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1일, 시각장애부모들의 육아모임인 <심봉사임당>에서는, 완연한 봄을 아이들과 함께 즐기고자, 딸기따기 체험을 다녀왔다.

올해는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이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동아리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좀 더 주도적이고 자율적인 예산 집행과 활동이 가능해졌다.

작년에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을 통해 서울시 예산을 지원 받았을 때는, 자율성이 거의 없어 동아리 활동 자체 외에 챙겨야 할 서류작업도 많았고, 지나치게 경직된 예산집행 규정 탓에 활동에 제한성도 많아서 많이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올해는 예전처럼 우리 자체 예산으로만 활동을 진행하자고 합의를 보았었는데,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의 지원사업 공고를 보고는, 모임의 자율성을 담보하는 매력적인 조건에 매료되어 부랴부랴 신청서를 냈고, 감사하게도 우리 단체를 선정해 주셔서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올 한 해의 활동이 더욱 더 기대 된다.

지면을 빌어, 장애인 당사자의 자조 혹은 자기옹호의 본질에 충실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주신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햇살이 더없이 따사로운 봄, 딸기꽃이 하얗게 피었다. ⓒ은진슬

바야흐로 봄이다. 개나리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햇살도 더없이 따사롭다. 아이들과 야외에 나가 놀기 딱 좋은 날씨다.

물론, 몇 년 전부터는 미세먼지 때문에 늘 고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연의 싱그러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 주고자, 딸기농장 체험을 하기로 했다.

시각장애 부모들에게, 아이들과의 나들이 장소를 정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교통 접근성이다. 우리는 운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멋지고 재미난 장소라도 대중교통으로 접근할 수 없으면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정밀한 검색 끝에 발견한 곳은, 운길산역에서 도보로 20분(혹은 버스 이용 가능)이면 갈 수 있는 남양주 기쁨딸기농장이었다.

주말에는 태권도, 미술학원 등에서 체험학습을 많이 하다 보니 예약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적당한 장소 섭외를 하고 예약과 입금을 진행하고 세부 일정을 짜는 일은 다 해 놓고도, 정작 나는 일 때문에 이번 체험에 함께할 수 없었다.

그래도, 늘 모임 관련 일을 잘 도와주는 든든한 남편과, 지난 롯데타워 나들이 이후 두 번째 자원봉사로 참여해 주는 나의 PPT Assistant 친구가 있어 크게 걱정 되지는 않았다.

세상에!

오전 10시 15분까지 운길산역에 도착해야 하다니…

경의중앙선의 배차 간격이 30분임을 감안할 때, 어디에 살건 최소 두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먼 거리였지만, 역시나 늦은 가족이 한 팀도 없었음에 감동했다.

차가 없으니, 우리 시각장애 부모들은 매우 부지런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 덕분에 아이들도 부지런하고, 대중교통 이용하면서 지켜야 할 예의도 잘 알며, 나름 적응력과 자생력도 강한 것 같긴 하다.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뭐 별 수 있나?

이번 나들이를 함께 했던 내 Assistant 친구는, 차 없이 돌아다니는 우리의 고충을 보고는, 자신이 얼른 1종 보통 면허로 업그레이드 하여 밴이라도 렌탈해서 아이들과 같이 다니고 싶단다. (이러니, 내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친구다!^^)

딸기 철은 거의 끝나가지만, 탐스럽고 달달한 딸기들이 충분히 있었다. ⓒ은진슬

사실, 딸기 철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라, 혹 딸기가 많이 없으면 어쩌나 많이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빨갛고 탐스러운 딸기들이 충분히 있었단다. 우리 아들의 말에 따르면, 다른 친구들은 덥다고 얼른 후딱 따고 나가서 놀았지만, 자기는 엄마한테 예쁘고 잘 익은 맛난 딸기를 따다 주고 싶어서, 정해진 시간 내내 더운 비닐하우스에서 엄청 꼼꼼하게 딸기를 땄단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아들이 의기양양하게 내미는 딸기를 보니, 정말 여덟 살 아이 주먹만한 새빨갛고 탐스러운 딸기에, 단 하나도 꼭지 부분에 흰 부분이 없는 것을 보고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이 정성껏 따다 준 달콤한 딸기 한 입에 일 때문에 여러 모로 기분 좋지 않았던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열심히 딸기를 따는 아이들. ⓒ은진슬

딸기 체험을 마치고는, 아침 일찍 출발하여 모두들 배가 고픈 상황이었기에, 점심을 먹었다.

사전 조사 결과, 근처에는 걸어서 갈 만한 식당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미리 김밥집에 주문을 하여, 유일하게 우리 멤버들 중, 차량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지원이네 가족이 도시락 배달 대행을 흔쾌히 도와주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나들이 오는 것 자체도 분주했을텐데, 우리의 맛난 점심을 위해 애써 준 지원이 엄마 아빠에게 고마운 마음 전해 본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는, 다음 체험 시간 전까지 자유롭게 체험 공간에서 놀 수 있다고 하셨기에, 아이들은 딸기밭에서 신나게 뛰어 놀았다고 한다.

남자 아이들은, 이제 많이 자라 제법 의젓한 형님 티가 물씬 풍기는 지원이 형아가 잘 돌봐 주며 재미있게 놀았단다.

그런데, 우리 심봉사임당의 아동 성비는 이상하게도 남아가 압도적으로 높다. 아들 일곱에 딸 넷. 그러다 보니, 어쩌다 딸 있는 가족 한 팀만 참석을 안 해도, 서윤이 혼자 홍일점이 되어 외로워 지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서윤이가 많이 외로울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예쁜 이모가 마음을 읽어주며 잘 놀아 주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느 새, 학령 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많아져서 일일이 함께 놀아 주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잘 노는 데다가, 아이들과 재미있게 잘 놀아 주는 자원봉사 이모까지 있다 보니, 오랜만에 어른들끼리 재미있는 수다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단다. (아! 나도 갔어야 했는데… 아쉽다!)

시각장애부모가족 봄향기 속 딸기따기, 심봉사임당 단체사진. ⓒ은진슬

재미있게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길산역까지 가는 버스 간격이 너무 길어서, 아이들이 기다리느라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전해 들으니, 최소한 우리 아이들이 교외 야외 나들이를 갈 때만이라도, 벤 종류의 큰 차량과 운전해 줄 수 있는 인적 자원을 좀 더 적극적으로 구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이렇게 하여, 싱그러운 봄날, 심봉사임당의 딸기따기 나들이는 끝이 났다. 함께 했던 모든 아이들의 마음 속에 멋진 추억의 한 페이지로 기억되는 나들이였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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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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