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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질논란 김양원 위원의 해명자료 전문

"기소유예 보도는 오보…인권 선봉장 될 것"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8-11-11 09:26:09
김양원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을 둘러싸고 '인권침해 가해자가 국가인권위원이 될 수 없다'는 장애인·인권단체들의 퇴진운동이 거세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김양원 인권위원이 직접 최근 언론보도에 대한 해명자료를 작성해 국가인권위원회측에 전달, 주목을 끌고 있다. 에이블뉴스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제공받은 김 위원의 해명자료 전문을 싣는다.

최근 언론보도 등에 대한 답변

최근 언론에 보도된 저와 관련된 내용 등에 대한 답변을 드립니다. 우선 전체 흐름을 생략하고 일부분만을 왜곡, 부각시키는 언론의 속성을 이해해 주시고 저에 입장을 진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장애인 인권운동의 과정

1) 성장과정

저는 농업을 천직으로 삼아 평화롭게 사셨던 부모님에게서 일곱 번째로 태어난 장남입니다. 누님 여섯 분 중 두 누님의 사망에 이어 저마저 소아마비로 장애를 입었습니다. 저에게 온 정성을 쏟으신 부모님의 관리 잘못으로 이어서 태어난 여동생마저 정신지체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저주받은 가문으로 낙인, 심한 질시와 소외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갖은 설움과 고통 속에 성장하였습니다. 인권 침해의 참상을 직접 느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와 누님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면서 사랑의 위대한 힘을 발견하였고 어렵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인생관을 정립하였습니다.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려 했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하면서 사회에 대한 원망과 자포자기 속에 방황하던 중 중증 장애인을 우연히 만나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어 장애인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2) 인권운동 주도

1980년대 초 사회혼란기에 어려움을 당한 장애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오면서 장애인 공동체로 발돋움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사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대, 대모, 출입정지 가처분 신청 등, 억지로 쫒겨 다니는 이사를 10여 차례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청량리에 겨우 마련한 부지에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건축하려 시도했으나 주민들의 농성으로 무산될 위기에 몰리자 우리들도 항거하기 시작했습니다.

투쟁을 위해 대책위원회와 인권운동본부를 발족, 3년여 동안 힘들게 장애인 복지와 인권 신장을 위해 온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산발적으로 장애인들을 위해 사역을 하고 있던 소규모 단체들도 그 사이 조직을 갖추면서 동참 해 주었고 막바지에는 18개 단체가 연합하는 공동대책 위원회와 인권운동본부로 확대 조직하여, 소위 한국 장애인 운동 연합체로 발돋움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청량리 동사무소를 한 달간 점거해 농성을 하며 인권옹호궐기 대회를 수차례 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경비와, 강온파의 내부 갈등,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중증장애인들의 건강 악화 등 더 이상 농성을 계속할 수 없어 중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장애인들을 앞세워 농성이나 한다고 비난을 했고, 강경파들은 농성을 계속하지 않고 중도에서 멈춘다고 비난과 악성 루머를 남기며 괴롭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살고 있던 곳에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 전소되면서 할 수 없이 서울을 떠나 남양주로 이사 오게 되었고 제도권 안에 들어와 복지 사역을 계속해 왔습니다. 100여명 중증 장애인들을 살려야 하는 절박함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지금의 인권단체들이 그 때 거의 태동되었으며, 장애인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3) 편의증진법 제정에 결정적 기여

1995년 4월, 청와대에서 복지시설의 이사장, 원장들을 초대 오찬을 하는데, 평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자들은 곧바로 오찬 장소로 이동을 했습니다. 저는 당시 교통사고로 깁스를 하고 있었으나 명단에 없다는 이유로, 차량으로 이동하게 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경호원 네 분이 들고 두 시간 동안을 청와대 이곳저곳 구경하며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다가 경호원들의 실수로 휠체어가 구르면서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오찬 석상에서 부상으로 인해 흐르는 피를 보이며 큰 소리로 청와대 행정의 경직성과 편의 시설 미비 등을 부르짖었고 편의 시설 촉진법 제정을 촉구했었습니다. 경호원들이 포위를 하는 등 무서운 분위기였지만 2주 후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청와대에 편의 시설 공사를 완료했으며 담당부서에 장애인 편의증진법 제정을 지시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곧이어 실제로 법이 제정되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4) 시설 입소 장애인 10만원 월급 파동 저지

생산적 복지의 일환으로 영세민들이나 장애인들이 일정 이상 소득을 올릴 시 국가 보조금을 삭감 하겠다는 정책이 발표되었습니다. 그 때 시설 장애인의 기준 임금은 월 10만원으로 책정되었고 그 이상 소득 시 보조금을 삭감하겠다는 것입니다. 한 달 동안 일을 실컷 시키고 월급으로 10만원만 주면 되기 때문에 이사장, 원장 입장에서는 부담 없는 좋은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피가 거꾸로 솟아올랐습니다. 장애인들은 이제부터 10만원짜리로 낙인이 찍히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서명 운동, 항의 방문, 언론에 의지해 보완을 하려고 해 보았지만 헛수고뿐이었습니다.

