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알고 지내온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었다. 아이도 아직 어린 데다가 평소 전혀 그런 낌새가 없었던 터라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혼을 원한 쪽은 부인이고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소식을 듣고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남편이 불쑥 이런 말을 한다.

"참, 착한 사람이었는데 어찌 그리 변했을까?"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고 사는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타인을 힘들게 하거나 상처를 주면 그 사람은 무조건 나쁜 사람일까? 물론 고의적 계획적으로 타인의 심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나쁜 사람이 맞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일상에서 경험하는 섭섭함이나 속상함은 아무리 상대를 나쁘게 보려해도 그런 것들이 고의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결국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상대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알지 못함에서 기인한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받고 상대는 자신은 그런 의도가 아니였는데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고 또 섭섭해하거나 기분 상해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특정 말이나 행동이 발단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원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함이 이유일 때가 많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오해라고 말한다. 오해는 풀게 되면 그 관계는 다시 회복되거나 더 좋아지기도 한다.

그런데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오해는 풀기가 힘들다. 장애인의 입장을 경험하지 못한 비장애인들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공감하기가 힘든 것 같다. 그렇게 풀리지 않은 오해는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되고 그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장애인들은 상처받고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행동을 하는 비장애인을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실명 전 20대 초반 한창 멋을 부리고 다닐 때 필자는 지하철 역사를 걸을 때면 항상 투덜거렸다. 역사 여기저기 깔려있는 점자블록 때문에 걷는 게 불편했고 내 뾰족구두가 망가지는 게 속상했기 때문이다. 점자블록 때문에 투덜거리는 필자 옆에 시각장애인이 있었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

점자블록이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위한 거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역사 곳곳에 설치되어야 하는 이유는 시각장애를 갖고 직접 체득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사람을 굳이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 짓는다면 그 당시의 필자는 나쁜 사람인 셈이다.

상대가 어떤 입장인지,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대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우리는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을까?? 배려의 시작은 상대에 대해 알려는 마음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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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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