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그 전염병이 지니고 있는 파급력 이상으로 전 국민을 흩어지게도 하고 뭉치게도 하면서 다양한 이슈를 만들어 낸다. 지난해 제일 대표적인 마스크 대란이 그러했고 지금은 순차적으로 접종 중인 백신이 우리 일상에 큰 화두가 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복지시설도 장애인 주간보호 군에 해당되어 이용인과 종사자가 함께 백신 접종에 나섰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혼잡을 줄이기 위해 우리는 4개조로 나누어 이동했고 보건소에서 지체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예진표도 사전에 받아 작성을 마무리 했다.

이용인 중에서는 맞기 직전까지 마음을 못 놓으시고 여전히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망설여진다는 분부터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며 들뜬 표정을 지우지 못하시는 분까지 다양했다. 문진과 간단한 주의사항을 의료진들로부터 들은 후 우리 시각장애인 이용인들은 한 분씩 백신 접종에 들어갔고 접종 후 20분 정도의 경과관찰 시간을 가친 후 귀가지도를 받았다.

다행히 우리 입소인들은 개별적으로 낯선 곳에 혼자 가지도 않아도 되고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대필, 보행안내, 송영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입소자가 아닌 많은 장애인들은 모든 것이 오롯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니 편의 미제공과 이동 불편이 눈에 그려져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필자는 접종 당일 한 분 한 분 맞고 나오시는 클라이언트들을 보면서 진정으로 다시 그분들의 삶에 일상이 찾아와 주기를 간절히 소망해 보았다. 더불어 이용인들 배웅을 끝내고 접종하는 우리 종사자들에게도 평범했던 일상이 다시 선물처럼 다가오기를 말이다.

이전에 아는 지인이 말했다.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다, 전쟁의 반대말은 평범한 일상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 그리워 혹독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코로나 이후 장애인들의 삶도 너무나 많이 메마르고 또 다른 불편들로 표류 중이다.

모든 서비스와 외부 활동들이 축소되다 보니 어떤 클라이언트는 가장 멀리 나가는 곳이 담배 피우러 나가는 앞 베란다라고도 하시고 또 어떤 이는 외출 활동이 없다 보니 집 현관 비밀번호도 선뜻 기억나지 않는다고도 하셨다. 칩거가 길어지니 정신적 우울감과 공황장애가 다시 재발하셨다는 하소연도 허다하고 방역수칙에 근거하여 축소 운영 또는 휴관하는 우리에게 괜한 원망 섞인 말씀도 하시기도 한다.

사회활동이 왕성한 젊은 시각장애인이라고 하여 이 소용돌이를 피해갈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비대면 또는 무인 서비스로 대치되다 보니 방문 접수를 위한 QR인증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또한 최근 리뉴얼 되는 매장들은 키오스크가 설치된 곳이 많아 이제 메뉴를 직접 점원이 접수하지 않으니 우리의 선택권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학업을 연마함에 있어서도 실시간 화상회의시스템을 능숙하게 다루어야 하는데 웹접근성의 한계로 매 수업 시수마다 장벽과 난관들로 씨름하고 있다.

보행을 할 때도 혹여나 부딪힘이 있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들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예민해져서 짜증부터 내는 경우도 허다하고 친절히 시각장애인들을 잡고 안내해 주던 행인들도 밀접접촉을 꺼려 이 또한 조심스러워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든 나날들이지만 우리 장애인 역시 더욱 사회참여가 힘겨워지고 외로워지고 있다.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이는 코로나19가 만든 씁쓸한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다만 두려운 것은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사람이 사람을 섬기는 세상이 어색해지고 따뜻한 감성들이 무뎌지며 편의를 가장한 삭막함과 치열함만 본래의 일상인 듯 남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정말 팬데믹이 장기화되었을 때는 이러한 우려가 고착화될 수도 있기 때문에 코로나 종식을 위해서 개인적으로도 신속히 백신 접종에 협조하고 싶었다.

아직 2차 접종이 남아 있지만 15일이 지나면 면역도 형성되고 접종한 우리는 든든한 갑옷을 입게 된다. 코로나 종식을 위해 집단면역에 일조한 우리들이 괜히 뿌듯하다.

백신으로 몸에 갑옷을 입혀보니 문뜩 이제 필자의 마음에도 갑옷을 입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코로나 때문에 안 되는 것 못하는 것에 대해서만 원망하거나 하소연한 적이 많은 것 같다. 급변하는 시대에 배제되고 소외되고 상처받는 상황에서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갑옷은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시대에 단단한 마음 근육을 만들어 변화에도 동요되지 않고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나만의 백신 제조를 스스로에게 부탁해보려 한다.

특수하기보다는 특별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스스로가 어루만져주고 다독거리며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고단함을 뒤로하고 사랑받아야 마땅한 우리 자신을 돌보기 위해 자가 백신을 투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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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 칼럼니스트 집에서는 좌충우돌 쌍둥이들의 엄마! 직장에서는 소규모 사회복지시설의 책임자. 외부활동에서는 장애인인식개선 강사. 동네에서는 수다쟁이 언니. 이 모든 것과 함께하는 나의 장애. 장애인들은 슬프기만 해야 하나요? 우리를 바라만 봐도 안타까우신가요? 장애인의 삶을 쉽게 예단하지 마세요. 우여곡절 속에서도 위풍당당 긍정적 에너지를 품고 매일을 살아가는 모든 장애인동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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