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은 공짜였어요.”

함께 입원해 있던 라이트하우스 원생들도 물론 다 공짜였다. 그 때는 방학이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맹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도 엄마 손잡고 하얀 손수건이 붙은 이름표를 달고 초등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칠판글씨도 보이지 않았고 병원을 다니느라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김영희 씨(왼쪽) 재활교육 수료식. ⓒ이복남

그런데 다른 아이들을 보자 눈이 보이지 않아도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것이 놀랍고도 신기했다. 어떻게 학교를 다니느냐고 했더니 라이트하우스에 산다고 했다.

“엄마! 나도 학교에 다니고 싶으니 라이트하우스에 넣어 주세요.”

엄마는 안 된다고 했다. 라이트하우스는 부모 없는 고아들이 가는 곳인데 그는 고아가 아니라서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나를 버리세요!”

그는 울고불고 소리쳤지만 어머니는 그를 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때는 엄마가 계모 같고 너무 미웠습니다.”

감싸 준다고 다 사랑이 아닌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때 맹학교에 다니게 해 주든지, 라이트하우스에 넣어 주었던들……. 어른이 되면서 엄마에 대한 미움은 오래전에 가셨지만 아무튼 엄마로 인해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라이트하우스는 시각장애인들의 생활시설인데 그 무렵에는 부산맹학교의 기숙사 역할을 하고 있어서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라이트하우스에 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그를 라이트하우스에는 보낼 수 없다했고 그렇다고 아이를 맹학교에도 보내지도 않았던 것이다.

“집에서 살림만 했지요. 웬만한 음식은 다 할 줄 알고 만두도 잘 만들고 지금도 칼질은 잘 합니다.”

집안에서 인형 만들기 등의 부업도 하고 가끔씩 일이 생기면 나가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러면서도 안과는 수시로 다녀야 했으니 눈은 조금씩 더 나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오빠 친구였던 윤00 씨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보다는 7살이 많았다. 그는 심사숙고 했다. 눈도 나쁘고 학교도 못 다녔는데 언감생심 결혼이 가당키나 하겠느냐. 그러나 윤 씨는 그야말로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했고 첫딸을 낳았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엽고 앙증맞은 딸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술버릇이 좋지 않았다. 딸이 커 갈수록 그의 눈은 점점 더 나빠졌는데 남편은 직장도 그만두고 술버릇은 더욱 더 괴팍해졌다. 그는 결혼 할 때와 딴판인 남편에게 진저리가 났다.

동화구연하는 김영희 씨(뒷줄 가운데). ⓒ이복남

그러던 차에 병원에서는 망막박리라고 했다. 의사는 당장 입원해서 수술 날짜를 잡자고 했다. 이왕 앞을 못 볼 바에 수술은 해서 뭐하겠는가. 그는 싫다고 했지만 의사는 그래도 수술을 고집했다. 하는 수 없이 수술 날짜를 잡고 돌아오는데 수도꼭지가 터진 것 같았다.

“어쩜 그렇게도 눈물이 흐르든지……. 그날 집에 와서는 술을 엄청 마셔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수술은 했지만 여전히 앞은 안보였다. 한 가닥 위안이라면 그래도 안구가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딸은 커 가는데 남편은 이혼도 안된다하고 눈까지 보이지 않다니……. 그는 죽고 싶었다. 그가 갈 길은 죽음 밖에 없는 것 같았다. 혼자서는 바깥을 나다니지도 못했고 하루 종일 방안에서 죽을 방법만 생각했다.

“우리는 이층에 살고 있었는데 창문에서 뛰어 내리려고 했습니다.”

가을이었다. 창문을 여니 가을바람에 낙엽이 흩날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부터 찾을 텐데……. 그 딸에게 엄마의 주검을 어떻게 보이겠는가. 차마 딸을 엄마 없는 아이로 만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이층에서 뛰어 내리면 죽지도 못하고 오히려 다리병신만 될 것 같았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렸고 그의 자살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혼자 방안에만 있으니까 우울증이 와서 정말 사는 게 아니었다. 문득 어린 날 수술하고 누워있던 적십자병원이 생각났다. 그 때 적십자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이들이 녹음 도서를 들었던 것 같았다. 그도 책은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114를 통해 시각장애인연합회를 찾았다.<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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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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