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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결혼이 흥밋거리?

주변에서 우리 삶을 단순화시켜 정신적 고통 받아

남편이 해주는대로 살아야한다고 정의 내리는 그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9-05-25 11:44:58
딸의 어린이 집 졸업식 때 찍은 가족 사진. ⓒ조윤경 에이블포토로 보기 딸의 어린이 집 졸업식 때 찍은 가족 사진. ⓒ조윤경
사람의 성격의 유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라면 겪은 주변 환경이나 사람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한다. 여성 장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여성 장애인에게는 '여성'과 ' 장애인' 이라는 고정 관념의 속박이 주어진다. 23살에 남편을 만나기전까지 나의 삶은 여성도 남성도 아닌 그냥 장애인의 삶이었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장애인….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모르고 살았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의 친정아버지는 부모님들과 다르게 뇌성마비인 데다가 늦둥이이기도 한 딸을 많이 아껴 주셨기에 장애 때문에 차별이나 설움을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공주처럼 예쁘고 귀하게 자랐다. 우리 집에서는 엄마가 직장에 다니시는 관계로 내 용변과 목욕은 아버지가 담당하셨다. 하지만 초등학교 5, 6학년이 되면서 어릴 때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부문에 대해서 의문과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남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옷을 갈아입히시거나 용변을 볼 때가 많았다. 다른 여자애들은 장난으로 치마를 들춰도 어른들이 야단치고 난리가 나는데, 왜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일까?

사춘기 지나도록 성정체성 인식 못해

그런 이유로 물리적으로는 여성이라고 해도 마음으로 여성이라고 성 정체성을 인식할 수는 없었다. 몸도 불편한데 여성으로서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하게 됐고 진정한 여성이기 보다 생리적인 여자라고 인식할 뿐이었다.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고 이성에 눈 뜨게 되면서 나의 장애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면서 장애인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으로, 한 여성으로 살고 싶었다.

남편 전에 잠깐 만났던 남자친구들은 그다지 강하게 스킨십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아마 장애여성을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길까봐 조심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남편을 만났을 때도 난 조심성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행동한건 아니었지만 남편은 나를 여자로 보지 않을 것 같았고 지금까지 누구도 나를 여자로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 스킨십이나 애정 공세에도 떨림도, 거부감도 없었다.

그저 사랑에 대해 막연한 소녀적인이 감상만이 있을 뿐이었다. 생리, 자위, 포르노…. 사춘기에 겪고 지나갔을 기본적인 성적 호기심마저 없었고 처음에는 남편을 거절하게 되면 나를 떠나 버린 것 같아서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지만-그때까지도 나에게 성과 섹스는 개념 속에 마지못해 하는 행위로 밖에 별 의미가 없었다-막상 남편은 나를 여자로 대하고 있음을 느끼고 육체적으로 여성적인 매력도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서로 맞춰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의 방법

결혼생활 13년째인 지금 비로소 가정생활 속에서 장애여성의 위치가 어때야 바람직한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가끔 집에 혼자 있는 날 갑자기 배가 아프고 설사가 나서 바지에, 온 집안에 변으로 범벅을 해놓아도 남편이 뒤처리 해주고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둘만의 만족이 있어야 진정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결혼 초기에는 남편과 많이 다퉜다. 다른 부부들도 신혼 초에 싸움이 잦게 마련이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벽 때문에 다툼이 한층 더 심각해지곤 했다. 책을 책꽂이에 꽂는 단순한 일도 난 높은 곳에 놓으면 꺼낼 수 없으니 낮게 놓아달라고 하고 남편은 본인의 습관대로 내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놓아서 한바탕 싸우기도 했다. 싸우고 나면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이때, 싸움의 내용이야 어찌됐건 내가 먼저 사과해야 용변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의식주를 해결하고자 터득한 나만의 방법이랄까. 밥을 먹기 위해 비굴해 져야 하는 것은 직장이나 가정이나 마찬가지인 듯 싶었고 부부가 생활을 해감에 있어서 서로 끈끈한 애정이 밑바탕 돼야 하겠지만 때론 필요에 의해서 서로가 가진 능력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이 나보다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이 사실이니 긍정적 방향으로 맞춰가면 건강한 부부들 보다 훨씬 만족스럽고 행복한 질 높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우리 가족. ⓒ조윤경 에이블포토로 보기 행복한 우리 가족. ⓒ조윤경
결혼임신출산이 가장 힘들어

