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82년생 김지영’에는 임신과 출산을 앞둔 여성의 심경이 솔직하게 표현되어있다. 새 생명의 탄생과 그 과정의 아름다움 이면에 여성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불안함과 공포가 담담히 서술되어 있는 것이 더욱 현실적으로 와 닿는 대목이다.

“머리가 좀 지끈거려도 쉽게 진통제를 삼키는 사람들이, 점 하나 뺄 때도 꼭 마취연고를 바르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엄마들에게는 기꺼이 다 아프고, 다 힘들고, 죽을 것 같은 공포도 다 이겨 내라고 한다. 그게 모성애인 것처럼 말한다. 세상에는 혹시 모성애라는 종교가 있는 게 아닐까...(후략)”(p.151)

소설 속 김지영씨가 출산을 한 다음 느꼈던 감정이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크게 겪는 혼란은 바로 역할의 변화이다. 주체로서의 이름이 사라지고 새 생명의 어머니로서만 인식되는 세상에서 여성이 경험해야 하는 혼란은 당사자가 아니면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엄마가 된다는 것, 새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과정은 무척이나 고귀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성이 느끼는 감정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로 퉁치며,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모체의 과정이란 본디 그런 것이라며 두려움과 공포를 억압하곤 한다. 이것을 소설 속 김지영은 종교처럼 믿으라 종용한다고 표현했다.

최근 비혼, 딩크족 등 출산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생물학적 여성으로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기회보다는 사회적 여성으로서 자신의 커리어와 역할에 더욱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 배경에는 소설 속 김지영씨처럼, 새 생명의 탄생과 동시에 그동안 쌓았던 사회적 자원을 모두 잃게 되는 원인도 일조한다.

물론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노동력의 상실과 개인적 자원의 붕괴 때문에 여성정책 대부분이 모성에 집중된 것은 사실이다. 당연히 필요하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역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여성의 역할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기에 임산부 주차장, 여성 휴게실, 임산부 배려석 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져보면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곤 하지만, 절반 정도는 새 생명을 안전하게 탄생시키기 위한 사회적 배려일 뿐 온전히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고 하기에는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장애 여성들은 어떨까. 다소 복잡하지만 장애 여성에 대한 인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사회가 요구하는 미(美)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이라기보다는 무성적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이다.

이들은 언제나 아이와 같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만 각인되어 있다. 다른 시각은 생물학적 기능을 다 한 경우이다. 즉, 출산과 양육의 과정을 거쳐 엄마가 되었을 때 비로고 장애 여성들은 여성으로서 인정을 받는다.

성범죄 등 범죄와 안전에 더욱 취약하기 때문에 장애 여성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해도 사회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유일하게 장애 여성을 여성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바로 ‘모성’을 선택할 때이다. 대부분의 장애 여성 정책과 지원은 ‘엄마’를 기준으로 한다. 물론 필요하다. 더 많이 필요하고 더 많은 제도적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엄마라는 타이틀이 없는 장애 여성에게는 그 어떤 정책도 지원도 없다. 10여년 전 필자가 살던 경상남도 창원시에는 ‘여성장애인의 사회참여 향상을 위한 운전면허 취득 지원 사업’이 있었다.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사회참여에 필요한 이동력 향상의 기회를 여성들에게 조금 먼저 주는 것이었다. 이런 것이 ‘엄마’가 아닌 장애 여성을 위한 정책이다. 엄마라는 조건 없이 장애인이자 여성이기만 하면 되니까.

임신, 출산, 양육을 제외한 장애 여성의 건강 지원 확장도 필요하다. 최근 청소년들에게 접종되는 자궁경부암 주사를 장애 청소년이 맞아도 되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자신의 장애와 신체적 특성이 반영된 성교육은 받을 기회조차 없다. 여성관련 질환은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 자라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있다. 미혼의 여성이 산부인과에 가는 것을 터부시하기 때문에 당당하게 병원을 가지도 못한다. 당당하게 병원을 가더라도 장애 여성을 이해하는 전문의는 드물다.

‘엄마’라는 조건부 정책이 장애 여성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한다. 엄마를 위한 정책이 우선되어야 할 필요는 있다. 장애 여성 모두가 엄마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엄마를 위한 정책이 장애 여성 정책의 전부라고 말 할 수 없다. 엄마의 정책이 아닌 실질적인 제도의 확대를 위해서는 장애 여성을 ‘여성’으로 보는 관점의 탐색과 확장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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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윤 칼럼리스트 KBS 최초 여성장애인 앵커로 활동했으며, 2016년 장애인 여행 에세이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를 출간하여 장애인 관광에 대한 대중 인식 변화를 이끌었고 현재 장애인을 비롯한 ‘모두를 위한 관광(Tourism for All)’ 발전을 위해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장애인은 왜 트렌드세터(Trend Setter: 유행 선도자)나 힙스터(Hipster: 유행을 쫓는 자)가 될 수 없는지 그 궁금증에서 출발해, 장애 당사자로서 장애 청년 세대의 라이프와 문화에 새로운 인식과 변화를 재조명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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