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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비장애남성의 성활동보조 경험담 2편
장애인 섹스 활동보조를 하고 인간을 느끼다
- 장애인은 돌이 아니다 -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5-04-05 13:25:50
(39살의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그는 ‘언제쯤 직접 여성과 섹스를 해볼까?’라는 꿈 속에 살고 있었다. 자위를 하는데도 자유롭지 못한 신체구조를 가진 그는 비장애 남성 친구에게 죽기 전에 한 번은 여성과 섹스를 해보고 죽고 싶다는 마음을 토로하였다. 이런 소원을 늘 듣고 있던 친구는 그의 소원을 이해는 하지만 직접 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에는 자신도 상당히 보수적인 성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 친구는 중증장애남성의 욕망에 아무런 댓가없이 관계하고 싶다는 여성을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밤 늦게까지 이 비장애 남성에게 총각딱지 떼고 싶다는 간절한 호소를 한 장애인 친구. 결국 친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다. 친구는 그 동안 비장애인 사회에서 갖고 있던 성 가치관을 다시 짚어보며, 그의 성 활동 보조인으로 도움을 주었다. 이 활동을 한 비장애 남성의 생생한 글을 통해서 중증장애인 섹스서비스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고민을 다시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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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에 들어간 세 사람

신촌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근처 분식집에서 떡볶이기를 먹으며 요기를 대신했다. 혼자서는 수저를 들 수 없는 A 씨를 대신해서 수저를 들고 떡볶이를 먹여주는 모 여성. 그리곤 근처 모텔로 방향을 돌렸다. 세 명이 한꺼번에 들어오자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모텔 주인. 나는 A 씨를 침대에 옮긴 뒤 나갈 것이라고 하자 숏 타임 요금인 2만원을 요구한다. 방문을 열자 넓고 아늑한 침실이 눈에 들어왔다. A 씨를 옮기고 바지까지 벗긴 뒤 나는 모 여성에게 그때까지 내 목에 걸려있던 A 씨의 핸드폰을 건넸다. 관계가 끝나면 이 핸드폰으로 내 핸드폰에 전화를 하라고. 그리고 문을 닫고 나왔다.

시간을 보니 4시를 조금 넘겼다. 지난 4시간 동안 그야말로 숨도 돌릴 틈 없이 바쁘고 긴장된 상황 속에 있었던 셈.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자 그제야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따뜻한 늦겨울 태양은 아직 매섭게 불타고 있었다. 이대 앞 공원까지 걸어간 나는 벤치에 앉아 책을 꺼내 읽었다. 최근 장애인 성서비스에 관하여 여러 경로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대체적으로 보수적이고 완고한 나의 성적 고집 때문에 일전 나는 "장애인의 손과 발은 될 수 있어도 그를 위해 자위를 해줄 수는 없다"고 주장한 바가 있었기 때문.

'아직 겨울은 겨울이구나'하며 옷 춤을 다시 매미든 5시 30분쯤, 모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모텔 방문을 열자 바지와 셔츠를 입은 A 씨가 바닥에 누워 있는 게 보인다. A 씨와 같은 중증 장애인의 옷을 입힌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안 해본 사람은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귓가에도 들려온 모 여성의 거친 숨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집밖을 나오기 전보다 더 기력이 없어졌는지 손가락 하나도 간신히 움직이는 A 씨. 일어서지 못하는 그에게 나머지 옷을 입히고 휠체어에 태운 뒤 우리는 모텔을 빠져 나왔고 또 헤어졌다. 모텔을 나오기 직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프런트 앞에 서 있었는데, 아마도 이 노인들은 A 씨가 묵었던 205호실에 갈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노인들 역시 무성의 존재로 취급되고 있는 현실에 맞닿을 수 있다.

이윽고, A 씨의 집에 도착한 나는 그를 방에 눕혀 놓았다. 고개를 들 힘도 없다는 듯이 스르르 옆으로 쓰러지면서 벽에 쿵하고 머리를 찧는 A 씨. 그리고는 잠에 빠져 들었다. 이불을 덮어주고 방을 나오자 어머니께서 물어보신다. "영화 재미있게 봤어?"

장애인은 성적 욕망을 지닌 보편적 인간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은 성적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어느 정신지체 여성은 비장애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를 '섹스를 밝히는 더러운 년'이라고 말했다고 내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중증의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자기 힘으로 자위조차 할 수 없어 넘쳐나는 성적 에너지로 인해 괴로워하는 걸 보다 못한 어머니가 목욕할 때마다 아들 대신 자위를 해주었다. 이 사실은 아버지도 알게 되었고, 부부는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되었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고 해도 아내가 대신 자위해주는 건 불륜이나 같다고 여긴 듯 싶다. 하지만 중증 장애를 가진 아들의 자위를 대신 해주는 어머니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그리고 해소되지 못하는 성적 욕망, 이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장애인 성과 관련된 책에서 산소통을 두 개를 들고 집창촌에 가는 장애인 이야기가 소개된다. 산소 호흡기를 떼는 순간 언제 목숨을 잃을 지 알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을 예상하면서도 섹스를 하고자 하는, 다시 말하자면 목숨을 걸고 섹스를 하는 장애인. 자연히 비교가 된다. 비장애인 중에 목숨을 걸고 섹스를 해본 사람이 있을까.

이러한 성적 욕망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건 대단히 비겁한 짓이다. '장애인이 무슨 섹스냐!' 이 말은 장애인을 성적 욕망을 가진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닌, 무성의 비인간으로 간주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네덜란드와 같은 선진국에서는 혼자서 자위조차 할 수 없는 장애인에 대해 한 달에 세 번 섹스 지원금을 제공한다. 또한 이른바 '사회적 섹스'라고 하여 공적 위상을 가진 시민단체에서 장애인에게 섹스 파트너(이성애자, 동성애자)를 보내주고 있다. 장애인의 성적 욕망, 이것은 정부에서 책임을 지고 적극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부정할 수 없는 국민적 관심사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국민 총생산(GNP)에만 급급해왔다. 그동안 국민 총행복은 무시되었고 짓밟혀야 했던 것. 그러나 우리의 행복 수준이 날이 갈 수록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노숙자가 죽으면 짐수레에 실려 영안실에 보내지고, '나는 성적 욕망을 가진 보편적 인간이다'고 주장하는 장애인의 권익은 쥐새끼 바라보는 것처럼 실눈을 뜨고 뜨악하는 야만적인 국가 정책, 국민 정서가 지배적인 지금, 2월 17일 온 몸의 힘과 근육을 총 동원하여 총각 딱지를 떼려고 했던 A 씨와 성적인 자원봉사를 제공한 모 여성은 오랜만에 보고 느낀 인간적인 모습 그 자체였다.

이제는 자본이 아닌 행복을 생산해야 되지 않을까. 비장애인이 섹스를 하면 자연스럽고, 장애인이 섹스를 하면 흉측하다는 케케묵은 편견은 버려야 할 때 왔다. 그런 의미에서 비장애인들이 차별이 아닌 평등을, 위선이 아닌 진심으로 장애인의 성 문제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길 기대한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며, 모 여성의 말처럼 우정을 나눠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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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박지주 (freeand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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