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특유의 노란색 저상버스(전기버스). ⓒwww.bmu.de

벤츠, BMW, 폭스바겐, 아우디, 오펠, 포르쉐… 독일은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를 보유한 나라다. 자동차의 나라답게 이 모든 자동차를 평소에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벤츠의 경우 소형차부터 대형 화물차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차량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독일 생활 초반에, 심지어 쓰레기차와 청소차도 벤츠라는 사실에 내가 감탄하자 독일 친구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럼 쓰레기차를 벤츠가 만들지, 누가 만들어?“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독일 최대 자동차 기업이 쓰레기차 즈음이야 생산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게 아닌가.

독일은 명실상부 자동차의 나라 답게, 장애인이 이용하거나 직접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의 범위가 매우 넓고 그 혜택 또한 크다.

이번 연재 칼럼에서는 독일의 배리어프리 저상버스와 장애인 맞춤형 승용차를 다루어 보겠다. 먼저 배리어프리 저상버스다.

독일은 승객운송법(Personenbeförderungsgesetz) 개정을 통해 대중교통수단의 배리어프리 실현에 일찌감치 속도를 냈다.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는 이미 2009년부터 모든 대중버스(시내버스)가 저상버스이다. 독일은 2022년 1월 1일까지 전국의 모든 대중교통수단(버스, 지하철, 전철)이 100퍼센트 배리어프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2016년에 착수한 ‘시외버스 및 고속버스의 배리어프리 사업‘을 통해 2020년 1월 1일부터는 독일 전역 모든 시외버스 및 고속버스가 배리어프리가 되었다. 이들 버스에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좌석이 최소 2개 이상 배치되어 있다.

휠체어 이용자는 저상버스의 경우 수동식 발판을 통해, 2층 버스의 경우 자동 리프트를 통해 승하차할 수 있다. 이로써 갈수록 많은 장애인이 독일 전역에 걸쳐 보다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독일 저상버스와 한국 저상버스를 비교하면 사실 기술이나 디자인면에서 큰 차이는 없는 듯하다. 하지만 발판 작동 방식은 다르다. 독일 저상버스에는 버스 가운데 문에 수동식 발판이 설치되어 있어 고리를 잡고 그냥 인도 바닥에 내려 놓기만 하면 된다.

독일 저상버스의 수동식 발판. ⓒ www.behindert-barrierefrei.de

수동식 발판은 고장이 나지 않고, 비교적 신속하게 펼치고 접을 수 있으며, 운전사 뿐만 아니라 일반 승객도 손쉽게 조작할 수 있다. 실제로 운전사가 일반 승객들에게 발판을 펴고 접어 주도록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독일에서는 대중버스 이용시, 승객이 버스 앞문으로 승차하면서 이미 구입한 티켓을 운전사에게 보여주거나 운전사에게 직접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그런데 휠체어 이용자가 버스에 승차하려는 경우, 운전사는 우선 앞문을 잠근 채 가운데 문만 개방하여 수동식 발판을 펼쳐 휠체어 이용자의 탑승을 돕는다. 이후 운전사는 운전대로 돌아와 앞문을 개방하여 기타 승객의 탑승을 허용한다. 즉, 휠체어 이용자가 가장 먼저 승차하는 것이다.

이때 발판 조작 과정이 수동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경우에 따라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도 하는데, 아무리 복잡한 출퇴근 시간대라고 하더라도 휠체어 이용자의 승하차에 대해 불평하는 승객을 적어도 나는 지난 13년간 본 적이 없다. 정말 시간이 급한 승객은 불평 한 마디 없이 하차하여 바로 뒤에 오는 버스로 바꿔 타거나, 다음 정류장까지 뛰어 가는 경우는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이때 휠체어 이용자나 활동보조사가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미안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으로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인 이동권을 행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당당함이 참 보기 좋다.

독일의 저상버스는 승하차시 차체가 인도 쪽으로 몇 센치 정도 기울기 때문에, 롤레이터(보행보조기)나 유모차를 끄는 사람은 별도의 발판 없이도 승하차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정류장 인도가 저상버스에 맞추어 낮게 건설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장애인 뿐만 아니라 고령자, 영유아 동반자, 어린이, 임산부 등이 어려움 없이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물론 독일이라고 해서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다. 간혹 버스운전사 중 어쩌면 피로누적과 운행 시간 압박 등의 이유로 수동식 발판을 펼치고 접는 데 표정이 썩 좋지 않은 사람도 있긴 하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저상버스가 도입되지 않은 구간 및 지역도 여전히 남아 있으므로, 독일 전역 저상버스 보급률 100퍼센트가 실현되는 내년까지는 일부 휠체어 이용자들이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독일에서는 버스정류장의 인도 턱을 더 낮추어 휠체어 이용자가 발판 없이도, 타인의 도움 없이도 버스에 승하차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이 하나 더 있다. 독일에서는 버스정류장에 휠체어를 타고 가만히 있어도, 심지어 버스 탈 의도 없이 홀로 정류장 벤치에 앉아 있어도 버스는 잠시 정차한다. 그러니 운전사에게 승차 의향을 뚜렷하게 밝힐 수 없는 교통약자라도 버스를 눈 앞에서 놓치는 일이 없다.

자동차의 나라 독일의 저상버스는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다. 이곳의 저상버스는 말 그대로 ‘대중버스’이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이용할 수 있는 버스인 것이다. 누구든 마음 편하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권리, 보편적 이동권이 실현되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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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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