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응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이미, 제법 규모가 큰 유치원 입학식과 두 번의 진급식, 졸업식까지 경험했음에도, 초등학교는 그 규모가 훨씬 크기에 여간 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뭐, 아이가 입학하는 건데 엄마가 왜 그리 긴장하며 유난스럽게 구느냐는 생각이 드는 독자들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사실, 아이 입학식이나 진급식, 졸업식 등의 대규모 행사에서 시각장애부모들이 긴장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그건 바로 내 아이를 보지 못하는 것에서 파생되는 나름 스펙터클한 사건 사고들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가 어느새 성장하여 멋진 모습으로 졸업과 입학을 하는 날, 우리 엄마 아빠들은 숱한 아이들 속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군계일학 내 아이만 보인다.

이렇게 멋지고 자랑스러운 아이 모습을 내 눈 속에, 소중한 기억 속에, 사진 속에 한 장이라도 더 담으려고 애쓴다. 그야말로 한 순간도 내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 날의 주인공인 내 아이만 바라보며 온 맘과 온 몸으로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시각장애 부모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걸 잘 해줄 수가 없다. 아이가 더없이 자랑스런 모습으로 상을 받으며 객석에 앉아 있는 엄마를 바라봐도 눈을 맞추며 공감해 줄 수도 없으며, 그토록 늠름하고 사랑스런 모습을 멋진 사진으로 남겨 줄 수도 없다.(시각장애부모 가족들을 대상으로 졸업이나 입학, 콩쿨 같은 소중한 이벤트 때에 아이 사진을 찍어 주는 사진 전공 대학생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나 복지관 프로그램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며칠 전 주말, 역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시각장애맘으로 심봉사임당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가족을 집으로 초대하였는데, 이 날의 핫한 주제도 단연 아이 유치원 졸업과 초등입학 이야기였다.

이 집의 멋진 아드님도 유치원에서 대표로 답사를 했는데, 아이가 무대에서 자랑스런 모습으로 아무리 엄마를 바라봐도 엄마는 나를 바라보며 공감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서인지, 아들이 집에 와서 하는 말이, 다음에 엄마가 내 엄마로 태어난다면 눈이 보이는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우리는 극한의 공감으로 잠시 말을 잃다가 이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에이, 우리 아들이나 언니 아들이나 지 앞가림 지가 해야 하니까 보통 애들보다 두 배는 야무지고 똑똑하잖아. 좋게 생각하자고.’

‘맞아. 사실, 너나 나나 아이에게 담백하게 오픈하고 장애관점을 잘 심어 준 덕분에, 아이가 그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게 고마운 거야. 말 안하고 곪으면 더 아프잖아.’

아이의 입학식날, 뿌듯한 마음과 동시에 걱정이 가득했다. ⓒ은진슬

이응이가 입학하게 된 학교는 혁신학교로 1학년이 22명씩 8반이나 편성된 제법 북적거리는 학교이다. 아이 입학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학부모들, 종종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대동한 경우도 많았으며, 신입생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참석한 6학년 형님들까지… 그러니, 당연히 입학식은 매우 복잡하고 정신 없는 도떼기시장과도 같았다.

신입생 학부모들은 아이들과 떨어져서 강당 뒷편이나 옆편에 서서 입학식에 참여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로서는 도대체 이응이가 어떤 모습, 어떤 상태인지, 아니 이응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전혀 알 수가 없어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뭐, 그래도, 이런 상황엔 어느 정도 익숙하다 보니, 그저 아이는 잘 하고 있을 거라 여기며 입학식을 보았지만, 입학식 후에 대체 아이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유치원 입학식 때도, 진급식 때도, 늘 그것이 큰 스트레스이자 종종 문제 상황으로 발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우터를 벗고 가운이나 유니폼 등을 입고 행사에 참석했다가 끝나면 아이를 찾아 입히라든지, 부모교육을 마치고 모여 있는 아이들 중 내 아이를 찾아 무엇을 전달하라는 등등…

시각장애인으로서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모두 같은 원복이나 가운을 입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내 아이를 찾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미션이다.

