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신부가 만든 비인간동물과 지적장애인 지능 비교표, 이를 알게 된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공분했다. ⓒ알 TV 유투브 캡처
이기수 신부가 만든 비인간동물과 지적장애인 지능 비교표, 이를 알게 된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공분했다. ⓒ알 TV 유투브 캡처

얼마 전 탈시설을 반대하던 천주교 신부가 지적장애인과 동물의 지능을 비교하면서 지능이 상당히 낮은 사람은 자립할 수 없다는 식의 망언을 했다. 이는 능력주의로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이며, 탈시설과 관련해 자립생활 능력 평가가 아닌 개인별 요구사항 및 지역사회 내 자립생활 장벽 평가로 바뀌어야 한다는 유엔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정면으로 위반하는 발언인 것이다.

이에 장애계는 공분하며, 규탄성명을 했는데 한 지적장애인 당사자는 탈시설에 반대하는 부모들에게 시설이 아니면 선택할 곳 없게 만든 이 세상에 자신과 같이 사과를 받아냈으면 좋겠다며, 함께 싸우자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와 관련해 실제로 시설수용은 인권유린이며, 시설수용 피해생존자들에게 제대로 된  배·보상을 하지 않기에, 시설 인권침해 관련 진상규명 및 시설수용에 대한 공식적 사과 등을 포함한 배·보상을 UN 탈시설 가이드라인에선 촉구하고 있다.

마침 작년 10월 18일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의 해외동향과 한국의 과제’란 제목의 토론회가 있어 이 토론회에 참석했다. 외국에선 시설수용과 관련한 배·보상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아울러 우리나라에 어떤 점을 시사하는지를 알고 싶어서 참석했다.

발제는 먼저 호주 라 트로브(La Trobe) 대학의 케이티 라이트(Katie Wright) 사회학 교수가 맡았다. 케이티 라이트 교수는 제2차 페미니즘 운동 등으로 숨겨진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언론의 조명을 받고, 1989년 UN 아동권리협약 체결 덕에 시설 내의 학대 행동이 아동학대의 일종이란 인식이 퍼졌다고 말했다. 이후 종교기관 등의 영향력 감소와 사회 개방으로 기존의 시설 내 아동학대 사건들 조사가 시작됐고, 피해생존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로비활동을 하며, 학대에 대한 배상 및 정의 구현을 정부에 계속 촉구했다고 그는 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글로벌 차원에서 시설 내 아동학대에 대한 진상규명조사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문서를 수집해 진실규명에 대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진실규명의 시대’를 구축했다고 했다. 더불어 서북유럽, 영미 등지에서 진행된 진상규명조사와 관련, 한 국가나 지역에서 그런 조사가 있으면, 이게 다른 지역이나 국가로 퍼진다며 이를 ‘진상규명의 연쇄작용’으로 표현했다.

호주의 경우 처음에 16건의 소규모 진상규명조사가 있었지만, 폭넓은 대중 관심을 받지 못하고 유의미한 사회 변화가 없어 이후, 시설 내의 아동 성폭력 조사를 위한 ‘아동 성폭력에 대한 시설 대응 조사를 위한 왕립위원회’(2013~2017)를 꾸렸다. 이 위원회는 법적 구속력을 갖고 많은 예산을 투여해 400여 일간 공청회로 1300여 명의 증인을 소환하고, 개별 면담도 진행했다. 개별 면담과 공청회 시 피해생존자의 진술 신빙성을 따지기보다 이들의 진술을 경청할 걸 원칙으로 했다. 성학대로 한정되었으나 학교, 교회, 스포츠클럽 등 다양한 시설을 조사대상으로 했다.

왕립위원회에선 시설에서 아동에게 안전한 돌봄을 제공하고, 피해자가 정의 구현하도록 여러 가지를 제언했고, 조사를 통해 2017년 12월 최종보고서를 발간했는데, 보고서에 나온 권고가 무려 400여 개가 되었단다. 권고를 통해 아동 안전 조항을 법에 넣어 연방정부, 주정부, 제도 차원에서 이행하고 있으며, 아동 성학대 기소 관련 공소시효 폐지는 물론 2018년 총리의 대국민 사과를 이끌었다. 이에 왕립위원회 조사는 성공으로 평가받으며, 모범사례로 다른 나라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 사이트.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 사이트 캡처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 사이트.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 사이트 캡처

이어 케이티 교수는 시설 내 아동학대 진상규명은 전환기 정의의 메커니즘과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전환기 정의란 진상규명 시대의 이론적 토대로, 초기엔 독재국가에서 민주국가로의 이행 시 대량살상 등의 국가폭력을 다룰 목적으로 사용한 개념이지만, 최근엔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 내에서도 과거에 발생한 인권침해 사안을 다루는 개념으로까지 확장됐다.

