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벌써 세 번째 이사다.

장애인 치고는 정말이지 이사를 많이 한 편인데, 나도 처음부터 이러려고 이런 건 아니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야 하는, 보통의 부모들이 고려하고 고민해야 하는 그런 점들 때문에 본의 아니게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대열에 합류한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아,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길… 괜히 아이 학교 때문이라고 하면, 아이를 사립학교 같이 좋은 곳에 보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부류의 엄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것은 아니니까. 그저, 2020년에 입주 예정인 거주지 근처의 평범한 초등학교를 미리 배정 받아 놓아야 아이가 중간에 전학하느라 힘든 상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감행한 불가피한 이사였을 뿐이다.

물론, 우리 나라의 어마무시한 부동산 가격 급등도 내 화려한 이사 역사에 단단히 한 몫 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 정권에서 그렇게 빚 내서 집 사라고 노래를 할 때, 그 때 샀어야 했다. 무리한 대출을 원하지 않았던 소심한 내 입장에서, 요즘 부동산 시장의 판세를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좋은 기회를 잃은 것만 같은 박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또 이삿짐을 싸서 결혼 후 세 번째 이사를 감행했다.

사실,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이사를 한 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20대 때부터 본의 아니게 다양한 이사 경험을 갖게 된 나는, 결혼을 하고 아줌마까지 되고 보니, 이젠 장애 특성에 맞는 이사 노하우를 웬만큼 겸비한 프로급이 되어 버렸다.

사실, 이 주제로 칼럼을 쓸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칼럼니스트 미팅 때 내가 곧 이사를 한다고 하니, 한 기자님께서, 시각장애인 입장에서의 이사의 어려움이나 노하우 같은 걸 써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하시기에, 시각장애인 관점에서의 이사라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다.

장애, 비장애를 막론하고, 한 가족이 이사를 한다는 일은 무척이나 지난하고 고단하기 이를 데 없는 과정이며, 신경 써야 할 부분들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요즘은 세상이 참 좋아져서, 포장이사 서비스도 무척 잘 갖추어져 있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의 살림들을 포장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새로 거주하게 될 집의 상태를 체크하고 수리하는 일, 집의 구조가 바뀌는 경우, 적절한 장소에 가구나 용품 등을 배치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신경 쓸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어린 아이가 있다면, 아이가 익숙한 집을 떠나 새로운 집과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아이 마음도 돌봐야 한다.

이런 힘든 프로젝트인 ‘이사’라는 일을, 시각장애를 가진 입장에서 주도적이며 독립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장애 특성으로 야기되는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한 갖은 아이디어와 노하우, 추가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 지금부터 내 경험에서 나온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의 시각장애인의 주도적이며 독립적인 이사를 위한 팁들을 공유해 보기로 한다.

이사 이후, 바로 사용할 물건들은 별도로 상자에 포장하여 레이블링 한다. ⓒ은진슬

첫째, 아무리 좋은 특급 포장이사업체를 이용한다 해도, 이사 후 당장 필요한 물건들이나 자주 사용하는 물건 등은 별도로 상자에 포장하여 레이블링 해 둔다.

물론, 비장애인 입장이라면, 좋은 이사업체만 선택하면, 짐을 싸고 옮기는 일은 그리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라면? 얘기가 많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포장실력과 수납 실력을 갖춘 서비스 좋은 이사 업체가 이사를 맡는다 해도, 새롭게 정리된 물건들의 위치를 시각적으로 조망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이사 후 며칠 간 살아가는 일 자체가, 난해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의 레고 블록 등 작아서 잘 챙겨 두어야 하는 장난감이나 평소 소중히 여기는 미술작품 같은 것들은, 따로 상자에 잘 포장해 두면, 분실이나 파손에 대한 염려를 덜 수도 있다. 또한, 이렇게 나름의 방식으로 어느 정도 포장을 간단하게라도 해 두면, 이사 후 천천히 나만의 페이스로 차근차근 정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 될 수 있다.

