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방학, 우리 가족은 아이와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이 더위에 부산 바닷가라도 갔더라면 좋았겠지만, 우리는, 롯데자이언츠 광팬인 아드님의 소원인, ‘롯데 홈구장에서 야구 관람하기.’라는 바람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 이 극한의 더위 속에, 부산 바닷가에 발 한 번 못 담궈 보고, 부산 여행을 했던 것이었다.

다행히, KTX를 타고 머어어어어얼리까지 내려가서 어렵게 관람했던 경기는, 롯데의 승리로 끝났다.올해의 롯데의 승률을 고려할 때, 이응이가 롯데 관람을 갈 때마다 이긴다는 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기는 하다.

여섯 번 가서 여섯 번 다 이겼으니…

다음 날엔, 역사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부산 도시철도와 김해 경전철을 타고 김해로 넘어가서, 가야 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역시, 우리 가족의 터프한 여행 스타일상, 이번에도 부산과 김해의 대중교통을 어마무시하게 이용하였는데, 평소에는 체감하지도 못했던 여덟 살 이응이의 대중교통 활용 능력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로, 우리 가족이 김해에서 집까지 돌아온 기나 긴 대중교통 여정은 이러하다.

김해경전철을 타고, 부산도시철도 환승 후, 구포역에서 동대구까지 ITX 새마을호를 타고 이동하여, 동대구에서 영등포역까지 다시 KTX로 올라와서, 마지막으로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마무시한 여정이었다.

서울이라면, 모든 것이 익숙한 시스템일텐데, 부산은 우리에게는 당연히 낯설기만 한 곳이었기에, 노선도 익숙하지 않고, 이용 시스템도 서울과는 달라서,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여간 불편한 상황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부산시민이 아니기에, 교통약자 무임승차를 하려면, 일일이 승차권 발권기를 찾아 그 때 그 때 복지카드로 인증을 하여 발권을 해야 했는데, 발권기가 일관성 있는 위치에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여간 찾기 힘든 것이 아니었다.

환승이나 출구 찾기 역시, 잘 보이지도 않고, 익숙한 환경이 아니다 보니, 아무리 사전에 App을 체크하면서 움직여도, 서울에서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버거울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날씨까지 인간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수준으로 펄펄 끓어 오르는 상황이다 보니, 이런 일들은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우리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응이는 엄청나게 노련한 대중교통 이용 신공을 발휘하여, 너무나도 빠르고 정확하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우리 부부에게는, 여느 부모라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이응이 아기 때부터 장애부모 입장에서 확실히 정립해둔 육아철학이 하나 있었다.

‘아이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충분히 성장하기 전까지는, 부모의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해결과정에 아이를 개입시키지 않으며, 의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도록 한다.’

우리가 이응이를 만 7년 간 이렇게 키워 왔기에, 이번 부산 여행에서의 이응이의 자발적 도움을 받는 감회가 조금은 남달랐던 것이다.

이제 다 컸구나 싶은 그런 기분이라고나 할까?

장애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는 않을까 매순간 생각하게 된다. ⓒfreepik

장애부모가, 자신의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생활 속 불편들에 대해, 비장애 자녀에게 의식적 도움을 요청하기 적절한 시기는 과연 언제일까?

아주 어린 꼬꼬마 유아라 해도, 필연적으로, 부모보다 우월한 신체기능을 갖게 되는, 장애부모 자녀들의 특성상, 누군가를 돕는 것에 상대적으로 빨리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다.

적어도, 시기능에 있어서 만큼은, 이미 2세 때 엄마의 능력치를 훌쩍 뛰어 넘어 버린 아기, 하지만, 아직 케어 받고 보호 받아야 할 작고 어린 아이에게, 과연, 장애부모는, 언제, 어느 선에서 도움을 요청해야 아이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장애부모라면, 아이와 유의미한 소통이 시작되기 전에, 반드시 원칙을 정립해 둘 필요가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의외로, 이 부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고, 나름의 원칙을 세우는 노력을 기울이는 장애부모들을 많이 보지 못했다.