마지막으로 케이티 교수는 진상규명조사의 성공적 이행을 위해선 ▲독립성 보장, ▲활동기준과 조건들을 신중하게 결정, ▲진상규명조사와 절차 진행 시 트라우마 인지적으로 접근해 트라우마를 더 이상 전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점 등을 강조하며 발제를 마쳤다.

다음엔 자넷 도티(Janet Doughty) 전 뉴질랜드 왕립조사위원회 보좌사무관이 발제했다. 그 왕립조사위원회는 2018년에 출범한 위원회로 1950년~1999년까지의 국영 및 민영(종교단체) 시설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했고, 이를 통해 왕립위원회에서 나온 권고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왕립 배·보상 기구(Crown Respsonse Unit)’을 2019년에 설치했다. 레이크 앨리스 정신병동 등의 시설 피해생존자들의 증언·피드백은 왕립위원회의 새로운 배·보상 체계 설계안 권고에 반영되도록 했다. 왕립위원회 권고사항에 따른 배·보상체계 설계는 피해생존자 주도적 준비가 되고 있음을 그는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배·보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속한 금전 지급 등의 응급성임을 자넷 도티는 강조했는데,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피해생존자들이 많아 사망 전 배·보상해야 하기에 그렇다는 거다. 그리고 생존자들이 조금 더 편안한 환경에서 자신들의 겪은 부분들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도록 ‘생존자 경험 서비스’가 필요함도 언급했다. 피해생존자가 시설수용 관련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기에 접근을 용이하게 하면서 더 나은 기록을 제공할 필요가 있음도 지적했다.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와 관련된 뉴질랜드 사례에 대해 자넷 도티(Janet Doughty) 전 왕립조사위원회 보좌사무관이 발표하는 모습. ⓒ이원무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와 관련된 뉴질랜드 사례에 대해 자넷 도티(Janet Doughty) 전 왕립조사위원회 보좌사무관이 발표하는 모습. ⓒ이원무 

이어 한국장애포럼 최한별 사무국장도 발제했는데, 호주의 경우, 트라우마를 인지하며, 피해생존자들의 이야기 진위여부를 따지는 게 아닌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식으로 개별면담과 공청회 등을 이어갔단다. 그리고 왕립위원회 조사결과 늦어지는 배·보상으로 인해 피해생존자의 사망이 비일비재하고, 소송해서 이기면 배·보상하는 방식이 피해생존자의 트라우마를 다시 건드리기에 피해생존자들에게 신속한 배·보상을 할 것을 권고했다고 최 사무국장은 설명했다.

물론 왕립위원회 조사로 인해 사회 인식 변화가 있었지만, 왕립위원회 시작 당시 발라랏 교회에서의 성학대 사건이 너무도 사회의 조명을 받는 바람에, 시설 내 아동의 성학대 문제는 별로 조명받지 못했단다. 왕립위원회 권고에 따라 국가 배·보상 계획이 만들어졌지만, ▲성학대 외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었던 시설 경험자들을 포괄치 못함, ▲범죄 이력자 신청자격 배제, ▲상담 및 심리치료 지원액 부족 등 권고보다 축소된 배·보상 금액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뉴질랜드와 관련해선 2018년 출범한 왕립조사위원회의 활동이 있는데, 여기선 비공개면담과 공청회도 했고, 비공개면담의 경우 예를 들어 교회 운영 기숙학교에 수용된 피해생존자에겐 교회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면담 장소를 잡는 등 트라우마 인지적으로 접근한다. 또한, 조사방식도 진술의 참, 거짓 등 신빙성을 따지는 식의 사법적 체계가 아닌 피해생존자들의 경험을 경청하는 방식의 회복 과정을 추구하는 조사라는 점을 최 사무국장은 지적했다.

뉴질랜드의 기존 배·보상 체계에 대해선 ▲정부 부처별 배·보상 지급결정 기준과 액수가 다름, ▲부처별 청구 평가 기구의 독립성 결여, ▲신체적 손상중심 지원으로 과거 시설수용에 따른 손상을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진정한 사과가 전제되며, 생존자의 주체적 참여를 보장하고, 금전적 보상을 넘어 피해생존자의 전인격적 회복 등을 고려해 총체적 보상을 할 수 있는 독립적·통합적인 보상 청구기구 설립을 왕립조사위원회가 권고했다는 점을 짚었다.