미리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집 구석구석을 꼼꼼히 체크한다. ⓒ은진슬

둘째, 입주 전, 미리 체크할 리스트를 작성하고, 수도, 변기, 보일러, 레인지 후드, 전등 등을 직접 작동하며 꼼꼼히 체크한다.

사실, 이런 일은 계약 전에 집을 돌아보며 고를 때 해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 나라 정서상 대부분 집에 누군가가 있는 상태에서 부동산업자와 방문해서 수행하기는 힘든 일들이다.

또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내 입장에서 더듬거려가며 그런 상황에서 맘 편히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나는 가능하다면 상대의 이사와 나의 입주 사이에 최소 하루 정도의 텀을 두어 체크하는 편이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될 경우, 수리 및 개선 요청 사항들을 문서로 적어 두고 협의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구두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비장애인들은 대명사와 제스쳐 등을 사용하면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문제점이나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 난감한 상황이 되거나, 얼렁뚱땅 문제들이 덮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입주 전, 집 구조를 파악하고, 사이즈 측정 및 가구 배치 위치 등을 확정하여 이사 전날, 포스트잇에 간단히 적어 주요 위치에 미리 붙여 둔다. ⓒ은진슬

셋째, 입주 전, 집 구조를 파악하고, 사이즈 측정 및 가구 배치 위치 등을 확정하여 이사 전날, 포스트잇에 간단히 적어 주요 위치에 미리 붙여 둔다.

물론, 아파트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비슷비슷한 구조의 아파트들이 가득한 우리 나라에서, 구조가 유사한 곳으로 이사할 경우에는 이런 일을 전혀 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 과정은 필수다.

특히나, 최소 4, 5명의 인원이 스크래치 방지 등을 위해 여러 형태의 케이스에 꽁꽁 포장한 다양한 물건들을 세워서, 혹은 뉘여서 들고 들어오면서, ‘이건 어디다 놓을까요?’라고 묻는 상황에서는, 시각장애인인 나는 ‘이건’ 뭔지부터 파악하기가 너무너무 힘들다. 그야말로 시각장애인들에게는 가장 취약한, 대명사가 난무하는 대화가 주가 되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그 복잡한 상황에서 사전 실측도, 위치 파악도 없이 눈대중도 못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 시각장애인이, 구두로 가구 배치 위치를 정확히 정하고 소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에, 가구의 사이즈와 집의 각 벽면의 사이즈를 실측하여 대조한 후, 적당히 놓을 곳을 정해 간단하게 포스트잇에 가구명을 적어 벽면에 붙여 두면 매우 편리하다.

이렇게 꼼꼼하게 준비했음에도 약간의 오차나, 의외의 복병이 나타나는 경우도 가끔은 생기게 마련인데, 그래도, 미리 이렇게 해 두면, 짐을 옮기는 분들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의 의도가 파악 가능하기 때문에 훨씬 수월하게 소통하며 정리할 수 있다.

집안에 교체할 것들이나, 큰 가구에 대한 위치를 미리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둔다. ⓒ은진슬

넷째, 입주하는 곳에 전등이나 전원스위치 커버, 수도꼭지 등 교체해야 할 것들이 유사한 형태로 복수로 존재하는 경우, 필요한 자재들을 미리 구입한 후, 각각의 상자에 포스트잇으로 어디에 어떻게 설치될 것인지를 간단하게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 둔다.

사실, 나 역시 전등 사이즈나 수도꼭지 크기 등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어떤 것이 어디에 적당한 물건인지는 더더욱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요즘엔, 그래도 스마트폰이 있어 어디서든 상황에 맞는 사진을 찍어 가지고 가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난 여름, 갑자기 우리 집 두꺼비집 퓨즈가 나간 적이 있었는데, 관리사무소에서 교체는 해 주지만, 마침 부품이 떨어져서 내가 직접 사와야 한다는 말에, 어떤 부품이 필요한지 사진을 찍어 가지고 가서 나 혼자 사올 수 있었던 경험도 있다.

