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용준 화백(1961년생)은 척수장애인으로 붓을 잡을 수 없어 손목에 붓을 묶어 어깨의 힘으로 몸을 움직이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연간 그리는 작품 수가 몇 일에 한 편을 그릴 정도로 다작을 한다.

그림을 그리는 데에 힘이 들기도 하고, 어떤 그림을 그릴지 구상하기에도 많은 시간이 들어 갈 것인데, 끊임없이 작품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에너지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의 고갈되지 않는 소재와 식지 않는 작품에 대한 열정은 실로 놀랍다.

그는 올림픽이 막 끝난 1988년 11월 결혼을 했다. 당시 안양에서 헬스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스포츠라는 에너지와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신혼의 꿈과 달콤함으로 그는 행복에 젖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그가 결혼 후 8개월째에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척수장애인이 되었다. 전신마비라는 진단은 그를 절망의 터널로 데려갈 수도 있었다. 재활훈련을 병원에서 받고 있었지만 미래는 막막했고, 몸의 마비는 생각의 마취상태로 쇼크상태에 멎어 있었다.

그런데 탁용준 화백처럼 다이빙을 하다가 척수장애인이 되어 구필화가로 활동을 하고 있던 고 김기철 구필화가가 같은 병실에 입원해 와서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림을 그리면 행복하다는 말을 듣고 그도 어린 시절 그림을 좋아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당시 동료상담이란 말은 없었지만, 비형식적 동료상담을 한 셈이 된 그는 가슴에 한줄기 빛이 비추어짐을 느꼈다. 그 후 긴 시간 동안 미술수업과 습작 활동을 통하여 각종 미술대전에 수상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로 인해 탁용준 화백은 2015년 국민추천 대통령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어떤 사보나 잡지 표지, 판화액자, 머그컵 그림, 신문이나 전시회 초대전 등에서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 화가가 누구인지 몰랐다가 나중에 이 그림이 탁용준 화백의 작품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는 어린이병원 아이들에게 위로와 꿈, 용기를 주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실의에 빠진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와 대화를 해 보면, 항상 넉넉함과 사랑이 넘쳐남을 알 수 있다.

수건에 물이 흥건하면 조금만 짜내도 물이 흘러내릴 것이고, 물기가 별로 없다면 힘들여 짜내야 물이 묻어날 것이다. 그의 말투와 표정은 항상 흥건한 행복을 품은 수건이기에 그림을 그림에도 샘처럼 작품을 억지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과정이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작가 자신은 나는 산통이 없이 그림을 낳는 줄 아느냐고 억울해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작품을 다산하고 쉽게 그린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르지 않는 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르지 않는 이유는 동심과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추억, 그리고 희망이며, 이러한 샘물을 전도사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나누어주어 목마르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다. 샘에 고인 물이 퍼올려져서 사람들의 목을 적시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고인 물이 될 수 있기에 탁용준 화백은 자신이 받은 빛이 온 세상으로 계속 나아가도록 하고자 한다. 그림을 그려서 행복한 개인적 만족에 안주하지 않고, 그림을 통하여 위로가 필요하고 사랑을 전하면 용기와 희망이 될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팬데믹으로 우울하고 맥빠진 사람들, 그리고 거리두기로 인하여 격리가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고자 그는 가상현실 전문가인 한양대 김태식 교수의 도움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모아 가상 갤러리에 3D 전시장을 열었다.

사랑을 하려면 마음으로 하면 되고, 무엇인가를 주어 행복하게 해 주려면 가진 것 중에서 주면 된다. 이것은 너무나 쉬운 일인데, 사람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주어야 하고, 기발한 무엇인가를 구상해야 작품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통하는 것이니 그는 가상현실을 통한 전시를 통하여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다는 발견을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탁용준은 새들이 먹이를 걱정하지 않듯이 이렇게 자연스럽기에 그는 무한한 샘이 되어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탁용준 화백 VR 갤러리”(www.galleryvair.com/3Dexhibition/takart/)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 전시장은 화살표를 통하여 전진이 가능하고, 360도 회전도 가능하며, 그림을 확대할 수도 있고, 한 그림만 선택하여 감상할 수도 있다. 마치 내비게이션이나 지도앱에서 거리뷰를 통해 현장을 보는 기분이 드는데, VR 기기를 이용하면 더욱 현장감이 난다.

전시장의 그림들은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어머니의 아기 사랑, 남녀간의 사랑, 주님의 사랑, 그 사랑을 받았던 추억들을 형상화한 것들이다. 그리고 위로라는 꽃말을 가진 양귀비, 풍년이 든 들판을 바라보기, 새해 아침 마을을 배경으로 희망을 바라보는 그림, 아이들의 자유로움, 어머니의 아기에 대한 애정과 포용, 어린시절 뛰어놀던 즐거운 추억 등이 그의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들은 세 가지 형태를 갖고 있다. 판화적 요소 또는 만화적 요소로 단순화된 선에 채색된 그림은 그림의 수준을 분석해 보고자 감상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 그 추억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출입구를 보고 건물의 내부를 감상할 수 없듯이 이 그림들은 추억의 안내자(매개체) 역할을 하는 그림들이다.

다음으로는 몽한적 그림이다. 어두운 원색 바탕에 신의 존재나, 아이들의 자유로움, 그리고 자신의 어린시절의 모습들이 밝은 빛을 받으며 나타나는 몽한적 그림들은 꿈을 꾸게 한다. 이러한 기법은 몽롱한 꿈속에서 밝은 빛처럼 느끼도록 명암을 통하여 포인트를 주어 선명한 여운을 간직하게 한다. 혹자들은 장애로 인한 한계적 제한들을 완전 극복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억압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이는 작품이 아닌 작가론적 접근으로 너무 작가의 장애를 의식한 해석이다.

또 한 가지 기법은 레고 블럭을 만들어 아이들과 합동작업을 통하여 완성할 수 있는 그림을 염두에 둔 것처럼 스킬자수적 선을 살린 기법이다. 이는 작가가 아이들에게 항상 위로가 되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게 드러나 있기도 하고, 실제로 레고 블록을 아이들과 만드는 싶어하는 작가의 꿈을 기법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설계나 거창한 것이 꿈이 아니라 도란도란 정을 나누고 아름다운 작은 이야기와 추억들을 이야기하는 그의 그림 속에 풍덩 빠져 자신이 잊고 있는 추억들을 기억해 내고 다시 곱씹음으로써 인간가치와 존재감, 행복, 자유를 통하여 잊고 있던 사랑을 재발견하고 위로를 받기를 바란다.

탁용준 화백이 장애를 입었을 당시 임신 4개월째인 아들을 생각하며 용기를 내야 한다는 위기감과 사명감은 있었으나, 현실성과 방안이 없었던 그가 그림을 통하여 그가 가진 추억과 정신적 사랑들을 나눠줄 무한한 재산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듯이 이 가상현실 갤러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재발견하기를 바란다.

포스트 코로나 19의 가장 확실한 백신은 행복과 사랑 바이러스가 아닌가 한다. 사랑은 이미 우리 인간들이 갖고 있는 면역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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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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