어쩌면, 이 부분이, 장애부모의 부모됨이 사회, 문화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부정 당하기까지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에, 장애부모들 당사자 입장에서는, 가장 불편한 아킬레스건과도 같은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번 칼럼에서 이 껄끄럽고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주제를 고른 이유는, 현재 영유아기 아이를 키우는 장애부모들과 장애를 가진 예비부모들이 이 부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아이와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기 전에, 나름의 원칙을 세워 두기를 권하고 싶어서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와의 처음 관계 맺기가 건강하지 못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뽀로로 카트 사진 ⓒ뽀로로카트

이응이는, 어려서부터 숫자에 남다른 인지적 민감성을 갖고 있었다.

18개월부터 유모차에 앉아서는 엘리베이터 숫자를 마구 읽고, 내가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숫자를 모아 읽기 하지 못해서 늘, ‘삼 구 구 공 공’이라고 외치는 통에, 마트 직원들을 깜짝 놀래키기도 했다.

18개월 아이를 앉혀 놓고 숫자 공부를 시킨 것도 아니니, 초보엄마로서는 아이가 왜 읽는지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지극히 비사교적인 엄마는, 아이의 이런 행동 때문에 자꾸 타인과 말을 하게 되는 상황이, 그저 민망하고 불편할 뿐이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난 후, 한 가지 짐작 가는 이유를 찾아내기는 했다. 그건, 바로, 뽀로로 소꿉놀이 때문이었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추론이었다.

아이 15개월쯤, 과일과 야채 이름을 알려줄 목적으로, 뽀로로 카트 속에 몇 가지 야채와 과일이 담긴 소꿉놀이 같은 것을 하나 샀는데, 그 안에는 생뚱맞게도 0부터 9까지의 플라스틱 숫자 모형이 들어 있었다. 당시에, 남편과 내가 너무 어처구니 없어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피망, 양파, 사과, 오렌지 등의 과채와 칼, 도마 등과 숫자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남편은, 부모들의 조기교육열풍에 장난감 회사가 부흥한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그걸 가지고 놀면서, 이응이는 가끔 음식이 아닌, 숫자들을 가져와 나한테 ‘이거 뭐야?’라고 물었고, ‘이거 1, 한 개야.’라고 말해주었던 것이, 본의 아니게, 이응이가 만 18개월에 숫자를 마스터하게 만든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어른의 얄팍한 판단으로, 이응이에게 9는 가르쳐주지 않았던 기억도 난다. 왜냐하면, 6과 9는 상하대칭적 형태라서 아이가 혼란스러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6을 가져와서는 휙 뒤집더니, ‘이케 9.’라고 말하여 나를 놀라게 한 추억도 떠오른다.

이렇게, 숫자에 관심이 지대한 아기였으므로, 약 24개월쯤 되어 아장아장 걸어다닐만큼 자랐을 때는, 멀리서 오는 버스를 보고도 정확히 숫자를 읽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와 외출하여 버스를 탈 때마다 허덕허덕 버스도착 안내방송과 어플리케이션을 번갈아 봐가며 고군분투해야 하며, 예상한 위치에서 도착하지 않은 버스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버스를 타야 하는 시각장애 엄마 입장에서는, ‘아! 저 성능 좋은 눈에 도움을 좀 받.고.싶.다.’는 달콤한 유혹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저렇게 성능 좋은 아이 눈이 있는데, 굳이 아이까지 데리고 낯선 사람한테 불쌍한 시선까지 받으면서 부탁을 해야 하나?’

‘그냥 쉽게 가자. 애한테 물어보면 블라블라 신나게 잘도 가르쳐 줄텐데… 지난 번, 영유아 검진 때도 봤잖아? 시력검사 하던 누나도 못 읽는 유아용 시력판을 읽고 싶어서, 덜컥 줄줄 읽어대는 바람에, 민망하기도 했었지. 그런 거 보면, 이 아이도, 이런 것을 보고 읽으라고 하면 좋아하지 않을까?’

