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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차별입니다

성전 바깥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은 차별이었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8-07-12 01:36:54
예루살렘 성전의 미문(美門). ⓒ임형익의 싸이월드 에이블포토로 보기 예루살렘 성전의 미문(美門). ⓒ임형익의 싸이월드
[연재]성경에 나타난 장애인 차별이야기⑥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이들은 겁을 먹고 숨어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확실한 믿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어깨를 쫙펴고 예루살렘 미문을 향하여 기도하러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어제도 그리했고, 그제도 그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상황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분명히 길은 그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길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매일 누군가가 그 사람을 정한 시각에 성전 미문에 데리고 왔다가 다시 집으로 데려가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제도 보이지 않았던 그 사람이 오늘따라 눈에 확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제자들의 눈에 띄게 된 그 사람은 지체 장애인이었습니다. 태어나서 한번도 자기 발로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공부도 하지 못했고, 사회활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손에 의지하여야만 하루 하루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그것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구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조차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래도 하늘이 도운지라, 동네 청년들이 자신을 늘 성전 미문에 데려다 주곤 했습니다. 다행히도 성전 미문은 목이 좋았습니다. 늘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이 오고가곤했기 때문입니다.

지체장애인은 늘 청년들에 의하여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체장애인의 나이가 40이 되었으니, 성전 미문에서 구걸을 하게 된 것이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이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지체장애인은 사람들의 얼굴을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리다툼을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 자리는 언제나 그리했던 것 처럼, 지체장애인의 자리었습니다. 잔뼈가 굵었고, 기득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내밀은 동전 통에 늘 무엇인가를 던지고 갔습니다. 맨 처음에 창피하기고 했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지체장애인에게 돈을 던져놓는 사람에게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도 짠밥이 쌓이니까, 감사보다는 당연한 것이 되었고,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보다는 그들이 던져 준 동전의 가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체장애인은 늘 그 자리에 앉아서 땅바닥을 보면서 구걸을 하여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양문(羊門). ⓒ임형익의 싸이월드 에이블포토로 보기 예루살렘 성전 양문(羊門). ⓒ임형익의 싸이월드
어제도 그리했고, 오늘도 그리했습니다. 성령의 체험을 했던 제자들은 오늘도 기도하러 성전을 향하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날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바로 그 장애인이 눈 앞에 확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30여년 간 그 자리에 있었던 장애인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기도만 하러 갔기에, 기도 이외에는 아무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습니다. 제자들의 발걸음은 장애인의 앞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우리를 보라” 장애인은 갑자기 놀랐습니다. 그에게 돈을 던져준 사람들, 어느 누구도 “우리를 보라”고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돈 만 던져주었을 뿐이었습니다. 장애인 역시 그들이 던져준 돈의 가치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를 보라”는 낯선 음성이 들려진 것입니다.

“이 친구들이 무엇을 주려는가?” 약간의 호기심이 장애인의 얼굴을 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의 귓전에 들려진 말의 서두는 장애인으로 하여금 다시금 좌절하게 하였습니다.

“은과 금은 없거니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심정으로 장애인의 시선은 다시 땅바닥을 뚫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았습니다.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음성이 연이어 들려졌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일어나 걸어라.”

40년간 처음 들어본 음성이었습니다. “걷는다는 것” 이는 장애인이 가진 꿈의 목록(lists of his dreams)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단어였습니다. 장애인이 가진 미래의 비젼(future vision)에도 상상할 수 없는 용어였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은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은 성전 안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장애인은 항상 성전 바깥에 있었습니다. 장애인 자신도, 장애인을 늘 성전 바깥에 데려다 준 사람도, 그리고 성전으로 향하여 기도하러 올라갔던 수많은 사람들도, 장애인이 성전 안으로 가야한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성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장애인의 삶은 성전 바깥에서 태어나 성전 바깥에 머물다가 성전 바깥에서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자연스러운 운명의 소유자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차별이었습니다. 장애인에게 주어진 차별(discrimination)이었습니다. 성전 가까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장애인이 성전 안에 있어야 한다는 상상 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장애인이 성전 안에 있어야 하는 가에 대한 것은 장애가 있느냐 없느냐와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삶이 성전 바깥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들은 그 자체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었습니다. 장애인이 성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라는 사실 조차 무의식 영역에서 사라져있는 사실, 이 이상의 차별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러한 차별은 오늘의 종교에도 쉽게 발견되어 집니다. 계단만 있고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은 기독교와 천주교의 예배당(禮拜堂)과 불교의 사찰(寺刹)은 그 자체가 장애인을 차별하는 현실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교란 지극히 낮은 자와 작은 자를 높여서 통합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종교의 역할은 사람들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담을 허물고 서로 사랑하는 사회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행위가 이루어지는 건물 자체가 이를 막고 있습니다. 종교 본연의 기능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차별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종교인들, 종교지도자들! 바로 그들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주역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장애인이 한 번도 걷지 못했다가 걸었다는 사실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가 일생이 성전 바깥에 머물고 있다가,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체험을 가진 베드로와 요한! 그들도 놀랐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일어나 걸어라”는 말은 단지 신체적으로 걸으라는 명령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성전 바깥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고 생각되어진 사람이 성전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기적을 만들은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와 요한이 의도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체험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엄청난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차별이 없다.(There is no discrimination in Christ.)"

하나님께서 없애버린 차별,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된 세상. 그러나 오늘날에도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차별을 방조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칼럼니스트 이계윤 칼럼니스트 이계윤블로그 (leechur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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