다른 엄마 아빠들이 모두 그 많은 아이들 속에서 대번에 자기 아이를 찾아 반가워하며 온갖 애정표현을 하는 와중에, 아이가 나를 찾아주기 전까지는 막연하고 무력하게 그 시간을 견뎌야만 하는 시각장애맘의 심정은 더없이 서글프고 비루하다.

역시나…이번 입학식 때도 결국은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식이 끝나고 각반 교실로 가서 아이들을 만날줄 알았는데, 체육관겸 다목적 강당에서 각 표지판으로 위치 표시를 하고는 그 앞에 선생님이 서 계시면 아이들과 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배포되는 자료와 선생님 말씀을 듣고 가라는 것이었다.

이미 아이와는 저 머어어얼리 떨어져 있던 상황. 아이를 찾는 건 고사하고, 그 많은 인파 속에서 표지판을 찾는 것조차 암담한 상황이었다. 너무나 복잡하고 도떼기시장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묻기도 어려워 이리 저리 인파에 휩쓸리면서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아이가 우리를 발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던 것이, 아이는 이미 지시에 따라 자기 반 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간 듯했다.

결국, 우린 아이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복잡한 인파 속에서 보통 아이가 엄마 아빠를 잃어버리는 경우는 흔해도, 엄마 아빠가 아이를 잃어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우리가 아이 반 선생님의 위치와 아이를 찾지 못하고 허둥댔던 시간은 길어야 5분 남짓이었다. 하지만, 그 5분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자괴감에 치를 떠는 시간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상황, 그 자리에 서 있는 부모로서의 나 자신이 얼마나 하찮고 비루하게 느껴지던지… 정말이지 그저 연기처럼 증발해 버리고 싶었다. 남편과 내가 아이나 선생님을 찾고자 떨어져서 우왕좌왕하며 전화를 주고 받으며 오가던, 차마 서로를 원망할 수 없지만, 서로의 비루함과 자괴감을 숨길 수도 없었던 그 불편한 커뮤니케이션…’

걱정과는 달리 의기양양하게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다고 자랑하는 아이를 보며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은진슬

누가 뭐라 해도, 아이에게 스마트폰은 가장 늦게 쥐어주고 싶은 내 육아철학을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리고는 당장 아이에게 스마트키즈워치라도 하나 사서 채워 버리고 싶었던 그 답답함그나마, 이렇게 비참한 수직 낙하산에 내 비루한 몸과 마음을 싣고 끝 모를 나락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던 그 시간, 내 아이는 예상했던 대로, 엄마 아빠가 일단 오거나 말거나 선생님 앞 가장 가까운 곳에 서서 모든 자료들을 야무지게 챙겨 들고는 선생님 말씀을 한 자라도 놓칠 새라 초집중하며 듣고 있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을까?

본의 아니게 다른 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 있어야 했던 몇 분 탓에, 중간부터 말씀을 들은 우리 선생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비교, 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이 비루한 시간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아무튼, 아이는 우리를 보고 반가워 했고, 그런 일 따위는 신경 쓰지도 말라는 듯, 의기양양하게 자신이 얼른 가서 유인물 다 챙기고 선생님 말씀 제일 잘 듣고 있었다고 자랑을 한다.

그렇게 겨우 안도하며 식장을 나서는데… 이번엔 또,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내게 아는 척을 한다.

난 도저히 그녀가 누구인지 추론할 수조차 없다.

너무 난감하다.

그녀는 내가 당연히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듯, 호감과 사교성을 가득 담아 내게 인사를 건냈는데…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굳어버리자, 그녀는 내게 402호라고 말해 주었다.

아마도, 이전 사건 때문에 내 표정은 평소보다 한결 더 경직되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얼른 집 나간 정신을 수습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사람을 못 알아볼 만큼 시력이 너무 나빠서요. 죄송하지만 당분간 먼저 아는 척 해 주시면, 저도 인사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의 말에 그녀 역시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도 노안이 와서 잘 못 알아봐요.^^’ 근데 아이는 몇 반이에요? 우리 아이는 4반인데…’

‘저희 아이는 1반이에요. 앞으로 자주 뵐게요.’