이렇게 필요한 자재들을 미리 구매하여, 각각의 상자에 ‘LED전등/현관옆방’, ‘스위치커버/부엌쪽방’ 이런 식으로 적어 두면, 내가 사다 두고도 이 아이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는 입장에서 수리해 주시는 분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어 준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하는 아이의 마음도 고려하여 이사의 과정에 함께 참여하도록 한다. ⓒ은진슬

마지막으로, 비록, 이사 준비로 집을 보러 다니고, 상황에 맞는 각종 준비를 하느라 많이 바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 마음 돌보기도 잊지 않도록 한다.

이응이는 사실 불안이 높고 예민한 성향을 타고난 아이이다. 그러다 보니, 다섯 살,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이사를 할 때는, 많이 걱정하며 불안해 했다.

이 집을 떠나기 싫다, 내 장난감, 피아노, 큰 소파는 어떻게 가져가느냐, 이사회사에서 내 물건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 등등…

덕분에 나는 빈 상자들을 가져다 놓고는, 아이에게 엄마랑 같이 이응이 소중한 장난감들을 함께 포장하자고 제안하고, 포장 후에는 직접 유성매직으로 자기 이름과 무엇이 담겼는지 등도 함께 써 가며 아이가 마음에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파트 단지를 오가다 이사하는 집이 있으면 이삿짐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과정을 함께 보며, 우리 집 거실보다 큰 차가 물건들을 저렇게 안전하게 다 넣어 새 집으로 소중히 가져다 준다고 설명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사 직전, 문득문득 자기 전이면, 불안을 드러내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던 아이를 위해, 미리 입주할 집에 실측을 하러 갔을 때, 바쁜 와중에도 평소 아이가 갖고 싶다고 했던 또봇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사서 몰래 새로 들어온 아이 가구 한 구석에 숨겨 두기까지 했었다.

이전 집에서 등원하여, 새 집으로 하원하는 낯설기 그지없던 날 저녁, 아이는 그 티셔츠를 발견하고는 매우 기뻐하며 불안하고 낯선 마음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나는, 기뻐하는 아이에게, 새 집으로 이사 온 이응이를 환영하려고 새 집의 요정이 선물로 준비해 둔 모양이라며 한껏 신기해 하며 함께 기뻐해 주었다.

물론, 작년 어느 때인가, 옷장에서 오랜만에 그 옷을 본 아이는, ‘이거 사실은 엄마가 선물해 준거지?’라고 물으며 씩 웃어 보였지만…

적어도, 4, 5세 아이로서는 충분히 위안이 되는 이벤트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 훌쩍 더 커버린 이응이, 이번 이사 때는 자기가 사용할 책상과 침대도 직접 고르고, 집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함께 집 구경도 하고, 모델하우스도 같이 가 보는 등, 어엿한 한 사람의 가족 구성원으로서 엄마 아빠와 이사 과정을 함께 했다.

이번 이사도 우여곡절을 겪고, 나름의 노하우와 팁들을 총 동원해 가며, 장애 특성을 고려한 주도적이며 독립적인 이사에 성공했다.

사실, 일주일 정도는 이래 저래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서 거의 미쳐 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던 터라, 지인에게 내가 왜 이렇게까지 혼자 뻘짓하며 힘들게 사는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살짝 늘어 놓으니, 사람은 원래 생긴 대로 사는 법이라며,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이라도 너는 그렇게 혼자서 꿋꿋하게 해낼거란다.

휴! 벌써부터 내년 4월에 예정된 이사가 걱정되지만, 뭐, 이제 거의 프로급 이사실력을 겸비했으니, 그 때는 더 수준 높은 이사의 신공을 발휘하리라고, 나 자신을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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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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