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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길옆 간이찻집
카테고리 : 여행정보,맛집 | 조회수 : 30572009-05-18 오전 7:21:00
지리산길을 따라 고개를 넘고 숲길을 지나던 중이었습니다. 매동마을에서 시작된 고개를 넘어와 제법 목이 칼칼해질 무렵, 중황마을로 내려서는 초입에서 간이 휴게소를 만났습니다. 다랑이논 한 귀퉁이에 의자 몇 개 가져다 놓고 평상을 깔아놓은 간이 판매대입니다. 쑥스러운 미소로 맞는 할머니께 마을 이야기나 좀 듣고자 커피 한 잔을 청했습니다.

논이 참 예쁘다고 건넨 말에 할머니는 "저 위쪽에도 논들이 있었는데 한 2년 쉬니 금세 숲이 되부러. 숲이 시나브로 내려오더라구" 하십니다.

가야 할 길이 멀어서 일어나 값을 치르려니 그냥 가라십니다. "뭐 많이 시켰어야 돈을 받지 달랑 커피 한 잔 값을 어떻게 받느냐"는 할머니는 소쿠리에 있던 호두 한 움큼을 주머니에 넣어주시기까지 하네요.

할머니와 멀찍한 테이블에 돈을 접어 올려 놓고 "다음엔 막걸리와 파전을 푸짐하게 사드릴게요" 하고 도망치듯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냥 가라니까"는 할머니 목소리가 어찌 그리도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놓던지요. 봄볕에 댈 게 아니었습니다.

상황마을을 지나 등구재를 넘자 지리산길 탐방객을 상대로 한 또 다른 가게가 보였습니다. 원두막 같은 건물의 허름한 좌판입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엔 큰 고무대야 안에 맥주와 음료수 등이 물에 가득 차있었고, 알아서 커피를 타 먹을 수 있도록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전자, 봉지 커피 등이 준비돼 있었습니다.

기둥에 박혀 있는 메뉴판엔 가격과 함께 이런 글귀가 적혀 있네요. '잡수시고 돈은 여기에.' 탐방객을 믿고 파는 무인 좌판입니다. 정겨운 풍경 속의 지리산길에서 지리산만큼이나 후덕한 인심과 믿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리산길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마을 입구엔 이러한 작은 가게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습니다. 무인 가게 평상에 앉아 땀이 식어갈 무렵 나중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이곳에도 여느 관광지 같은 풍경이 재연되는 건 아닐까 하고요. 가짜 꿀이 토종 꿀로 둔갑하고, 수입농산물이 방금 산과 밭에서 캐온 양 좌판에 올려지지나 않을지. 돈 몇 푼 때문에 동네분들끼리 분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제 걱정이 제발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굽어 살펴달라고 지리산 산신께 빌고 또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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