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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도 태평양전쟁에서 성 계약은 국제협약을 위반했던 것이다.
카테고리 : 밝은 세상을 위해 | 조회수 : 2532021-03-06 오전 1:16:00

당시에도 태평양전쟁에서 성 계약은 국제협약을 위반했던 것이다.

 

강민호

 

한 달 씀 전에 미국 하버드의 존 마크 램지어 교수가 태평양전쟁에서 성 계약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램지어 교수는 이 논문에서 일본군 위안부들은 합법적으로 계약했던 자발적인 매춘부들이었다고 주장했다.

 

램지어교수가의 태평화전쟁에서 성 계약이란 논문이 발표하자마자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이구동성으로 학자들이 비판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는 UN에서도 이미 일본군 일본의 전쟁 성 범죄로 정의 내렸다.

그런데 램지어교수는 일본군 위안부가 오래 전부터 군인들을 따라 다녔던 매춘부들과 같다고 논문에서 주장했다. 일본군 위안부는 당시 일본의 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계약을 채결했다는 주장도 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자들은 램지어교수가 당시 일본의 범에 따라 계약을 채결했다는 증거을 재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램지어교수는 논문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했던 오사키이란 10세 소녀의 증언으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권익있는 학자들은 램지어교수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오사키의 증언을 편집했다고 입을 모아 비판하고 있다.

그런식으로 서술한 램지어교수의 이번
논문은 F 학점 받을 수밖에 없는 리포트와 같다는 것이 학자들이 말하는 중론이다. 최근에는 램지어교수가 과거에 발표했던 논문들에 대해서도 비판이 일어났고 있으니, 램지어교수는 태평양전쟁에서 성 계약이란 논문으로  잘못하면 학자의 권위마저도 잃게 되는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램지어교수가 그런 위기에 봉착한 이유는 나와 같은 열치기 역사학자도 알고 있는 사실들을 무시하고 증거도 없는 사실들로 논문을 썼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들이 합법적으로 계약했던 매춘부들이었다고 해도 당시에도 국제협약을 위반했던 것이다. 19세기 들어오면서 세계적으로 공창제가 패지 되었다. 1921년에는 아동 및 부녀자 매매금지국제협약이 채결 되었다.

 

이 협약에는 본인의 동의가 있어도 부녀자들 및 아동들을 성 매매하는 자체가 불법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이것을 생각하면 일본군 위안부들이 당시 일본 국내법으로는 합법적인 계약했다고 해도 국제협약을 위반했던 것이 명백하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1896년에 이미 공창제를 패지 했기 때문에 합법적인 계약했던 자발적인 매춘부가 일본군 위안부이었다는 램지어교수의 주장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주장이었다. 당시에 일본 범에는 요리집 작부에 관한 법이 있었지만 요리집 작분은 지금에 식당에서 서빙 하는 여직원들이고 성을 매매하는 매춘부와는 아무관련이 없다.

 

따라서 일본정부가 위안부들을 모집하고 계약하고 병사들 상대로 매춘행위를 허용했던 것이 불법이었다. 일본정부가 이 같은 불법은 허용 할 수박에 없었던 것은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피로도와 불만이 쌓여갔던 병사들을 위한 복지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중국본토를 침공한 이후로 전선이 확대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본 병사들의 피로도가 가중되고 불만이 쌓여갔다. 개다가 연합군대에 있었던 병사들을 위한 오락시간과 휴가제도도 일본군대에는 없었다.

상하이침공(1931년) 이후에 일본 병사들이아무 여자들을 겁탈하는 과정에서 일본군대에서 성병이 소출하였다. 일본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 대만 접점지에서 여자들을 강재연행하거나 거지말로 꾀어서 전쟁터로 데러 가거나 또는 여자포로들로 위안부들로 삼았던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가 강재연행을 당한 여자들이란 것을 증명하는 사례는 이영훈씨 같은 학자들이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적인 매춘부들이고 주장 할 때 제일 많이 말하고 있는 문옥주할머니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영훈씨 같은 학자들은 문옥주할머니가 어머니와 오빠의 의해서 일본군에게 팔려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일본 군인들과 파티를 즐기면서 즐겁게 위안부 생활했고 말하고 있다. 어머니에게 500엔 보냈다고 하면서 위안부 생활을 하면서 문옥주할머니가 큰돈 벌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자료들만 조금만 살펴보면 거짓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사례집에 있는 문옥주할머니 사례를 보면, 할머니의
집안이 가난해서 기생이 되려는 문옥주할머니를 매질하면서 말렸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 집에 놀러갔다 온다가 일본군에게 연행되어 갔다는 문옥주할머니의 증언과 그것을 뒤 받침하는 네모토 중장의 증언도 있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이 괴로워서 위안소 2층에서 몸을 던져 자살시도도 했고, 위안부 생활하면서 벌렸다는 큰 돈도 저금했던 일본은행에서 인출해주지 않아서 마져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이것은 문옥주할머니만 아니라 적게는 5만영에서 많게는 20만 명의 어려나라 출신의 일본군 위안부들의 공통된 삶의 모습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런 일본군 위안부들의 억을함을 밝히는 연구하고 있다. 그것이 학자으로서 마땅하게 해야 되는 책무이다. 그런 책무를 버렸기 때문에 램지어교수는 권위를 잃어버린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