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틴슨 비치(Stinson Beach) 전경. ⓒcntraveler.com

오늘은 5박 6일 일정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실질적인 마지막 날이다. 내일 밤 비행기로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대장정(12시간 반 비행)이 내게 남겨져 있다.

올 때는 낯선 곳을 여행한다는 설레임이 장거리 비행을 견딜 수 있는 동력이 조금이라도 되지만 나의 오랜 경험상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의 장거리 비행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사실 여행은 갔다 온지 2년이 넘었는데 장거리 비행 이야기를 하다 보니 멀쩡한 엉덩이가 아파오는 느낌이 날 정도이다.

내일이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니 오늘 여정이 이번 미국 서부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스틴슨 비치(Stinson Beach)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정말 수많이 비치들이 있다. 이 중에서 내가 스틴슨 비치를 선택한 이유는 물론 현지에 살고 있는 지인이 가이드 해준 것이지만, 전동 휠체어를 타고 모래사장을 누빌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단단한 모래사장. ⓒ안성빈

국내 외 유명한 비치들을 다녀 보았지만 휠체어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물론 요즘 해변에는 휠체어가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도록 데크를 깔아 놓은 곳이 많다. 그런데 그런 곳은 바닷물까지 가까이 갈 수 없다. 또한 데크로 깔아 놓은 길 외에는 전혀 휠체어가 다닐 수 없다.

스틴슨 비치는 이런 데크를 깔아 놓아 휠체어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비치가 아니다. 거기는 아무런 데크가 없다. 아,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쪽에는 경사로 데크가 있긴 하다. 그럼 스틴슨 비치는 어떻게 생겼길래 전동 휠체어가 자유롭게 해변을 거닐 수 있다는 것인가?

정답은, 해변 모래가 밀도가 있어서 전동 휠체어 바퀴가 모래에 빠지지 않는다. 마치 부드러운 흙길을 다니는 것처럼 아주 편하게 해변을 다닐 수 있다. 백사장의 길이가 대충 보았을 때 4km는 되어 보였다. 거의 모든 구간이 딱딱한 모래로 되어있어 바퀴가 전혀 빠지지 않고 파도가 치는 바닷물까지 휠체어로 접근할 수 있다.

바닷물까지 휠체어로 접근 가능. ⓒ안성빈

내가 이렇게 전동 휠체어를 타게 된지도 22년이 되었는데 휠체어를 탄 채 모래사장을 누비며 바닷물까지 다가간 것이 그날이 처음이었다.

늘 해변 위의 데크에서만 먼발치에서 넘실거리는 파도를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지 이렇게 바닷물을 내 휠체어 바퀴에 적시며 비치를 누벼본 적이 없었다. 아마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많은 휠체어 장애인 분들도 저랑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때가 2018년 2월 초였기 때문에 겨울이라서 해변에 놀러 온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청춘의 뜨거움은 만국 공통인 것 같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녀학생들 5명 정도가 물에 들어가기에는 추운 날씨인데도 물어 뛰어들며 물장구를 치고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캘리포니아지만 겨울이라 20도가 조금 넘는 기온이었는데 무척 추웠을 것 같다.

백사장에 남긴 자국. ⓒ안성빈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서부의 위치한 도시이다. 그래서 이곳 비치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것이 매우 훌륭한 구경거리이다. 점점 해가 바다로 저물어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나는 쳐다보았다.

온통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더만 이내 수평선 아래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은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고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어버린다.

저렇게 태평양 바다로 떨어진 해는 이내 지구 반대편의 한반도 동해바다 위로 떠오르겠지 생각하니 나라는 존재가 대자연 앞에서 얼마나 미비하고 초라한 것인가를 새삼 느껴진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해변을 자유롭게 구경하지 못했다면 스틴슨 비치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아무리 달려도 바퀴가 빠지지 않는 모래사장이 상상이 쉽게 가지 않겠지만 그런 곳이 샌프란시스코에는 있다.

비치를 실컷 구경하고 시대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데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아시안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백인들이 아시아 음식을 먹기 위하여 삼삼오오 모여 있고 분위가 매우 젊고 모던한 느낌이었다. 분위기에 맞게 가격대도 꽤 있는 편이었다.

우리는 거기서 태국식 볶음밥, 일본식 장어덮밥 그리고 누들, 3가지를 시켰는데 메뉴판에 ‘~밥’을 ‘rice’ 대신 ‘bob’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사장이 한국계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반가운 표기였다.

그러나 음식을 먹어보니 결코 반가울 수가 없었다. 맛도 없고 짜고 달고 이런 것을 아시아 음식이라고 팔고 있고 많은 백인들이 아주 멋있게 앉아서 먹고 있다. ‘이렇게 맛이 별로인 것을 아시아 음식이라 생각하면 어떡하지?’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조금 늦게 일어나 짐도 싸고 다운타운 한 바퀴 돈 후, 5박 6일 동안 일도 접어가며 나를 가이드한 지인 집에 가서 같이 식사한 후에 밤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갈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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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빈 칼럼니스트 사지마비 장애인(경수손상 5, 6번)으로 현재 (사)로이사랑나눔회 대표이며 미국, 호주, 유럽 등을 자유여행한 경험을 본지를 통해 연재할 것이다. 혼자서 대소변도 처리할 수 없는 최중증장애인이 전동휠체어로 현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다닌 경험이기 때문에 동료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모쪼록 부족한 칼럼이지만 이 글을 통하여 우리 중증장애인들이 스스로 항공권, 숙소, 여행코스 등을 계획하여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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