‘아니야. 그건 안 될 일. 생각해 봐. 아이는 그냥 자기가 알게 된 것이 재미있고, 어른들이 칭찬하며 큰 반응을 해 주니까 그게 좋아서 저러는 거잖아. 그런데, 아직, 왜, 어떻게, 어떤 타이밍에 버스번호를 읽어줘야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에게, 긴장하며 특정 번호의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얘기해 달라고 한다는 것은? 아이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일 것임에 분명해. 원래 내 생각이 옳아. 안 하는 게 맞는 거야.’

우리 부부는 아이가 충분히 성장하여 부모의 결핍을 공감하고, 인지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도울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출 때까지는, 아이의 도움을 받지 않기로 미리 합의해 두었다고 전술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처절한 내적 갈등과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며, 아이가 스스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인지적, 정서적 공감대와 의지, 그에 따르는 행동을 보여줄 때까지, 이 원칙을 지켜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이토록 처절한 내적 갈등과 유혹을 이겨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기에, 나의 날것 그대로의 찌질한(?) 내적 갈등의 소리를 적나라하게 인용해 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적 갈등은, 비단, 장애부모와 비장애 자녀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자녀와 비장애부모 사이, 장애형제와 비장애 형제 사이에서도 비슷한 다이나믹은 존재한다. 아마도, 이 내적 갈등을 얼마나 잘 다루면서 자신의 일상의 주도성과 독립성을 높여 가는가가, 한 사람의 장애인이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얼마만큼 독립적으로 자신의 존엄과 자존감을 지켜내며 살아가는가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몸과 정신의 안온함을 위해 한 인간으로서의 주도성과 독립성을 슬쩍 내려놓을 것인가, 아니면, 몸과 정신은 조금 피곤하더라도, 한 인간으로서, 주도성을 가지고 독립적이며 위엄 있는 생활양식을 쌓아 가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셈이다.

특히나, 장애를 가지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이 주도성과 독립성과 위엄을 지켜내는 데에 좀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장기적으로, 가정 내에서, 부모로서의 나의 위엄과 육아효능감을 높이고, 이를 통해, 아이에게 신뢰로운 부모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시기능이 월등히 좋은 아이를 데리고 길을 걸을 때,

지팡이를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음성신호기를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내 말에 대답해 주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길을 물으며,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느니, 비록, 다섯 살이긴 해도, 노선도 홀릭에 제법 똑똑한 아이이니, 얘한테 물어볼까, 말까?

어쩌면, 이 아이의 훌륭한 ‘시’기능에 슬쩍 묻어가면, 나는, 좀 덜 장애인스러운 모습으로 좀 덜 불쌍해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하겠답시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다가 생기는, 민망하고 무안한 상황을 피해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당신이, 비록, 장애가 있다 하여도, 한 아이를 품고 양육하고 성장시키는, 어렵고도 귀중한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 비루한 내적 갈등을 끝내 이겨내야만 한다.

우리는 아이를 돌보며 양육하는 부모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된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도움이 필요한 경우,(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혹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나마, 당신은 큰 물체라도 볼 수 있으니 그런 소리라도 하겠지만, 전맹들은 어쩔 수 없다고…

물론, 아이가 그 상황을 체감하면서 일찍 인지하고 무의식적으로 대처하는 부분이 더 클 것이기에, 전맹 부모들의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더 잘 도울 확률은 높겠으나, 부모가 의식적으로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자원으로부터 필요한 도움을 받으려고 노력하면서, 너무 어린 아이의 ‘도움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나의 경험상으로만 보아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은 고사리 손으로 시각장애 부모 앞에 신발을 놓아주던 아이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적이 있다. ⓒ은진슬

10년 전쯤이었던가?