호주와 뉴질랜드 사례를 통해 최 사무국장은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시설수용이 국가폭력임을 명시하고, 제대로 된 사과와 배·보상을 진행할 것, ▲배·보상과 관련해 상설적이고 독립적인 기구 필요, ▲금전적 보상을 뛰어넘어 삶에서의 영향을 총체적으로 보상하는 배·보상이어야 함을 언급했다. 그는 추가적으로 배·보상 체계 설계에 피해생존자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발제를 마쳤다.

발제 후 토론이 있었는데, 먼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김재형 부교수는 시설 인권침해 자료를 아카이빙해 이를 연구자와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며, ▲현재의 진실화해위원회(이하 진화위)와 같은 일회성 과거사 정리론 시설수용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한 명당 배·보상 금액과 상시적 기구의 설립 및 운영에 각각 비용이 얼마여야 하는지 등 문제 해결을 ‘비용’의 관점에서 보는 게 피해생존자에 대한 장기간 지원의 걸림돌임을 지적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주최한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의 해외동향과 한국의 과제’ 토론회 모습. ⓒ이원무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주최한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의 해외동향과 한국의 과제’ 토론회 모습. ⓒ이원무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남찬섭 교수는 한국의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는 식민지 지배와 그로 인한 잔재의 미청산 및 분단, 한국전쟁 후 전후 복구과정의 불평등과 연관 있고, 진화위 조사에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의 생활상태가 매우 열악한 등 현재 생존자들에 대한 회복적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 것도 아님을 언급했다. 아울러 호주가 진상조사 시 재정지원이 충분했다며, 우리나라도 수용시설 인권침해 진상규명 시 상설기구 설치와 이 기구의 운영에 필요한 예산지원이 충분해야 함을 역설했다.

다음 순서로 토론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유진 연구원은 시설 인권침해가 수십 년에 걸쳐 존재하고 시설도 지역적으로 분산돼 진실규명 작업 대상을 특정하고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하였다. 또한, 외국사례에서 트라우마 인지적 접근을 한 점에 공감하고, 조사와 진상규명 자체를 피해회복과 함께 사고해야 한다는 지점을 강조하며, 뉴질랜드 왕립위원회 조사 과정 중에도 생존자에 대한 지원 및 상담실시 등이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인 김도희 변호사는 한국의 집단수용시설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며, 탈시설 정책은 퇴행되고 있는 지점을 짚었다. 집단수용시설 문제를 다룰 때 상설적인 독립기관에서 해야 한다는 제언에는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는데, 이와 관련해선 건전한 사회질서 유지를 강조하는 억압적 사회 분위기 등으로 수용시설이 활개 쳤고,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수용시설 문제점을 보건복지부 등에서 분석해 다루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 등을 들었다.

전체적으로 토론자들은 예산이 충분한 채로 상설적인 독립기구를 설치하고, 피해생존자에게 장기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지점에 일치를 보고 있었다.

토론회를 들으며, 피해생존자들의 경험을 끌어내는데 트라우마 인지적 접근을 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는 호주, 뉴질랜드 사례 자체가 필자로선 상당히 고무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시설에 수용되며 이후 그곳에서 신체폭력, 노동력 착취, 정서적 학대 등을 반복적으로 당하게 되면 피해생존자들의 트라우마는 상당하며, 그 경험만 해도 잊고 싶은 기억임은 너무도 자명하다.

이런 경험을 피해생존자들이 자유롭게 발설하거나 표현하는 게 필요한데, 장애인 가운데서는 피해생존자들의 대부분은 지적장애인 등 정신적 장애인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인권침해 등과 관련해 법정 등지에서 진술하면 사법부에선 대개는 진술의 일관성이 떨어지고, 구체적 진술이나 표현에 있어 다소 불합리하다는 등의 이유로 이들의 진술을 별로 믿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법적으로나 의학적으로나 정신적 장애인들은 인지능력 등에 제한이 있는 사람들이라 이들의 진술은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출처: 조미정 논문, 당사자의 언어를 '교정'해야 하는가)

이는 하나의 장애 특성이자, 다양성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다양성으로 보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의 합리적 변경(Reasonable Accommodation)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이들에게 진술의 신빙성이 높아지도록 하는 것은 이들에겐 비장애 중심 체계에 들어가라는 강요이자 명백한 장애인 차별인 것이다.