2000년 2월 중순, (2월 14일로 기억됨) 과천 호프호텔에서 복지부 장관, 복지분과 국회의원 등이 주도하여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마지막 기회로 생각되어 장애인을 10만 원짜리로 전락시킨 악법의 부당성을 성토하다 발언을 중지 당했습니다. 그 결과 현찰로는 10만원까지만 지급하되 그 이상 소득은 장기예금을 시켜 주면 보조금을 삭감하지 않기로 보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원장님들 사이에서 김양원은 멀지 않아 죽는다는 말이 퍼져서 제 귀에까지 들려 왔습니다.

2. 2000년 6월 감사 건

1) 사건 정황

2000년 6월 초부터 감사원 감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영수증 처리과정, 지출 과정을 꼼꼼히 살피다가, 처벌하지 않고 복지정책에 반영 할테니 협조해 달라며 운영비 전용에 대해 수차에 걸쳐 계수조정을 하셨습니다. 최종 6,000만원을 전용한 것으로 확인서를 받고 감사를 마무리 했으나 일주일 후 다시 오셔서 이 정도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며 대대적인 재감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6억여 원의 금액에 대한 추산 확인서를 받고 대검찰청에 고발 조치하였습니다. 그로부터 4개월에 걸쳐 혹독하리만큼 강한 검찰수사를 받았습니다. 검찰 수사결과 영수증 등 증빙서류 없이 금액이 부풀려 있고, 횡령 기간이 2중으로 중첩되어 있으며, 지원금보다 횡령액이 많게 책정된 항목도 있고, 5년 동안 실제 생활하며 지출된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고, 횡령했다고 주장한 금액에 대해 개인이 전혀 착복한 사실이 없고, 의심된다고 지적한 금액의 사용처는 2000년 1월에 개원한 요양시설에 사용된 정황이 확실하여 2001년 1월 30일 ‘혐의없슴’과 ‘기소유예’로 판결되어 끝이 났습니다. 시설을 설립하게 된 이유는 대형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녔습니다. 함께 살게만 해달라고 장애인들이 호소하는데 신망애 현 시설은 정원이 차서 더 이상 이 분들의 강한 욕구를 들어 드릴 수가 없어 정원 50명의 소규모 시설을 설립, 별도로 독립하여 운영하게 해 드렸던 것입니다.

수사가 마무리 된 후 곧바로 행정 소송을 제기하려고 했지만 4개월 동안 수사를 받느라 소송 유효 기간인 90일을 넘겨 소송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너무 억울하여 할 수없이 무리인줄 알면서도 ‘감사 원인무효 소송’을 제기 했지만 ‘행정소송 사안이지 원인무효라고는 할 수 없다’ 는 취지로 패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고 얼마 후 2005년에 또 감사를 나와 2000년 건을 트집 잡으며 “조용히 지낼 일이지 소송이나 제기하니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하며(제가 직접 들은 말이 아니고 간접적으로 전해 들음) 소위 괘씸죄로 인해 이사장 해임 명령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잡지의 보도에 2000년과 2005년, 2차례에 걸쳐 횡령이 있어서 감사원 감사를 받고 고발되어 법원 판결에 의해 기소유예와 이사장직에서 해임되었다고 하는 기사는 더 크게 흠집 내기 위한 명백한 오보입니다.

2) 본인의 입장

당시 저는 사회복지관장, 목회 등에 전념하고 재활원의 실제적인 운영이나 행정업무에 깊이 관여하지 못해 발생된 실수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러나 제가 설립하고 이사장직으로 있던 시설에서의 문제가 발생된데 대해서는 깊이 사죄하며, 추후 이런 잘못이 재발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사건 이 후 전 직원들과 운영진들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며 원칙대로 운영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안고 있는 이 약점에 대해 터놓고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 공인으로서 이런 흠집이 없는 상태로 인권위원으로 임명받았다면 더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을 가져봅니다.

