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 심장장애가 있는 박모(28)씨는 살아가면서 10년에 한번 꼴로 대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증환자다. 이미 한번에 15시간이 소요되는 수술을 네 번이나 받았고, 완치가 어려워 수시로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 그래서 2006년 심장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이후 재심사에서 다시 3급 판정을 받아 살아왔다.

하지만 올해 다시 받은 재심사에서는 심장장애가 아니라는 ‘등급외’ 판정을 받았다. 최근 6개월 이내 입원병력(10점)과 입원횟수(5점)가 없어 두 기준 점수(15점)에서 0점을 받은 영향으로 등급 기준 점수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나 같은 경우 진료는 수시로 하지만 입원을 하진 않는다. 입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심장이 정상으로 돌아간 건 아니지 않냐”며 “입원 기록 점수를 세게 해서 등급외 판정을 주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박씨와 마찬가지로 선천성 심장기형인 이모(41)씨도 입원병력이 없다는 이유로 심장장애 1급에서 심장장애 3급으로 하락했다.

어릴 적 수술시기를 놓쳐 조금만 활동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이씨는 이미 ‘심장이식밖엔 답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3년 전부터는 심장 무리가 오면 마비는 물론 피마저 굳게 한다고 해, 약도 수시로 복용 중이다.

그는 심장 상태가 심각한데도 오는 10월 도래하는 재심사가 두려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혹시나 입원병력이 없다는 이유가 심장장애 등급외 판정을 야기할까봐서다. 이미 입원 관련 점수로 인해 등급이 떨어진 경험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은 더욱 크다.

이씨는 “약타고 검사받으러 병원가고 가끔 응급실에 실려 가긴 하지만, 최근 입원할 일은 없었다”며 “난 뛰지도 일하지도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다. 등급은 이미 하락됐지만, 등급외 판정까지 나오게 되면 이건 정말 말도 안 될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심장장애인 대부분이 지속적인 치료를 받으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심장장애 판정기준에는 입원 관련 항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등급에서 하락하거나 등급외 판정을 받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 더 나아가 판정기준이 심장장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불신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바른 장애등록체계 구축을 위한 체계적이고 공정한 장애등급 심사를 진행하기 위해 국민연금공단에 장애등급심사 업무를 맡겨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15개 장애유형은 각 유형별 필요 서류를 통해 심사되고 각 장애 판정기준에 따라 장애등급이 매겨진다. 장애판정기준은 각 장애 특징을 감안한 항목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심장장애 판정기준은 심장장애인의 현실 및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장장애 등급판정기준. ⓒ복지부 자료

심장장애는 1년 이상의 성실하고 지속적인 치료 후에도 호전의 기미가 거의 없을 정도로 장애가 고착됐을 경우 장애를 진단하고 있다. 또한 의료적 여건 및 치료 등에 의해 장애상태 변화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2년마다 등급 재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심장장애 질환의 정도와 질환으로 인한 능력 장애의 정도는 총 7가지의 임상소견과 검사결과 등에 의해 진단된다. 심장장애 1급은 총 42점 중 30점 이상, 2급은 25~29점, 3급은 20~24점을 받아야 하며, 5급은 심장이식자가 해당된다.

7가지 항목은 △운동부하검사 또는 심장질환증상중등도(5점) △심초음파 또는 핵의학검사상 좌심실구혈율(5점) △검사소견(10점) △심장수술 및 중재시술 병력(5점) △입원병력(10점) △입원횟수(5점) △치료병력(2점)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심장애인들의 불안의 원천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입원병력 및 입원횟수 항목(최근 6개월 이내)이다. 심장장애는 만성질환인 경우가 많아 통원치료 및 약물치료를 받는 게 대다수임에도 입원 항목 점수가 총 15점으로 높아 실제 높은 점수를 받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 판정기준에는 ‘적극적인 통원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악화돼 입원한 경우에 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6개월 이내 입원하지 않은 심장장애인들은 최고 27점 밖에 받지 못해 등급이 아무리 잘 나온다고 해도 2급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더욱이 입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입원하지 못한 경우에도 어쩔 수 없이 입원 점수를 포기해야 한다.

부산심장장애인협회 송순조 사무처장은 “심장장애는 만성질환이고 죽을 때까지 지속되기 때문에 약을 복용하고 환경을 조심하면서 주의해야 하는 장애”라고 설명한 뒤 “그렇기 때문에 심장장애인이 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은 의식을 잃고 실려 가는 위급상황이다. 근데(입원 관련 항목 점수를 높게 배정한 것은) 위급상황일 때 즉, 죽어가야지만 심장장애 등급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송 사무처장은 입원 관련 항목 외에도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치료병력(최근 6개월 이내) 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송 사무처장은 “심장장애인들은 지속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 통원치료를 받으러 간다. 그럼에도 정작 심장을 관리하는 치료 병력 점수는 1점, 2점밖에 안주고 있다”며 “판정기준은 결국 심장장애인들의 등급 하락 등을 발생시키고 있으며, 심장장애인 인구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지난 7월 심장장애 판정기준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권익위는 심장장애판정기준이 잘못돼 심장장애 등급외 판정을 받았다는 권혁선(53)씨의 민원에 대해 “신청인의 심장기능장애가 지속돼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어려운데도 등급외로 판정한 것은 부당하니 재심사하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공개적으로 심장장애 판정기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

이 같은 문제 제기들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민원이 많았던 부분을 감안, 심장질환 전문가와 얘기해서 항목의 점수를 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또한 “입원 병력과 횟수 점수가 너무 컸기 때문에 이 점수를 낮추고, 다른 항목 점수를 올릴 생각이다. 항목 총점의 변화는 없지만 치료병력 점수는 2점에서 3점으로 올리는 등 항목 점수를 조정할 계획을 갖고 안을 마련 중에 있다”며 “올해 안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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