트라우마는 사람을 위축시킨다. ⓒPixabay
트라우마는 사람을 위축시킨다. ⓒPixabay

만약 조사위원회 등에서 시설수용 피해생존자인 정신적 장애인에게 진술의 신빙성을 강요한다면 어떻게 될까? 오히려 시설수용 피해 경험에 대한 이들의 제대로 된 진술은 나올 수 없을 거다. 더구나 그 경험은 상당한 트라우마가 유발되기에, 조사관이나 법관 등이 진술 신빙성이 의심된단 이유로 계속 질문하면 피해생존자들 트라우마는 더 심해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들의 장애 특성과 다양성, 경험을 존중하고 중시하며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법부, 진화위 및 우리 사회의 자세가 필요함은 새삼스러우나 너무도 당연하다. 그래서 조사를 하는 법관이나 조사관 등은 장애 등의 다양성과 시설수용 피해생존자의 경험에 대해 진정으로 존중하도록 이에 대한 훈련 수준의 교육이 필요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시설수용 피해 경험에서 나오는 트라우마를 피해생존자들이 반복적으로 말하지 않도록 하는11 조치도 역시 필요한 거다.

이와 관련해 뉴질랜드에서도 왕립조사위원회 법률지원팀이 장애인 의사결정 권리에서부터 혼란스러워해 지원의사결정제도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는 점은 그래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인 거다. 또한 캐나다에서 성적 학대 경험을 피해생존자들이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의 진술을 캐나다 진화위로 이관하는 것에 합의한 점 또한 눈여겨볼 만한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배보상 및 회복적 정의와 기타 형태의 책임을 요구하는 장애인에게 개별화되고, 접근가능하고 효과적이고 신속하고 참여적인 사법 접근을 제공해야 한다는 탈시설 가이드라인 117항의 내용을 이행하는 일환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피해생존자 진술 진위를 따지지 않고, 경청하며 이들의 트라우마를 인지해 접근하는 건 117항 이행의 일환임을 우리 사회에 다시금 말해둔다. 이렇게 할 때 피해생존자들은 국가에 대한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계기가 되겠지.

그리고 독립적이고 예산이 충분한 상설기구를 설치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인권침해를 저지른 시설과 정부, 지자체 등지와는 당연 독립적인 위치의 기구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피해생존자들과 시설 관계자 간의 위계관계 등으로 인해 피해생존자들이 시설수용 피해 경험을 제대로 진술하기 어려운 구조일 거고, 그러면 진정한 배·보상을 기대하기란 애당초 어려울 것이니까.

2015년 11월 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장애인 염전노예 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기자회견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가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던 모습. ⓒ국회방송 캡처
2015년 11월 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장애인 염전노예 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기자회견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가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던 모습. ⓒ국회방송 캡처

금전적 보상을 뛰어넘어 삶에서의 영향을 총체적으로 보상하는 배·보상이어야 한다는 지점에서도 상당한 공감이 갔다. 염전 노예 사안만 해도 임금이 체불되어 이에 대한 재정 보상만 하고 가해자에게 집행유예를 내린 적이 있었는데, 피해생존자들은 정서적, 심리적 학대 등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하는 경험을 무수히 당했기에 재정적 보상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심리적, 정서적 학대에 대해서도 배·보상하는 등 피해생존자의 삶이란 장기적 관점에서 배·보상해야 함에도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제2, 3의 염전노예와 같은 게 현재도 벌어진다. 시설수용으로 인한 신체적·정서적·심리적 학대, 경제적 주권 박탈 등의 각종 형태가 피해생존자의 삶에 걸쳐 발생했기에 삶에서의 영향을 총체적으로 보상하는 배·보상이어야 함은 당연한 거다.

만약 시설수용으로 인한 피해 배·보상을 비용의 관점에서 한다면 어떻게 될까? 시설수용으로 인한 삶에서의 영향을 총체적으로 보상하는 배·보상은 불가능할 거다. 따라서 피해생존자의 존엄성 회복을 추구하는 등 권리의 관점에서 배·보상이 진행되어야 하며, 이는 배·보상이 재정 보상을 뛰어넘고, 개인 요구와 이들이 경험한 손실/박탈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의 회복, 가활 및 재활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의 탈시설 가이드라인 120항과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한편 신속한 금전 지급 등의 응급성이 시설수용 인권침해와 관련한 배·보상과 관련해 중요하다는 자넷 도티의 발제 내용에 관해선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개 시설수용 피해생존자들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고 살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제대로 된 배·보상받지 못하고 죽는다면 한 번뿐인 인생 얼마나 억울한가? 이는 위안부 여성 피해생존자분들이 빨리 죽기를 바라고 배·보상을 지연시키는 일본의 파렴치한 행위를 뉴스로 접해보기만 해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기에 신속한 금전 지급 등의 응급성은 정말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뉴질랜드에서 비공개 면담이나 공청회 등을 통한 왕립위원회 조사과정 중에도 금전 지급 등의 피해생존자 지원과 상담 실시가 있었다는 건 우리가 한번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배·보상체계 설계가 피해생존자 주도적으로 준비되고 있다는 자넷 도티의 말은 우리에게 시시하는 바가 크다. 피해생존자들이 배·보상체계 설계 시 참여하고 시설수용 경험에 대해 말하고 표현하는 것 등에 있어 주도적이어야 그만큼 조사위원회에서 공청회 및 개별 면담 방식을 트라우마 인지적으로 세심하게 다듬는 등 배·보상체계를 더욱 세심히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피해생존자들의 공식적인 사회 참여 통로를 정부에서 마련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는 시설수용 생존자를 위한 모든 구제책은 장애인, 특히 시설수용 생존자의 참여와 논의 속에 설계되고 이행돼야 한다는 탈시설 가이드라인 122항과 연관·연결되는 지점이라고 본다.

