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고단한 일정으로 여행을 하고 집 밖에서 잠을 자는 것은 어지간한 마음을 먹지 않고선 결행하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기 ‘딱’이거니와 운이 나쁘면 돌아와 아이들이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밤에 유난히 별스러운 우리 아이들은 어딜 가나 말 그대로 ‘민폐’였다. 자기 전에도 편치 않은 잠자리 때문에 한바탕 울어 제끼고, 자다가 일어나서도 얼마나 울며 보채는지. 심지어 자기 베개를 내놓으라고까지 하며… 그래서 한동안 우리 가족의 여행 짐 꾸러미 목록에는 아이들의 베개가 꼭 들어 있었다.

지난주말, 가깝게 지내는 친구의 가족들과 캠핑을 다녀왔다. 요즘 가족여행의 키워드는 캠핑이라지만, 우리 가족은 언감생심 꿈도 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잠자리에 유난히 예민한 아이들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잠자리 유난함도 좀 덜해지고 해서 ‘에라, 잠 못 자면 그냥 하늘의 별보며 하룻밤 꼴딱 새우면 되지’ 하는 기분으로 계획을 해보았다. 남편한테 이삿짐 싸느냐는 핀잔을 듣긴 했지만 짐을 꾸리며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했던 캠핑 생각도 나고 나한테도 간만에 꽤 흥분되는 여행계획이었다.

캠핑의자에 앉아 즐거워하는 주언이. ⓒ이은희

아이들은 커다란 짐가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다. 짐 꾸리느라 한창 분주한데 옆에서 주언이가 “엄마, 베개도 가져가요?”라고 슬그머니 묻는다.

“응, 텐트는 비좁아서 베개를 따로 사용하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이제 주언이 여섯 살 됐으니까 안 가져가도 되겠지?”라고 대답은 했지만 아이가 무사히 잘 자줄지 속으론 걱정이었다.

출발 당일, 동생 선유의 감기 기운이 염려스러웠다. 2년 전 제주 여행 때 비슷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발했는데, 생각보다 바람이 너무 거세 감기가 더 심해지고 돌아온 뒤 결국은 열흘이나 병원신세를 져야했던 주언이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이런 일에는 워낙 익숙해진 터라 상비약을 두둑히 챙겨 근처 캠핑장으로 떠났다.

캠핑에 도착하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요즘 휠체어 타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주언군은 휠체어를 타고 아빠와 함께 캠핑장 근처 바닷가에도 가고, 이곳 저곳 탐색하느라 정신이 없다.

캠핑장 내에 있는 수영장에서 우중(雨中) 물놀이를 아쉬우나마 신나게 하고 야외 취침의 백미라 하는 바비큐도 하고 아이들의 재롱잔치, 장기자랑도 배꼽을 쥐며 구경하였더니 어느새 취침시간.

좁은 잠자리를 정돈하고 아이들을 재우는데, 왠걸, 아이들이 예상밖에 너무나 쉽게 잠들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자다가 몇 차례씩 꼭 깨는 아이들이 신기하게도 아침까지 잘 자고 일어났다. 제 베개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제야 비로소 더 이상 여행 짐 꾸러미에 베개는 안 챙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핑장 내의 수영장에서. ⓒ이은희

아이를 키우다 보면 ‘시간의 힘’에 대해 가끔 놀랄 때가 있다. 비단 아이를 키울 때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은 조바심이 나고 조급증 때문에 못 견딜 것 같은 그런 일들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신기하게도 아무렇지 않은 듯 좋아져 있기도 하다.

‘시간이 약’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지금 당장은 아이들 때문에 행동의 제약도 많고 적잖이 불편한 것도 있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그것을 보상받을 수 있을 때가 다가오리라.

베개까지 챙겨서 여행을 떠나야했던 우리 가족이 무난하게 야외취침까지도 해낼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위대한 시간의 힘을 결단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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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칼럼리스트
주언이가 보통 아이처럼 건강했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회의 여러 구석들과 만나면서 아이 덕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얻은 엄마 이은희. 가족들과 함께 낯선 땅 영국에서 제3의 인생을 펼쳐가고 있는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좌충우돌 일상사를, 영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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