‘감옥 다녀온 사람도 있었다는데 기소유예 정도로 그만둬야 하는지 모르겠다’ 라는 기사에 대해서도 정말 조심 또 조심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기자가 계속 기소유예 신분이면 스스로 물러나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기소유예가 법적으로 인권위원이 될 자격이 없는 중죄가 되느냐라는 의도로 한 말인데 기사화 되고 나니 기자와 말하는 것조차 겁이 납니다. 더 신중히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3. 불임, 낙태 건

참고로 저는 모든 장애인들이 세 가지 기본적인 인간적 권리는 누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첫째는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애인이기에 더 많이 배우고 스스로 깨어야 장애라는 핸디캡을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고 열악한 환경을 이길 수 있기에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배움을 권합니다. 실제로 82년부터 재활원에 야학교실을 설치 약 50여명의 검정고시 합격자를 배출하였고 그중에 대학 진학을 10여명 시켜 드렸습니다. 컴퓨터 교육도 누구 못지않게 일찍, 85년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장애인들에게 시켜 왔습니다.

두 번째는 직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금액이라도 일을 해야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기에 일 하기 운동, 취업 운동을 전개 했습니다. 현재 생활 가족 70여명이 취업하여 일정 부분 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 소득으로 두 번에 걸친 해외여행, 제주도 여행, 전국 투어 등 매년 삶의 질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가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료 결혼상담소 등을 운영하며 가정을 만들어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 했습니다. 결혼을 시켜드린 사람만 약 200쌍이나 됩니다. 다들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그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하고 생활비를 보내 드리기도 해 왔습니다.

이번에 문제된 사람은 약 200쌍 중에 두 쌍입니다. 두 쌍 다 중증 지체 장애인으로서 모든 일을 자기 판단 하에 행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입니다. 그리고 부모나 가족들이 계셔서 후견인 역할을 하는 분들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강제로 불임수술을 강요하면 제일 먼저 직원들이 반발하고 또 다른 지체 장애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낙태를 강제로 시켰다고 기사화 된 분들은 가족과 본인의 생각으로 이미 낙태 경험을 한 사람들이었고 저희들이 결혼을 시켜 드린 후 또 임신이 되었지만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다른 질병으로 약을 계속 복용 하였으며, 본인들의 중한 장애 때문에 도저히 양육이 불가능하여 본인들이 결정하여 취해졌습니다. 자세한 정황의 증거가 확실히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불임수술을 전제 조건으로 결혼을 시켰다고 기사화 시켰으나, 200쌍 중에 단 한 쌍도 조건을 달지 않았으며, 단지 그 부부만 장애 상태나 여건상 자녀를 낳아 양육할 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 불임수술을 받고 결혼에 임한 것뿐입니다.

기사화 된 후 그런 의도로 말을 하지 않았는데 자신들도 모르는 일이라며 죄송하다고 사과 전화가 한 부부로부터 왔습니다. 저 자신도 했던 말들의 정황이 누락되고 왜곡되어 곤욕을 치루고 있는데, 장애인들이 어떤 과정에서 이런 말까지 나왔을까 충분히 이해가 되어 집니다.

4. 가족 중심의 운영 건

이사나 감사, 원장, 국장, 팀장, 직원 120명 중에 부인 한 사람 외에 단 한명도 없습니다. 신망애가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에 한 가지가 가족 중심에서 벗어났다는 점입니다. 부인이 이사로 들어간 것도 제가 이사장 해임이 되면서 그 후에 이사로 취임한 것입니다.

5. 인권위원으로서의 다짐

저는 스스로 진보다 보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장애인들의 열악한 현실 앞에 눈물을 흘려왔고 짓밟힌 인권의 회복만을 위해 목을 내걸고 일을 해온 것뿐입니다.

조물주가 제게 준 미션이 목회자였기에 그 분께서 하신 것처럼 약하고 소외된 영혼들을 위해 제가 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사랑을 실천하는 헌신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또한 두 번째로 주신 미션인 사회복지사로서 오직 클라이언트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구현하고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대우를 받게 하기 위해 질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 해왔습니다.

금번에 세 번째 미션으로 인권위원이라는 중책이 맡겨졌기에 목회와 사회복지의 연장선상으로 믿고 힘없는 소수와 유린당하는 인권의 회복과 세계적 인권 수준에 발맞춰 한국이 인권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기여하고자 다짐해봅니다.

대통령께서 저를 인권위원으로 임명해 주신 것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저를 비서로 임명해 주지 않고 인권위원으로 임명하셨기에 비서역할이 아니라 인권의 선봉장에 서는 길만이 제가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외압이나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오직 인권의 신장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떤 주장이나 행동도 진보, 보수여서가 아니라 김양원이 갖고 있는 소신으로 여겨주시고, 예민한 인권적 감수성과 인권적 관점으로 세계인권선언에 충실한 소신파 인권위원이 될 수 있도록 격려와 지도 부탁드립니다. 급히 쓰느라 충분치 못한 점 있을 줄 생각됩니다. 이해를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

인권위원 김양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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