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에이블뉴스 독자 여러분께 오랜 시간 동안 소식을 통 전하지 못했던 데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구 반대편 영국에서 새롭게 둥지를 틀고 생활하면서 책임감 있게 이 곳의 여러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는데, 꾸준하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럼, 할 얘기가 산더미같이 쌓였으니 얘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나가 보기로 할까요.

저희 가족이 이 곳에 정착한 지 벌써 일년하고도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주언이는 학교에 나가게 되었고, 고정적으로 재활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재활 ’치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한국과는 확연하게 다른 ‘치료’의 개념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물리치료사의 역할 자체가 다른데요, 저희가 기대했던 것은 한국에서처럼 아이의 몸을 직접 만져주면서 불편한 곳을 개선해주는, 말 그대로 ‘치료’였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도대체 언제쯤 치료 스케줄을 잡아줄 지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얘기가 없더군요. 시간이 지나면서 지켜보니까 물리치료사의 역할 자체가 한국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만난 물리치료사는 의사와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리즈시의 NHS Leeds Community Healthcare라는 곳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보호자인 저와 일대일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주로 이메일을 이용하여 얘기를 나누고, 필요한 경우 집에 직접 방문해서 점검해 주거나 추가적인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또한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아이의 보조선생님을 교육하고 학교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점검한 후에 보호자인 저에게 방문했던 결과를 알려줍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가장 다른 부분은 아이의 몸을 직접 만져주는 직접 치료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지금 상태에서 활용할 수 있는 대안적인 치료, 가령, 물을 이용한 수치료(Aquatic Therapy), 트렘폴린을 이용한 치료(Rebound Therapy), 재활승마(donkey Riding) 등을 소개해주거나 일정을 어레인지 해주고, 이 가운데 수치료와 트렘폴린 치료는 직접 진행해 주었습니다.

또한 휠체어나 발목보조기(Splinter), 기립자세보조기(Standing Frame), 보행보조기(Walking Frame) 등을 맞출 때 동석해서 관련 전문가와 우리를 대신해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해주거나 완성된 다음에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또 불편한 것은 없는지 집으로 방문해서 점검을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주언이의 물리치료사 헬렌. ⓒ이은희

무엇보다 부모와 지속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원하는 치료방향을 조정해 나간다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근처 레저센터에서 장애아이를 위한 Gym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서 등록을 하고 갔었는데, 그 곳의 코치와 함께 아이의 운동방향에 대해 얘기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척수손상의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 코치와 물리치료사는 아이가 보다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상체의 힘을 더 키우는 운동을 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이것이 이곳의 전반적인 재활치료철학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의 하체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하체를 강화시키는 운동이 필요하며, 이미 아이의 상체는 과사용되어 매번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하였지요.

물리치료사가 무척 신중하게 듣더니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며 향후 치료계획에 포함시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발목 뿐 아니라 허벅지까지 지지해줄 수 있는 보조기를 맞추기 위해 전문가를 만났고, 이제 그 보조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이 곳의 재활치료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처음에는 속도 많이 탔고, 정착 초기에는 과연 이런 기계에 의존하는 치료들이 주언이의 상태를 호전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의구심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년이 넘은 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아이의 상태에 퇴보는 없는 걸로 보입니다. 이 곳에서 사용했던 기립보조기나 승마, 수치료의 긍적적인 효과도 있었을 테고, 아빠가 틈날 때마다 아이의 다리를 만져주었던 사랑의 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일곱달전 보조기에 세웠을 때 이렇게 들떴던 발뒤꿈치가 이제는 뜨지 않고 바른 자세로 설수 있게 되었다. ⓒ이은희

당초 이 곳에 정착하기 전에 주언이의 상태가 퇴보라고 판단되면, 그리고 아이의 치료에 대한 서포트가 적절하게 되지 않는다면 주저없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계획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런 극단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정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치료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학교생활을 너무나 즐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다음번 편지에서는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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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칼럼리스트
주언이가 보통 아이처럼 건강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의 여러 구석들과 만나면서 아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얻은 엄마 이은희.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 영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좌충우돌 일상사를, 영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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