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교회를 다닌다. 교회를 다니다 보니 성경을 접할 때가 상당히 많다. 문제는 성경에 있는 말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옛날에는 주석이 달린 영어성경을 본 적이 있었다.

최근에도 히브리서에 있는 예수님은 멜기세덱 계열이라는 말의 뜻을 겉으로는 알지만 참뜻, 속뜻을 알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유투브를 통해 쉽게 설명한 강해 동영상을 들었을 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있게 되어 짜릿했다.

지도자의 삶의 방식을 본받으라는 히브리서 구절도 겉으로만 이해했지만 진짜 뜻이 무엇인지 아리송했다. 목사의 쉬운 설명을 듣는 것과 동시에 과거 교회가 힘들었던 시절 내가 겪었던 인도자에 대한 경험을 떠올렸을 때 그 구절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필자도 알기 어려운 것을 이해하려면 쉬운 정보를 얻고 삶의 경험을 떠올릴 때 가능하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것이 알기 쉬운 권리협약 제작과정에서도 있었다.

권리협약에 있는 조문의 단어 뜻이 눈에 보이지 않고 추상적이라 발달장애인에겐 상당히 어렵다. 더군다나 우리말로 번역한 권리협약에는 한자 단어가 상당히 많고, 한자의 경우 한 글자에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어 그 단어들을 발달장애인들이 이해하는 건 더욱 어렵다.

제작위원들이 처음 권리협약을 알기 쉬운 말로 바꾸려고 했을 때 무슨 말이 몰라 상당히 어려워했다. 그래서 지원자들은 단어 뜻과 권리에 대해 쉬운 설명을 했다. 위원들에게는 공부하고 쉬운 조문으로 바꾸는 게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위원들의 머리는 상당히 아팠다.

장봉혜림원 MT 당시 제작위원들이 활동하는 모습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하지만 계속 알기 쉬운 설명을 들으니 제작위원들의 머릿속에는 어려운 단어 뜻에 대한 정보가 차곡차곡 쌓이고 쌓였다. 권리에 대한 개념도 조금씩 생겼다. 그러다 보니 권리협약 조문의 의미를 하나하나 알기 시작했다. 물론 조문을 알기 쉽게 고치는 과제도 제작위원들에게 주어졌다.

시간이 지나며 제작위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려운 조문을 알기 쉽게 바꾸었고 자신이 변해 있음을 느끼며 기뻐했다.

또한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제작위원은 정치에 대한 알기 쉬운 설명을 듣고 조문을 쉽게 바꾼 후 복지관에 있는 선생님과 대통령선거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고 얘기했을 정도니 말이다.

조문을 알기 쉽게 바꾼 내용들은 보다 많은 발달장애인이 읽고 이해하기 쉽게 할 목적으로 다시 서울장애인인권부모회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의 검수를 거쳐 더 쉬운 문장으로 나왔다. 검수를 거친 문장은 다시 제작위원의 의견을 거쳐 최종 알기 쉬운 조문으로 확정되었다.

조문을 바꾸는 작업만 했을 뿐 아니라 제작위원들은 권리와 관련한 경험도 했다. 장봉혜림원 방문 및 MT를 하며 제작위원들은 함께 장을 보고, 빨래, 청소 등을 직접 해보았다. 그 과정을 거치며 자립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한 위원들이 여럿 생겼다.

방송국도 체험하고 TV프로그램의 어려운 말을 알기 쉽게 바꾸는 등 이해하기 쉬운 자막제작에도 참여하며, 위원들은 방송에서 알 권리가 중요함을 자신의 목소리로 밝혔다.

이외에도 위원들은 발달장애인의 권리 강의와 라디오 방송 출연 등을 했다. 권리협약에서 알기 쉽게 배운 권리공부가 쌓이고 권리에 관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보는 일이 많아지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지원자들의 지원도 받았다. 위원들의 말과 표현엔 힘이 세고 자신감이 묻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경험들은 위원들에겐 말이 어려운 권리협약을 알기 쉽게 바꾸는 자양분으로 다시 작용했다. 간접체험 등의 경험, 알기 쉬운 정보들로 인해 위원들은 알기 쉬운 권리협약 책을 2013년 10월 8일 세상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누구나 알기 쉽고 모두 함께 누리는 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와 제13조의 내용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얼마 전 정신적 장애인의 의사결정지원과 관련한 토론회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한 발제자는 이런 말들을 했다.

“발달장애인이 의사결정 시 정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언어, 그림, 시각적 소통방식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보를 기억할 수 있도록 메모, 사진 등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보조수단이 필요하다. 또한 정보를 가지고 판단 시 의사결정은 합리적 이성뿐만 아니라 주관적 경험까지 가지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종합적 지원에서 주관적 경험의 기회를 박탈하기에 발달장애인은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에게는 다양한 인생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말들을 듣는 순간 알기 쉬운 정보제공 및 삶의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지원에 정말로 필요한 것임을 깊숙이 알게 되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알기 쉬운 권리협약 제작위원들이 한 일이 결국엔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지원을 위한 작은 한 걸음을 걷는 것이었음을.

정신적 장애인의 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 때 모습 ⓒ이원무

1년 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최초의 발달장애인 위원으로 당선된 로버트 마틴 위원도 위원선거 운동 당시 시설에서 살았던 가슴 아픈 경험과 자신이 벌였던 저항들을 말했다고 한다.

그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기에 힘이 세서, 유엔에서 깊은 울림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공감을 받았기에 위원으로 당선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우리 사회 현실을 생각하면 부모들, 종사자 등이 ‘너는 안 돼! 능력 없잖아! 위험하잖아! 내가 보호할게!’라는 명목으로 발달장애인을 보호의 틀에 가두어 발달장애인에게 삶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떠오른다.

우리나라가 지원의사결정 대신 대체의사결정 성격이 짙은 성년후견제를 실시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부모와 종사자, 사회복지사 등 지원자들은 각 상황에서 Risk(리스크)와 Danger(위험)를 구분해야 한다. Risk란 위험하지만 동시에 삶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거인 반면 Danger는 기회는 없고 위험만 존재한다는 점이 차이인 것이다.

이 차이를 인식해 발달장애인에게 삶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럴 때 발달장애인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실수하고 실패할 권리를 몸소 배우고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신장시키며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

여기에 그림, 이해가 용이한 단어, 간단한 표현 등으로 알기 쉬운 정보제공을 하는 것까지 더해지면 발달장애인은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본다.

국가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권고를 받아들여 정신적 장애인의 의사결정지원에 대해 연구하되 장애인 당사자, 장애계 등을 반드시 참여시키고 외국의 사례 등을 보며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연구해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의사결정지원제도를 만들어 정신적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으로 당선된 로버트 마틴 위원이 지난 5월 17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세미나를 할 당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 ⓒ이원무

이런 사회분위기일 때 발달장애인은 더 이상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침해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당당하게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필자는 말하고 싶다.

요즈음 비영리단체인 피치마켓에서 읽기 쉬운 책을 만드는 것이나, 장애인개발원에서 「반갑다, 발달장애인법!」을 만드는 등 발달장애인에게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하려는 노력들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접한다. 발달장애인에게 삶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들에 대한 여러 소식도 들린다.

이런 것들을 나는 응원한다. 결국엔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지원제도로 가게 되고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증진해 사회통합으로 가는 작은 한 걸음, 한 걸음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 제작과정에서 배웠던 알기 쉬운 정보와 삶의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고 또 되새기게 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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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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