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처음으로 GP를 만났던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GP는 영국의 국가의료시스템인 NHS에 소속된 의사들로, 전문의는 아니고,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보건소랑 비슷한 동네병원에 소속된 의사입니다.

영국에서는 몸이 아프면 우선 GP를 만납니다. GP가 상태를 판단한 후 심할 경우에는 큰 병원으로,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간단히 처방을 해주거나 그냥 쉬라고 권고해준다고 합니다. 동네마다 GP가 상당히 많지만 그래도 예약은 필수, 대기는 기본이지요! 아, 모든 치료비와 치료약의 비용은 무료입니다.

우리가 GP를 만나러 간 것은 누군가 몸이 아파서 간 것이 아니라 바로 주언이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주언군의 물리치료가 어떻게 될 것인지 얘기를 나누어야 했지요. 우리가 만난 GP는 나이가 지긋한 영국인 여자분이었습니다.

아빠와 걷기연습 중인 주언이. ⓒ이은희

GP를 만난 첫 소감은 베리 굿!!! 주언군을 평가할 수 있는 재활분야의 전문의는 아니지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정말 친절하고 마음 깊이 주언군의 상태를 걱정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속은 들여다볼 수 없지만, 적어도 표정은 그랬지요. 일단 그간의 병력과 장애의 원인과 한국에서 받은 진단, 현재 아이의 지적/신체적 상태, 영어 의사소통 등에 대해 상당히 오랜 시간 자세히 얘기를 나눈 후에 집의 환경이나 주변 환경이 휠체어로 생활하는 거 불편하지 않은지, 심지어 가족의 영국생활에 부분까지 소상히 묻더군요.

그리고는, 더 큰 병원의 어린이발달센터(children development center)에 바로 팩스를 보내줄 테니 거기에서 연락이 오면, 주언이의 상태에 대해 평가 받고 향후의 치료에 대해 얘기를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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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장애인차량스티커(여기서는 ‘블루뱃지’라고 부릅니다)를 발급받기 위해서 서류를 발급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자리에서 직접 손으로 작성해서 바로 주더군요.

아시다시피 한국 의사 분들은 친절하신 분들 많지만 그 자리에서 뭐 잘 안 해주십니다. 아시아에서 온 이방인에게 자신들의 사회시스템을 주저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이것은 도대체 뭘까 한참 생각했을 정도였지요.

다리쪽으로의 혈액순환이 원활치 않은 주언이에게 족욕은 좋은 요법인듯. 족욕후에는 놀랍게 따뜻해진 체온을 확인할 수 있다. 사이좋게 족욕중인 아이들. ⓒ이은희

영국에 도착한 이후, 우리의 결정에 대해 단 하루도 조바심내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첫 관문은 가볍고 편하게 통과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의사를 처음 만나는 데까지 걸리는 소요시간에 대해서는 많이들 우려하는 바대로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NHS에 등록되는데 4~5일, GP와 예약해서 만날 때까지 4~5일. 모두 합쳐 10일 정도 걸린 셈이네요.

전문의를 만나서 재활치료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를 나눌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얼만큼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낯설은 곳에 새롭게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데 있어 익숙해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감안한다면 그 정도의 기다림은 감내해야 할 몫이 아닌가 합니다.

영국으로 떠나오면서, 만약 우리가 계획한 시간보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갈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아이의 재활치료가 예상과 달리 제대로 세팅되지 않는 일이 될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었습니다.

이제 겨우 한발을 내딛었을 뿐인데, 마치 9부 능선에 다다른 것처럼 뿌듯한 이 느낌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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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칼럼리스트
주언이가 보통 아이처럼 건강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의 여러 구석들과 만나면서 아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얻은 엄마 이은희.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 영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좌충우돌 일상사를, 영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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