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봄꽃이 만발하고 집배원들이 부지런히 청첩장을 배달해오는 결혼의 계절이다. 예부터 결혼은 인륜지대사라 하여 가정의 잔치 중에 가장 크고 성스러운 경사로 여겨왔다. 잘 키우고 잘 가르쳐서 보내고 맞이하며 서로 다른 가문끼리 사돈으로 맺어져서 새 생명도 탄생시키는 그 풍습이 경의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주말마다 예식장 주변이 자동차로 혼잡하고 공항 출국장에서 펼쳐지는 재미난 축하 이벤트를 보면 마음이 흐뭇하면서도 살짝 샘이 나기도 한다.

머리 희끗희끗한 내가 지난 주 토요일 오후에 늦장가 가는 시각장애인 친구 결혼식 사회를 봤다.

지금까지는 직장에서 함께 일해 온 여덟 명의 직원들을 위해 주례를 선 적은 있지만, 나이 오십 중반에 결혼식 사회자로 초청되어 마이크를 잡으니 색다른 느낌이 들기도 했고, 마치 혼인 적령기에 접어든 총각이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예식 전에 진행 순서를 논의하기 위해 웨딩 매니저와 내가 처음 인사를 나누었는데, "혹시 신부 아버님 되시나요?"라고 그가 내게 묻는 바람에 모든 환상이 순식간에 훅하고 증발해 버렸다.

늦장가 가는 시각장애인 결혼식. ⓒ유석영

장애인의 결혼은 자립의 요소 가운데 가장 높은 장벽 중 하나이다. 직업을 갖는 일과 지역 사회에서 주권을 회복하는 일도 절대 쉽지는 않지만, 결혼에 대한 문제는 진입장벽부터 높고 욕구에 비해 성취율이 매우 낮은 손톱 밑 가시와 같은 현실이다.

많은 단체나 개인이 장애인의 결혼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계획하고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단발성 행사와 일시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작게라도 가시적인 효과가 없었다 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도 장애인의 결혼에 대한 과제는 우리 실천 현장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지닌 큰 숙제이기도 하다.

오늘 필자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이 아름다운 계절에 술렁대는 결혼식장을 다녀와서 마음을 교차하는 여러 생각들을 글로 이어볼까 한다.

법적 제도적인 부분을 들먹이지 않을 것이며, 수치나 통계 따위를 운운하지 않고 순전히 필자 본인의 생각을 열거해 보고자 한다.

늦장가 가는 시각장애인 결혼식 사회를 보고 있는 내 모습. ⓒ유석영

지금도 나는 간헐적으로 작고하신 어머니의 한숨소리를 듣는다. 내 나이 이십 중반을 넘어 설 즈음에 한동네 사는 나의 친구들이 명절 때 사귀는 여자친구를 데려오면 무척 부러워하셨다. 당신 자식이 장애를 가졌기에 결혼은 불가능하다는 부정적 관념 때문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마치 중죄인이 된 기분이었고, 어머니의 한숨소리는 밤공기를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언제나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셨고 조그만 일도 크게 자랑하기를 좋아하셨던 분이기에.

그 후 몇 년이 흘러 내가 결혼을 하게 되고 사회활동을 넓게 하면서 어머니의 어깨에는 힘이 들어갔고 목소리도 한층 커졌다.

나는 크게 효도했다는 자신감과 나름의 성취감으로 좀 더 당당하게 삶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 동력은 뭐니 뭐니 해도 결혼에 성공하여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렸다는 점이라는 강한 신념을 나는 가지고 있다.

삼십 년 세월 동안 라디오 방송이나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수많은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만나왔는데, 일반적인 내용은 예측이나 방향설정이 어느 정도 가능하나 결혼의 욕구와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부분에서는 원론적인 내용과 형식적인 논의 정도에 그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이라는 장르는 상대가 있어야 하고 환경과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당사자들끼리도 궁합이 맞아야 하지만, 양가의 이해와 허락이 있을 때에 혼인이 성사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당사자들의 의지와 집념에 의해 어지간한 장벽과 형식을 뛰어넘는 경우도 있고, 색다른 풍습이나 방법으로 결혼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요즘도 우리 사회는 장애인의 결혼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다. 속 뜻이나 사연에 관계없이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사례도 많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기 자식이 좀 더 풍요롭고 안정적인 상대에게 혼인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우선 눈에 보이는 장애와 생활 조건이 첫 번째 걸림돌이 될 것이고 경제활동이 불안정한 상황도 큰 저해 요인으로 대두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들이 결혼상대자 선택의 폭을 편협하게 갖는 경우가 많아지고 장애 당사자들끼리 상호 결혼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나게 된다.

오늘 필자는 약간의 욕심을 가져 본다.

혼인 적령기에 도달한 장애인 모두에게 꿈을 크게 갖고 시야를 넓힌 후 용기를 더해 구체적으로 배우자를 얻는 일에 나서 보았으면 한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어디엔가 궁합도 맞고 사랑을 흠뻑 나눌 배필이 숨어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 적극적으로 도전해 주기를 선배로서 당부 드리는 바이다.

세상의 자식을 둔 부모들에게는, 장애인도 내 며느리, 내 사위가 될 수 있다는 포용력을 발휘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자녀들이 진정으로 혼인 상대자를 사랑하고 있다면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이해의 폭도 넓히고 장애로 인해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은 환경을 개선하여 행복하게 가정을 꾸려가도록 지지해 주기를 당부해 본다.

이제 우리 사회도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반드시 결혼이라는 장르를 포함하여 미래를 함께 설계해 주기를 촉구해 본다.

정책이나 제도 그리고 돈에 관한 상투적인 핑계로 비켜서지 말고, 장애인의 결혼이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따뜻하게 가슴을 열어 주기를 주문해 본다.

부디 올봄에는 만발한 저 꽃들만큼 장애인의 결혼 소식이 활짝 피어나기를 마음으로 빌어 보며, 오늘 필자가 열거한 이 글이 단순한 억지로 비춰지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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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영 칼럼니스트
사회적협동조합 구두만드는풍경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장애인복지 향상, 선한 가치의 창출과 나눔을 이념으로 청각장애인들이 가진 고도의 집중력과 세밀한 손작업 능력을 바탕으로 질좋은 맞춤형 수제 구두를 생산하며, 장애 특성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여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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