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서 부모님께 차라리 죽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내 상태면 언제든 요양병원으로 가서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차마 그러지 못하셨다.

난 그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원망에 반응하듯 병은 더욱 깊어지기만 하였다. 뭔가 이 억울함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에 반응한 것은 오히려 병증이었다.

병증이 심해져 결국 다시 류마티스로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가게 되었다. 응급실 자리도 없는 병원에서 병실을 예약하고 기다리던 사이 호흡 곤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숨을 쉬어도 속이 답답했다. 일명 과호흡증이라는 상태였다.

과호흡이란 말 그대로 과도하게 호흡을 해서 몸이 마비되거나 경직되는 증상을 말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호흡기도 근육이다보니 그 근육양이 줄면서 호흡의 절대량이 적어졌고 적어진 절대량을 내 몸이 적응하지 못하니까, 호흡이 부족한 것으로 인식되어 호흡이 빨라지면서 과호흡으로 발전된 경우였다.

결국 호흡 곤란 증상으로 급하게 응급실 자리를 차지하였다. 안정제를 맞고도 여전히 잠들지 못하는 가운데 저녁이 되어 병실에 올라갈 수 있었다. 병원 17층 류마티스 병동 집중 치료 병실이라는 곳이었다. 의사들의 심각한 표정에서 점점 더 좌절하였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지경이 되었고 어느덧 나는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몸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저녁이 되어 목이 너무 말랐다. 물을 먹고 싶었기에 물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벌써 입으로 섭취하는 모든 것은 막아 놓은 상태였다. 억지를 써서 물 한잔을 얻었다. 욕이 나왔다. 내가 왜 이지경이 되었는지, 왜 나인지,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분한 마음에 욕설을 내뱉었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옆에 있던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그 때 병실 입구 주변에서 그 모습을 보던 담당 인턴의 얼굴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나에게 생긴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점점 더 심한 장애 상태로 들어가기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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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섭 칼럼니스트 2010년 희귀난치성 질환 류마티스성 피부근염에 걸려 후천적 장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을 오직 장애를 극복하겠다는 일념으로 살다. 2020년 삶의 귀인을 만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로써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로써, 근육병 환자로써 세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바를 전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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