어떤 모임에서, 세 살 정도 된 아이가, 자신에게는 버거울 만큼 커다란 신발들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찾아서 시각장애 부모 앞에 놓아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 역시 시각장애인이었으니, 부모들에게 감정이입이 될만도 한데, 나는 오히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잡고 들기도 힘든 신발들을 챙겨서 낑낑대며 부모 앞에 놓아 주던 그 아이의 모습에 안타까운 감정이입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그 당시에는, 그 장면이 내게 그다지 깊게 각인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이응이를 낳고 키우면서,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원칙과 철학을 세워 가던 중, 불쑥 이 짧은 영상이 반짝 내 머리를 스치며, 문자 그대로, 재생되었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 플래쉬 영상과도 같았던 강렬한 기억은, 나로 하여금, 장애부모로서 아이의 도움을 받기 적절한 시기에 대한 육아 원칙을 굳건히 세우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

내가 어떻게, 이토록 없어 보이고 비루하기 그지 없는 내적 갈등을 이겨냈을까?

이러한 갈등이 밀려들 때마다, 나는, 그냥 내 옆에 아이가 없다고 생각해 버렸다. 없는 옵션을 가지고 갈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 어찌 보면, 가장 심플하고도 속 편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장애부모라면, 그 누구에게든, 아무리 사랑하는 내 아이 앞이라 해도, 어지간하면 보이고 싶지 않은 내밀하고 불편한 나 자신의 모습이 있을 수 있다.(아무리 재활이 잘 되어 있으며, 장애수용 역시 건강하게 이루어진 사람이라 해도 말이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장애부모는, 타인에게 다소 비루하고 어설퍼 보일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이라 해도, 아이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끊임 없이 이해를 구해야 한다.

아이들은 이러한 부모의 진정성 있고 담백한 모습을 보며, 우리 부모의 다름 역시 괜찮다는 믿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겪어가며, 우리 장애부모들도, 우리의 비장애아이들도, 서로를 이해하며, 세상의 모든 다름과 약함을 포용할 수 있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새, 이응이 나이 여덟 살.

이제, 말하지 않아도, 나에게 언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자신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도 잘 알며, 너무도 훌륭하게 그 도움을 제공해 주고 있다.

혹자는, 애 도움 받으며 사는 것이 무슨 큰 자랑이냐고 타박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양면성이 존재하기에, 이 또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의 부모들은, 내가 이 아이를 낳고 키웠기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잘 알며, 아이에게 어떤 것이 가장 최선인지도 잘 알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이 대책 없는 자신감은, 부모들로 하여금, 아이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고, 부모 마음대로 아이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장애 부모들은, 이렇듯 오만한 ‘전지적 부모 시점’을 갖기가 여간 쉽지 않다. 어차피, 아이가 유아기만 되어도, 우리보다 훨씬 우월한 신체기능을 갖게 되며, 이를 통해, 내 실수나 오류 등을 알려 주거나, 바로 잡아 주기도 하고, 나를 돕기도 하기에… 어지간 해서는, 오만한 ‘전지적 부모 시점’을 갖기 힘든 것이다.

이런 부분은, 어쩌면, 장애부모 입장에서 육아하는 장점인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장애엄마로서, 7년 동안, 시간을 견디며, 내적 갈등과 싸우고, 나 자신의 부모로서의 육아효능감과 유능감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지나온 지난한 시간을 통해 얻은 열매가, 바로, 장애관점이 건강하며, 세상의 다름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지금의 이응이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이번 칼럼 속 내용은, 장애부모 입장에서는, 그리 쉽게 읽히는 이야기도, 편안하게 다가오는 주제도 아닐 것이다. 쓰는 나 역시, 당사자로서 지면을 채워 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이 칼럼이 입에 쓰고, 읽기에 불편하더라도, 이를 통해, 인생에 있어서 좀 더 독립적인 단계인, 결혼 및 자녀 양육을 계획하고 있는 장애인 독자들이나, 현재 어린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장애부모님들께,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들이 잘 다루지 않는 껄끄러운 이야기를 다루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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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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