그러나 결혼하고 내 몸에 장애가 있어서 힘들다고 절실히 느꼈던 때는 임신출산의 과정에서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나서 연애하고, 사랑하고, 결혼해서 살아가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주변에서 우리의 삶을 단순화 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가족은 우리끼리 우리만의 영역에서 조용히 살수가 없다. 모두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지대한 관심도 갖고 있으니 공개적일 수밖에 없다. 주변의 흥밋거리로 입에 오르내리는 일도 허다하다. 난 장애가 있으니 수혜자로서 참고 남편이 해주는 대로 받으며 살아야 한다고 그들끼리 정의 내려버린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닌 그냥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이다. 다른 사람의 이목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남편에게 짜증내지 말라' 라든지, 마켓에서 물건을 살 때도 내 의견은 무시되고 남편 말만 존중되는 일들을 겪다 보면 내 스스로 존중감이 없어진다.

몸도 불편하고, 정신적 안정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뱃속의 아이가 6개월이 지나면서 숨이 가빠오고. 그때는 아이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나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기보다 내 상황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새 임신 7개월이 넘어서자 옆으로도, 돌아누울 수도 없이 숨이 차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급히 병원에 입원했지만 나의 장애에 맞는 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거니와 침대가 몸에 맞지 않아서 삐걱삐걱 소리가 요란하게 나니까 같이 입원한 산모들이 항의하고 하루, 한순간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렇게 5월달, 임신 8개월이 되자 날은 점점 더워지고 음식도 물 한 모금도 넘기기 어려워지면서 어서 아이가 뱃속에서 나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담당 주치의는 열흘 정도 더 뱃속에서 아이를 키워서 안전하게 낳자고 했지만 그때 나에게는 한가한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의사에게 도저히 못 견디겠고 더 이상 1분이라도 더 있으면 죽을 것 같다고 협박(?)했고 의사도 그 정도라면 산모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바로 수술로 들어갔다. 그리고 1시간 후 남자아이를 낳았다. 마취에서 깨어나자 제일 먼저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뱃속이 시원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그 동안 어려운 문제들을 남편이나 가족, 또는 나서서 누군가가 해결해 주겠지라는 유아적인 어리광이나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장애인이라는 어리광과 엄마와 아내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명확한 자리매김을 하지 못 했는지도 모른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장애 자체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장애를 핑계로 엄마로서, 나의 인생을 책임지는 성인으로서의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성장애인으로서의 자존심과 존재감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늘 잠재되어 있었나보다. 사람들이 하는 질문 중에 “남편에게 제일 미안할 때가 언제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솔직하게 말해서 내 장애 때문에 미안한 적은 없다”고 답한다. ‘나’를, 또 가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다.

장애인들의 성 정체성과 인권위해 노력하고파

2001년 가을. 첫째 아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힘들어 한 것이 안타까워서였을까? 남의 손에 맡겨져서 고생만 하던 첫째 아이가 허무하게, 너무도 무심하게 세상과 이별했다. 남의 손에서 떠났기에 의심스러워서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도 해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엄마 손에 밥 한번 먹여보지 못하고 떠나보낸 첫째아이…. 그때 사회적으로 인식이나 복지혜택만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어도 아이를 그렇게까지 고생시키지 않았을 텐데. 지금 와서 후회한들 무엇하랴. 운명이라고 넘기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지만.

첫째아이가 하늘에서 돌보는지, 둘째는 잘 크고 있다. 그때 구성애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늦게나마 결혼식도 성대하게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렸고 ‘KBS 인간극장’에 출연해 인기(?)도 많이 얻었다. 소외계층의 삶의 질 향상과 좀 더 낳은 세상을 위해, 현재 ‘장애인 푸른 아우성’의 대표로서 장애인들의 성 정체성과 인권을 위해 힘써 노력하고 싶다.

이성을 만난다는 것, 부부가 된다는 것은 순간적 판단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의 마음과 생명에 대한 책임감도 반드시 함께 생각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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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조윤경 기고/조윤경블로그 (09f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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