 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 크리스티안은 아빠로서의 자신의 강점으로, 아이들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 늘 옆에 있어주고, 아이들의 말과 고민을 적극 경청하는 능력을 꼽는다. 장애부모의 삶은 어쩌면, 비장애부모가 쉽게 놓치고 있는 부모의 가치를 적극 실현하는 삶이 아닐까.

장애인이 부모가 되는 일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 장애부모의 삶은 어쩌면, 조금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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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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