아! 기억났다. 저 사람, 한 번 마주친 적이 있던 같은 아파트 주민이다. 자신의 둘째 아이도 이응이랑 동갑이라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될 거라 말했던…

오늘은 정말이지 산 너머 산이다. 그야말로 멘탈이 탈탈 털리는 날이다.

운동장에 마련한 포토존에서 가족사진 찰칵. ⓒ은진슬

운동장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기 전, 아이에게 앞으로 다니게 될 학교이니 교실과 화장실, 급식실, 양호실 등, 긴요하게 꼭 필요한 장소들을 둘러보고 가자고 했다. 물론, 아이는 앞으로 차차 담임선생님을 통해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차근차근 안내도 받고 실제 가 보기도 할 것임을 알았지만, 당장 내일부터 아이와 등/하교를 함께 해야 하는 나에게 더 긴요한 일이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포토존으로 갔다.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 있는 가족 무리들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나의 바로 뒤에서 영어로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보아하니 아빠는 한국인, 엄마는 필리핀계 한국인, 그리고 아이 하나로 구성된 가족이었다.

사진 찍기를 기다리면서 대화를 듣자 하니, 엄마는 아이와 8 대 2 정도의 비율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사용하고 있었다.

나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도 이 땅에서 나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당신의 다름과 아이의 다름 때문에 고단한 삶을 살겠군요!’

그러는 사이에 우리 가족 차례가 되었고, 우리는 아이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모든 가족이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뒷사람에게 부탁했듯이, 나도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웃으며 사진 좀 찍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그녀에게 영어가 편치 않아 말을 쉽게 걸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겠다 싶은 마음에 살짝 덧붙였다.

나는 영어로 이야기 하는 걸 즐기며 불편해 하지 않는다고…

그러니 그녀가 묻는다. 당신 아이는 몇 반이냐고…

나는 다시 1반이라고 대답했고, 그녀는 자기 아이도 1반이라고 대답했다.

앞으로 아이들도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하며 아이들끼리도 인사를 나누게 하고는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는 다문화 친구네!’

‘맞아, 동화책이나 TV 방송 같은 곳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그런데, 이응아! **이도 **이 엄마도 모두 한국 사람이야. **이 엄마는 한국 남자랑 결혼해서 한국에 살게 되면서 필리핀 민족성을 가진 한국인이라는 법이 인정하는 한국인 지위를 갖게 되었고, **이는 당연히 이응이처럼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말을 하며 한국 음식을 먹으며 너희들과 같은 교육을 받으니 당연히 한국인이지. 엄마는 <다문화>라는 말이 오히려 저런 형태의 가족들을 더 구분하고 차별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나는 다문화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저 표현이야말로, 이주노동자들과 유학생들, 그들이 이루어 가는 가족 구성원들을 한국 사회에서 더욱 더 구별하고 차별하는 주홍글씨 같다는 마음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다.

그저 미국처럼, 필리핀계 한국인, 아니면 그저 한국인이라고 불렀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정서적으로 고단했던 아이의 입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온 몸과 온 맘이 너덜너덜했다.

아이의 성장과 새로운 시작은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주었지만, 나의 불편한 마음은 영 가시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우연히 우리 반에는 장애를 가진 엄마와 민족적 백그라운드가 다른 엄마와 그 딸이 함께 하게 되었다.

게다가, 입학식 일주일 후에 알게 된 사실 하나 더.

우리 아들의 전언에 따르면, 친구 중의 한 명이 와우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장애인이라서인지 그 친구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뭔가 불편한 것은 없는지, 잘 안 들리는 것 같아 보이면 알려주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다양성의 향연이 펼쳐지게 생긴 것이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과연 이 사실을 알고 계실지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학부모 총회 개최 전인지라, 내 정체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에게는 다양성을 몸소 체험하며 존중하는 법을 배워 나갈 수 있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 주어졌기에, 엄마로서 너무 기쁘기는 하다.

과연 앞으로 조금은 특별한 이응이의 1학년 1반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다른 건 몰라도, 내 글감이 풍성해질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앞으로 칼럼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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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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