탈시설 가이드라인에서 구제와 배·보상에 대해 설명한 원문 내용들 일부 ⓒUN CRPD Committee
탈시설 가이드라인에서 구제와 배·보상에 대해 설명한 원문 내용들 일부 ⓒUN CRPD Committee

마지막으로 토론회에서 언급되진 않았지만, 뉴질랜드에선 시설수용 자체를 인권침해로 바라보며, 누구도 사회의 눈에 닿지 않는 곳에 방임되어선 안 된다는 인식을 만들어내는 게 왕립조사위원회의 역할이라고 한다. 또한, 시설에 유입된 경로를 조사해 사회가 어떤 집단을 어떻게 차별했는지 파악하고 비극적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왕립조사위원회의 역할 중 하나이다.

여기서 시설에 유입된 경로를 조사한다는 건 지역사회 내에 아동이나 취약한 성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와 체계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과 동시에 시설수용이 가능했던 차별적 사회 구조에 대한 조사도 포함된다(진실화해위원회, 2022). 이런 작업들을 뉴질랜드에선 앞으로 계속할 예정인데, 우리나라도 진화위를 통해 이 작업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할 것으로 안다. 이런 작업들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일회성이 아닌 체계적이고 꾸준하게 진행되도록 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야 시설수용이 인권침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점점 자리를 잡아갈 터이니 말이다.

이는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해 모든 형태의 시설수용이 과거와 현재의 시설수용자에게 미치는 위해에 대한 공공인식을 조사 및 증진하고 장애인의 시설수용 제도를 유지한 역사적 정책에 내재된 사회적 해악에 대해 다뤄야 한다는 탈시설 가이드라인 121항과 관련 있을 터이니 말이다.

이제 정리하면 ▲피해생존자의 경험에서 나오는 진술을 경청하며 트라우마 인지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금전적 보상을 뛰어넘은 피해생존자 삶 관점에서의 총체적 보상을 하고, ▲피해생존자 주도적 배·보상체계 설계여야 하고, ▲배·보상 시 신속한 금전 지급 등 응급성이 필요하며, ▲시설수용 진상조사 시 독립적·상설적 기구를 설치하고, ▲시설수용이 인권유린이라는 것에 대해 장기적 차원으로 국민 인식을 증진하는 것 등이 시설수용 진상조사 및 배·보상 시 필요한 것들이다.

결국, 이를 통해 시설수용 피해생존자들이 추구해야 할 최종목적지는 시설에서 빼앗긴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 회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법무부가 장애 등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낮고,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들이 올해 6명이나 들어오는 환경 등을 고려하면 제대로 된 시설수용 인권침해 진상규명 및 배·보상은커녕 피해생존자들의 트라우마는 더욱 증폭되고, 이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이란 먼 얘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화가 난다.

이런 것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는 계기를 올해 갑진년에 마련할 수 있을까? 설령 그런 계기를 만드는 게 쉽지 않더라도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들이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배우고 가이드라인에 있는 문장들을 고민하고 이와 관련해 사회에 대안을 제시하다 보면, 분명 그런 계기를 만들 날이 점점 더 빨라지겠지? 그걸 위해 필자부터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여려 관점에서 다시 열심히 공부해보련다.

그래서 시설수 피해생존자들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되찾을 수 있는 작은 계기로 이어지길 바라며 말이다. 그나저나 작년에 방영된 드라마 모범택시 시즌2의 주인공 김도기(이제훈 분)가 남겼던 ‘기억해야 되찾을 수 있는 게 있어’란 메시지가 아직도 나의 뇌리를 강하게 스치며 자꾸 기억나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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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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